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점 이름은 뭡니까?”
“네,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요. 음식점 이름은 없습니다.”
“음. 역시 그렇군. 뭐, 안내문이나 작은 책자 같은 것도 없어요?”
“예, 미안합니다만 아무것도…….”
“장소는요? 늘 여기는 아니죠?”
“그렇습니다. 늘 여기는 아니에요.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영업합니다.”
“그렇다면 안내문을 만들 수도 없겠네. 이름이 없으니까 간판을 걸 수도 없고. 아, 그럼 음식점 허가도 안 얻었습니까?”
“네, 사실은 그렇습니다.” 여주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p.26
원래 대화라는 건 모두 그때뿐이다. 상대의 인간성이나 배경이란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소한 인상 하나로 그 정도의 축적은 싹 변할 수 있다. 날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
--- p.54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 멋대로 분에 넘치는 소망을 품는다. 자신에게 없는 걸 늘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손에 닿을 듯한 이런저런 자그마한 희망은 거의 다 이룬다. 따라서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만만한 즐거움은 이미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피해온 것, 줄곧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영역만 남아 있는 상황에 이른다. “여태 잘 참아 왔으니까” 하고 자신을 타이르면서도 아직 가닿지 않은 땅으로 쭈뼛쭈뼛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정경이 순간순간 엿보인다.
(......) 요컨대 젊은 시절에는 “이것도 하고 싶다, 저것도 하고 싶다”고 바라던 일이 요즘에는 “이것도 못해봤고 저것도 못해봤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바뀐다는 말이다. 전철의 진행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풍경을 바라보던 게 젊은 시절이라면 지금은 스쳐 지나가는 뒤쪽 풍경을, 멀어져가는 풍경을, 뒤돌아서서 멍하니 바라보는 느낌이다. 이런 시점의 차이가 사람을 크게 둘로 쪼개는 듯한 기분이 든다.
--- pp.74~75
여주인이 방에서 나갔을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즉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이름이 뭐고, 나이가 몇 살이고, 출신이 어디고, 어떤 신분이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런 정보에 따라 그 사람의 느낌이 바뀔까? 그것이 사람의 진정한 가치일까? 정보는 얼마든지 날조할 수 있다. 우리는 평소 그런 정보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까?
그저 이렇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 p.88
최근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 음식점은 내게 ‘고독 증폭기’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음식점을 나서면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상대와 짧은 시간 동안 둘이서만 식사를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정처 없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뒤에 혼자 있는 나 자신만 남고 문득 정신을 차리면 거울 앞에 홀로 서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그런 깨달음밖에 없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로 오싹해지는 그 고독은 예리하고 면도날처럼 빛이 난다. 처음에는 잠시 눈을 피하며 심호흡을 해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아름다움에 하염없이 넋을 잃고 나를 맡긴다. 그것이 가장 손해 보지 않는 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 이것이 고독이라는 칼날의 작용일까?
--- pp.136~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