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안으로 들어선 레논은 자루를 하나 발견했다. 그 안에는 100파운드나 되는 못 뭉치와 200파운드에 달하는 신선한 사과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우스꽝스런 전시물을 본 레논은 무척 즐거워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풍문에 의하면 던바는 요코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 저기 백만장자한테 가서 인사나 하지 그래요!"
당시에는 화랑을 찾는 관람객의 수준을 재력으로 가늠했다. 물론 던바나 그의 친구들이 상업적인 욕심 때문에 화랑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언제나처럼 요코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비틀스 멤버에게 다가가서는 카드를 한 장 내밀었다. 거기에는 '숨을 쉬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레논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이것이 이벤트의 한 부분이냐고 물었다. 요코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시장에는 판자벽와 못·사슬에 묶어 놓은 망치도 준비되어 있었다. 존은 자신이 못질을 해도 괜찮은지 물었고, 요코는 아직 전시회가 개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1980년, 요코는 이때 던바가 자신을 향해 윙크를 했다고 회고했다. 아마도 던바가 그녀를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5실링을 내면 못을 박아도 좋다고 존에게 제안했다. 존은 "차라리 대용 실링 다섯 개로 대용 못을 박겠다"고 받아쳤다.
1980년에 레논은 바로 이 순간,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 pp.55-56
요코는 창작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제스처가 풍부한 여자였다. 바로 그것이 그녀의 예술을 특징짓는 표식이기도 했다.
요코의 악명 높은 영화 「궁둥이」는 질료의 형식을 받아들였다. 이 영화는 당시 그녀가 만든 몇 안 되는 창작물 가운데 하나였다. 1967년, 소호의 개인 클럽에서 시사회가 있었다. 일상적인 텔레비전 인터뷰와는 달리 여기서는 얼굴이 아닌 엉덩이를 보여주었다. 물론 끔찍할 정도로 지겨운 영화이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어쨌든 요코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이디어가 뛰어난 예술가였다.
존 레논과의 첫 만남은 그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도전이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영역을 보다 폭넓게 개척할 수 있었다. 벨기에 크노케에서 개최된 영화 페스티벌 때처럼 처음에는 혼자 다니기도 했지만, 점차 존 레논과 함께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 많아졌다.
이언 맥도널드는 이렇게 기록했다.
"레논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그녀가 레논보다 정신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그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예술적인 차원에서는 레논이 그녀보다 뛰어났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 pp.130-131
레논이 떠난 뒤에 채프먼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랑스럽게 외쳤다.
"하와이에 있는 친구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할 거야."
고레시는 오후 8시 30분에 자리를 떴고, 채프먼은 계속 남아 있었다. 다코타 빌딩의 경비원은 쿠바인이었다. 그는 채프먼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았다. 팬들이 하루 종일 빌딩 앞에서 기다리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밤 10시 50분, 레논 부부를 태운 리무진 승용차가 도착했다. 먼저 차에서 내린 요코가 채프먼의 곁을 지나갔다. 채프먼은 그녀에게 인사를 보냈다. 레논이 그의 곁을 지나칠 때 그를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논이 현관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 채프먼이 2미터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레논 씨?"
레논이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채프먼은 방아쇠를 다섯 번이나 당겼다. 리볼버 권총에 장전되어 있던 탄알을 모두 발사한 것이다. 처음에 발사된 두 발은 레논의 등에 맞았다. 레논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두 발의 총알은 그의 목과 어깨를 맞추었고, 마지막 총알은 레논을 비껴갔다.
레논은 간신히 몸음 일으켜 빌딩 안으로 들어섰지만, 로비에서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는 대리석 바닥에 나뒹굴었다. 야간 경비를 맡은 제이 하스팅스는 요코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존이 총에 맞았어요!"
--- pp.209-210
그는 평생동안 그렇게 많은 돈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그 느낌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던 거죠. 그는 은행에서 1만 달러를 받아 자신의 윗옷 주머니에 찔러넣었습니다. 그러고는 난생 처음 은행에 가봤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빈정거리며 놀려댔죠. 다음주에는 상점에 들러보자는 제 말에 존은 그냥 웃기만 했어요. 그래서 다시 이렇게 물었죠.
'은행에 가보니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별다른 느낌은 없었어요. 난 지금까지 수많은 종이에 사인을 해왔으니까요.'
--- p.178
8월, 존과 요코는 1천여 명에 이르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런던 시내를 가로질러 시가행진을 벌였다. 영국 정부의 격리정책과 얼스터에 주둔한 영국군에 대항하는 시위였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나선 시위군중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은 '외설' 혐의로 법정에 기소된 언더그라운드 잡지 『오즈』(OZ)를 펴내는 출판사를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레논은 이들을 위해 「두 더 오즈」(Do the OZ)라는 곡까지 만들었다. 서로 다른 두 시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레논이 아니어도 히피나 록음악 애호가 등 '오즈' 소송에 대해 떠벌릴 수 있는 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 사태나 복잡한 정치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레논은 짧게 자른 머리와 프롤레타리아의 복장을 하고 주먹을 움켜쥔 채 호전적인 시위군중들과 더불어 소리 높여 외쳤다.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권력을, 지금 당장!"(Power to the people, power to the people, power to the poeple, right on!)
--- pp.15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