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서로 다른 종자들이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자연에서 한 종자로의 통일은 전체의 파괴를 의미하듯이, 민족 간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문화생태계를 복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마다 다른 미적 가치를 존중하는 비교미학이 필요하다. 칸트의 미학이 보편적인 무관심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비교미학은 민족의 특수성에 관심을 갖고 상대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한 단어의 의미는 다른 단어와의 차이를 통해 드러나듯이, 비교미학은 자신의 문화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문화의지의 반영임을 이해하고, 다른 민족과의 상생의 관계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어떤 문화와 예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비교미학의 중요한 전제이다.
---「서문. 비교미학을 위하여」중에서
서양의 합리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차이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이성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자 했다. 이와 반대로 도교의 무위자연은 인간과 자연의 공통점을 집요하게 찾아 구별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자 했다. 사실 이 두 모델은 모두 현실에서 실현이 불가능한 꿈이다. 인간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될 수도 없고, 반대로 온전히 자연에 동화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서양과 중국의 서로 다른 꿈이다.
---「1부, 2장. 중국은 동화의 문화다」중에서
중국 문화가 외향적이고 견고한 남성적 특징을 보인다면, 일본 문화는 내향적이고 아기자기한 여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광활한 대륙국가인 중국과 달리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의 지형적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산과 돌이 많은 지역에 살게 되면 양기를 많이 받아 남성적이고 강인한 의지가 발달하지만, 물과 습기가 많은 지역에 살게 되면 자연으로부터 음기를 받아 여성적이고 낭만적 정취가 발달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중국인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스케일보다는 작게 응축된 것에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
---「1부, 3장. 일본은 응축의 문화다」중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하는 중국의 동화 문화가 중심주의를 지향하고,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계로 고착시키려는 일본의 응축 문화가 완벽주의를 지향한다면, 한국의 접화 문화는 대립되는 이질성이 보존되는 상극의 어울림으로 혼합주의를 지향한다.
---「1부, 4장. 한국은 접화의 문화다」중에서
우주를 분석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은 서양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인 총체로 인식했다. 인간 역시 우주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주에 동화되는 천인합일을 미적 이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사회 역시 우주적 질서에 상응하는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2부, 6장. 중국의 동화주의 미학」중에서
한국인들이 미적인 쾌를 느끼는 예술품은 인위적인 천재성이나 놀라운 기술이 번뜩이는 작품이 아니라 신성과 인간성이 묘합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신인묘합의 미적 이상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한국예술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천재성이나 기술을 중시하는 타민족의 미학으로 한국미술을 보면, 기술부족이나 미완성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인묘합의 관점으로 타민족의 예술품들을 보면, 매우 인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신인묘합은 신과 인간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상호 주체가 되어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2부, 8장. 한국의 접화주의 미학」중에서
세계평화는 한 민족, 한 이념으로의 통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이 서로 다른 문화의지로 차이를 생산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 차이가 서로의 부족분을 보충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후기. 21세기 미학의 사명과 한국미학의 비전」중에서
만약 우리에게 신명의 미의식이 있다면, 억압된 감정과 맺힌 한을 풀어버리고 신적인 영감으로 우주와 공명하며 창조적인 자기세계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평온의 미의식이 있다면,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참다운 평안을 누리며 종교적 이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해학의 미의식이 있다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비롯된 역경을 관조하며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소박의 미의식이 있다면,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가지치기를 통해 본질을 향한 절제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후기. 21세기 미학의 사명과 한국미학의 비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