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반짜리 아이와 그림책을 읽는 엄마입니다. 요맘때 사랑받는 그림책도 많지만 오늘은 손때가 타고 타고 또 타도, 다시 찾게 되는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존 버닝햄의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그림, 글/시공주니어 펴냄)늑대 옷을 입은 맥스가 망치를 들고 못을 박는 첫 장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엄마가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하고 소리치자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는 대목에서 아예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무슨 얘가 이렇게 억세게 노는지, 원! 되바라진 맥스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엄마도 한술 더 떠서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립니다. 덜렁 혼자 남겨진 맥스. 맥스 방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하고, 열대림 속에서 맥스는 맥스호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 밤새 항해를 하지요.
"하루가 지나고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났어.
맥스는 꼬박 일 년쯤 항해한 끝에
괴물 나라에 도착했지." 괴물나라에 배를 대자 어수룩하게 생긴 괴물들이 한 무리 쏟아져나옵니다. 무서운 이빨을 부드득 갈고,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발톱을 세워보이자 맥스는 "조용히 해!" 이 한 마디로 괴물들을 제압하죠. 역시, 맥스는 보통 애가 아니에요.
괴물들은 깜작 놀라, 맥스 보고 "괴물 중의 괴물"이라고 추켜세웁니다. 괴물나라 왕이 된 맥스는 달밤에 괴물 소동을 벌입니다.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고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두 발을 쾅쾅 구르고,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구요. 괴물의 무등을 타고 왕답게 행진도 합니다. 그리곤 "이제 그만!" 외치더니, 저녁도 안 먹이고 괴물들을 잠자리로 쫓아버리네요. (아이들은 엄마 따라하기를 좋아합니다. 청소기를 돌리면 같이 하겠다고 끼어들고, 빨래할 때면 옆에 앉아 박박 비비는 흉내를 하잖아요. 맥스도 예외는 아닌가 봐요)
그제서야 맥스는 쓸쓸해졌어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죠. 그때 머나먼 세계 저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마침내 맥스는 괴물 나라와 작별합니다.
"제발, 가지 마. 가면 잡아먹어 버릴 테야. 우린 네가 너무 좋단 말이야!" 맥스는 단호합니다.
"싫어!" 괴물들이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발톱을 세워 보인들 소용없습니다. 괴물들의 왕 맥스는 재빨리 배에 올라탑니다.
"맥스는 일 년을 거슬러 오르고
석 달, 두 달, 한 달을 거슬러 오르고
하루를 거슬러 오르면서
항해를 했어." 어? 열대림은 온데 간데 없고, 높은 탁자와 큰 침대가 놓인 맥스 방이네요. 그런데! 탁자 위에 뭔가 보이는데요.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그렇습니다. 맥스 엄마가 마음을 풀고 아이에게 돌아왔네요.
그런데 그림책 어디에도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가 놓고 간 것으로 생각되는 저녁밥만 보여요. 사납던 아이 맥스도, 저녁밥이 놓인 탁자를 보자 배시시 미소 짓습니다.
함께 읽어봐서 알겠지만, 이 책은 약간 다릅니다. 아이는 고분고분하지 않고, 엄마 역시 그리 다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맥스는 맥스만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을 자기 식대로 표현합니다("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자기 생각을 표현한 죄로 맥스는 방에 갇히지만, 혼자만의 세계에서 괴물 나라의 왕이 됩니다. 맥스가 항해를 떠나기까지 시간은 어쩌면 더디게 흘렀을지도 몰라요.
"하루가 지나고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났어.
맥스는 꼬박 일 년쯤 항해한 끝에
괴물 나라에 도착했지." 아이의 마음 속 길이로 '꼬박 일 년쯤'이면 얼마쯤 일까요? 5분이었을지, 1시간이었을지, 아니면 몇 초도 되지 않은 것인지. 아무튼, '꼬박 일 년'입니다. 그리 오랜 시간을 항해하고 나니, 괴물나라의 괴물조차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괴물을 다스리며 함께 어울려 놀지요. 엄마 흉내도 내봅니다. 저녁밥을 주지 않고 내쫓는 걸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쓸쓸해져요. 엄마도 그럴까요? 맥스가 엄마를 그리워할 무렵, 살그머니 저녁밥이 옵니다. 배고픈 아이 눈엔 엄마는 보이지도 않고, 저녁밥만 보였을 거예요.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끝나는, 엄마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 그림책이 이제야 마음에 듭니다. 맥스도 요즘 애들처럼 당당하고 멀쩡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도 쏙 들구요.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꾸밈없는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이 책도 좋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합니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냉담한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이 책이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자주 이 책을 꺼내듭니다. 아이다움을 인정하기가 늘 쉽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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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리뷰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