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지만,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광부, 경비원, 환경미화원, 청소 노동자, 건설 근로자들의 일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마비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희생에 무심했고, 한편으로는 이를 당연시 여겼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일상, 저렴한 비용이 누군가의 노력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잊고 살았다. 이들이 노력에 상응하는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매순간 위험에 노출되어야 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사북 사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 p.83, 「1부. 사북: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따뜻했나」중에서
2018년과 2019년, 정치권에서는 선거제 개편의 바람이 불었다. 그중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단연 핵심적인 이슈였다. 그간의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실제로 소선거구제는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표를 모두 사표(死票)로 만듦으로써 전체 득표율을 크게 왜곡해 왔다. (중략) 하지만 희망은 있다. 정치인이 선거라는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라면, 국민은 그 배를 띄우는 바다다. 지독히 탐욕스러운 정치인이 제아무리 자기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만든다 해도 결과가 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수차례 입증한 사실이다.
--- p.140~141, 「2부. 부산: 권력은 배, 민심은 바다」중에서
냉전은 범주화한 가치들 간의 경쟁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역사였다. 제주 4?3은 그런 냉전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그 시절,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의 목적을 잊고 살았다. 이념이라는 게 결국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만들어진 것인데 주객이 전도됨으로써 숱한 희생을 낳았다. 우리가 제주 4?3사건을 통해 특정 이념이 아닌 인권의 가치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225, 「3부. 제주: 살암시민 살아진다」중에서
김영삼은 분명 많은 이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인이다.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거인이다. 모든 삶을 바쳐 독재와 싸우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해 냈다. 한 인간으로서 평생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은 유한하고 또 짧기 때문이다.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이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그는 계절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가 보여 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독재에 항거하는 정신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바꿔 문민의 시대를 열었다. 모름지기 정치란 이래야 한다. 하다못해 계절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라는 메시지는 있어야 한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든지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든지, 국민들이 선택할 만한 가치와 메시지,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 p.291, 「4부. 거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중에서
베트남전쟁은 결코 영광스러운 전쟁이 아니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묘사된 것처럼 살아 돌아온 미군 장병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영광이나 위로가 아닌 거대한 반전 여론의 물결이었다. (중략) 그 시절 베트남전쟁에 뛰어든 사람은 모두 피해자다. 꼭 베트남전쟁만이 아니라 모든 전쟁이 그렇다. 전쟁을 일으킨 소수의 정치인과 거기에서 돈을 번 기업인들만이 혜택을 누릴 뿐,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절대다수가 피해자라면 전쟁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p.353~354, 「5부. 베트남: 당신이 나를 몽상가라 할지라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