갈라파고스 세대라는 제목은 ‘모두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면,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나왔다. 정의할 수 없다면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곧 공식이 되는 것처럼. 하이덴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그랬듯 말이다. 하기야 ‘외딴 섬 세대’나 ‘요절복통지리멸렬 세대’보다는 어감도 한결 낫다. 하여간 정말이지 우리는 다각적인 관점과 이해가 필요한 세대고, 그렇게 생겨먹은 시대에 태어나버렸다.
--- pp.9-10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선’에는 명확한 기준도 없다. 위의 노래가사처럼 “내 선은 여기니까 가능한 넘지 않길 바라”라고 먼저 언질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민감하기로는 제일이고,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고자 한 말은 그나마 남아 있던 연결고리도 싹둑 잘라버리게 만든다. (중략) 말하느니만 못할 바에야 좀 어색한 관계인 쪽이 훨씬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또 어떤 젊음들은 당신의 침묵을 보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나를 상대하기 싫다는 건가? 내가 자기 수준에 맞지 않다고 느끼나?’ 같은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 것들은 누군가의 침묵 그리고 무표정으로부터 수많은 감정을 눈치채버린다.
--- p.40
우리가 가진 자아정체성 그리고 자존감은 외부에서 오는 아주 자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바스러질 만큼 취약하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텍스트 의존도가 높은 간접적 언어 때문이기도 하고, 후술하겠지만 좀처럼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기 힘들어져버린 시대상과 명시적 의미에 집착하는 사회풍조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추진력 있고 자신감 있는 인생을 살았던 부모님으로부터 소심하고 자기방어적인 자식 세대가 태어나기도 하는 것은 생식 과정 속에 인간의 성격을 좌우하는 D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서라기 보단, 부모와 자식이 제각각 성장하며 경험한 시대가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 pp.43-44
그런데 우리가 자라면서 들은 잔소리 중에 “-를 아무리 잘하면 뭐 하나? 인간이 먼저 돼야지”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못해 서러울 지경이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어른이 되기까지 이 말을 백 번은 족히 들었다. 그런데 돌이켜볼수록 저 레퍼토리만큼 모순적이고 비겁한 잔소리도 드물다. 왜냐하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저런 말을 할 거면 꼭 저런 말만 하셨어야지, 이튿날 시험성적표를 들고 왔을 땐 “제발 공부만 잘해라. 내가 너한테 딴 건 안 바란다. 공부만 잘해. 나머지는 할머니가 알아서 다 하려니까” 하며 당부하셨던 것이다.
--- p.75
누군가는 젊음을 넘어 몹시 늙어서나 찾고, 또 누군가는 평생 찾아내지도 못하기도 하는 것을 나는 운 좋게도 일찍 찾았다. (중략) 어떤 젊음이 퍼뜩 그런 일을 찾았다고 하면 그게 계약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하물며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일이든 상관할 바 없지 않을까. 살다가 보면 세상에 그런 일은 몹시 드문데다가, 정규직이면서도 매주 닷새씩 불행한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므로.
--- p.90
손바닥만한 디바이스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바쁜 시간을 쪼개 사람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건 정말이지 번거로운 일이다. 집에서 도보 오 분도 안 되는 헬스장조차 안 가서 돈을 날리고, 바로 아래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르는 것도 번거로워 배달을 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 다만 가장 번거로운 방법은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도 하다.
--- p.42
바다 너머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섬사람들은 자연히 억압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자유의 무한한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숨어 있는 압제를 찾아낸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고통받는다. 자신에겐 배를 만들 능력이 없으며, 이따금 섬의 지배자들이 선심처럼 베푸는 기회로나 부분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꼼짝없이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 p.54
까놓고 말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가 도래한 요즘에 와서는 ‘내가 등신이었던
시절에 있었던 게 겨우 미니홈피랑 블로그 정도라서 참 다행이야……’ 하는 생각도 든다. 요컨대 누구나 멍청하고 어리석었던 시절, 그러니까 등신이었던 시절이 있는 법이지만 우리 세대의 경우 적어도 지금보단 은밀한 등신이었던 셈이다. (중략) 내 관점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멍청한 원숭이다. 노상 겉으로는 있어 보이는 척, 만물의 영장인 척, 다른 동물들과는 근본이 다른 척하며 살아가지만, 순간의 욕구에 지배되고 은밀한 유혹에 이끌리는 한편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고, 쉽게 우울해져서는 무작정 의지할 대상을 찾아 헤매기도 하는 영락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머저리 같은 실수를 저질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며 생각지 못한 사건으로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실수를 발판 삼아 하루하루 더 나은 동물이,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130
좀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우리 세대의 불행에 있어 실질적인 빈부격차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는지 아니면 줄어들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치 않은 소재다. 지니계수가 얼마에서 얼마로 늘어났으며,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진 것이 몇 십 년만인가 하는 신문기사들도 피부에 직접 와 닿진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균적인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바로 어중간한 귀족적 삶이다. 무언가 생산할 필요 없이, 그저 그날그날 뭘 소비할지만 결정하면 되는 완전한 경제적 자유의 삶 말이다. 과거의 노동자들에겐 전혀 허락되지 않았거니와 실질적인 존재도 형태도 흐리멍덩했던 세계가, 이제는 TV와 인터넷, SNS와 유튜브 같은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얼마든지 간접체험이 가능한 영역이 돼버린 것이다.
--- pp.161-162
슬플 때 슬프다 말하지 않는 것, 죽도록 힘들어도 버틸 만하다고 말하는 것, 아무리 겁이 나도 언젠가 해야 한다는 것 괜찮지 않아도 늘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까지. 좋든 싫든 간에 부모님 세대와 우리는 정말 많이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 p.189
끝장을 넘길 쯤이면 판도 같이 접어서, 누구 한쪽이 더 슬픈 세대인지보다 오늘의 세계가 어떻게 슬픈 시대인지를 이야기하면 좋겠다. 섬이라고 항상 외로우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섬이 있다. 나는 당신의 섬에 가고 싶다.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