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그곳으로의 문을 여는 초대의 행위이다. 그러나 당신을 구원하거나 그 세계에 영원토록 머물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니다. 유혹에서 사랑을 선불처럼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유혹은 관계의 적정 지점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다. 삶의 좌표가 변하듯 관계의 좌표도 움직인다. 때로는 느리게,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도 말이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유혹은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게 해준다. --- p.41
유혹의 힘은 부당하게 오해되거나 과장되었다. 사악하거나 저항할 수 없거나, 파멸을 부른다거나. 그러나 생태계의 어느 유혹도 그러한 오해를 뒤집어쓰지 않는다. 유혹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명의 행위이다. 종족 번식을 넘어서서 타인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는, 고단함을 넘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행위이다. 잃어버린 그곳은 신화 속 동산이 아니라 애초에 주어졌던 유혹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유혹은 소통이자, 세계가 만나고 새롭게 열리는 자리이다. 그곳에 어쩌면 낙원이 있다. --- p.66-67
우리는 왜 연애를 하는가?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당신 앞에 우뚝 서고 싶은 바람 때문이 아닌가. 사랑의 유혹은 상대와 나를 유일무이한 대상으로 놓지 않을 경우 이루어지기 어렵다. 노골적인 계약이나 사전 동의를 거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유혹에서 특별함을 예견하려 하고 유혹은 거짓말을 수반한다. 유한한 삶 속에서 당신과의 영원을 꿈꾸고, 수십억 인구 중 당신만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유혹은 매력의 자유경쟁시장을 감히 속이는 시도, 당신의 거짓말을 믿고 함께 속삭이는 일, 추락과 상처라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저 매혹의 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 p.76-77
만약 누군가에게 몸을 느끼기도 전에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건 다 거짓이었다. 나는 구체적인 몸을 알기 전에 사랑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 앞에서 도드라지는 욕망의 형태에 전율했고 그것을 감싸 안는 촉감으로 구분했고 절정에 오를 때 변화하는 표정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졌다. 그의 탄식들이 모이고 모여 사랑의 중력을 형성했고 내 몸의 떨림과 무너짐으로 사랑을 지탱했다. 내가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하게 된 건 그가 내 안에 들어올 때의 느낌이 무엇보다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절정의 순간 그가 지었던 표정이 한숨이 나올 만큼 아름다워서였다. 게다가 나를 욕망할 때의 시선이란. --- p.151
경계를 침범하는 일에 너무나도 당당하면 침범당한 자는 더 위축되기도 한다. 그 뻔뻔함에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 길을 걷는데 아득함이 사라지자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죄책감과 수치심이었다. 그를 의심하지 않은 죄, 그와 술을 마신 죄, 그를 따라 아파트까지 올라간 죄.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멍청히 방관했다는 수치심. --- p.183
욕망 역시 단련된다. 욕망하고 유혹하고 비로소 가까워지는 희열을 배우면서 나의 욕망 또한 구체적이고 정확해진다. 소통과 배려의 여정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명확했던 경계가 유혹의 서사에 의해 새로운 영토로 재편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계는 있되 움직이는 것임을, 때로는 겹치고 넘나드는 것임을, 유혹의 지도는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쓰이고 있음을. 지도를 다시 쓰기 위해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확하게 유혹받고 싶었음을. --- p.187
남녀 간의 우정이란 약간의 불안정한 상태가 존재의 매력인 경우도 있다. 사랑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듯 우정도 그에 마땅한 노력이 필요하다. 남녀 간의 우정을 사랑에 못 미치는 단계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관계란 끊임없는 협상이 필요하고 그래야 건강하다. 정념의 순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친구로 남을 수 있느냐고? 섹스 이후 연인이 될 수 있는지도 물어야 하는 세상에서 왜 친구가 될 가능성에는 더 까다로워야 하는가? 지나간 정념 이후 찾아오는 평온함을 누리지 않고 외면할 이유는 없다. 한때 유혹의 찰나가 오갔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혹이 거절당했다고 해서 당신이 매력 없는 존재는 아니다. 다만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가 필요할 뿐이다. --- p.193
사랑의 유혹은, 어쩌면 나를, 너를, 환희보다 더 큰 고통 속으로 깨워 넣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긴 삶의 여행 속, 때로는 진부한 순간들로 흩어진 여정 속에 함께할 탑승자를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와 당신의 삶에 증인이 되고 서로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기꺼이 누군가를 내 옆자리에 앉히고 현재를 달려가는 일이다. --- p.238
관계를 끝내는 것이 과거의 열렬했던 사랑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그때 사랑했던 일이 거짓이 되지 않는다. 사랑 역시 태어나서 자라다 죽음을 맞이한다. 죽은 자를 이승에 붙잡는 것은 그를 떠도는 원혼으로 만드는 일. 사랑을 ‘잘’ 하는 자는 사랑을 ‘잘’ 떠나보내는 자이기도 하다. --- p.257
아이는 자란다. 사람의 변화는 때로 사랑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 우리의 늙음 또한 그러하다. 놀랍게도 아이는 그들처럼 애초에 연약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내 모습을 바로 거기에서부터 사랑해줬다. 거듭 상상을 넘어서는 나의 사랑은,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에의 작은 보답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사함은 삶을 향한 하나의 결심으로 다시 이어졌다. 성장이 든 쇠락이든, 변화를 끌어안고 오래도록 사랑하겠다고. 품고 뒹굴고 몸을 담았던 시트처럼, 낡고 닳고 바스러질 때까지, 얇고 희미해질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그를 통해 내 늙음까지 모조리 받아들이겠다고. --- p.316-317
“이봐요. 내 삶을 지금까지 지탱해온 게 뭔지 알아요? 그건 용기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에요. 그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서 살지 않는 것뿐이에요. 미래의 동반자도, 사람들의 시선도 아직 당도하지 않은 현실인데, 미리 그것을 염려하며 내 현재를 왜 제한해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제한하면, 그 미래를 맞이하게 되나요? 오히려 뻔한 미래 이상은 꿈꾸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여유롭게 누리며 살고 싶을 뿐이에요. 딱히 행복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불행할까 혹은 불행하게 될까 고심하지도 않아요.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떤 관념에 삶을 끼워 맞추려고 하면 모든 게 부서질 듯 빠져나가요. 그냥 부서뜨리지 말고 끌어안으면 되거든요.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눈부신 아이러니와 진실들이 있어요. 나는 그걸 살아가는 것만으로 벅차게 즐거워요.”
--- p.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