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이나 되는 큰 은행나무를 빙 돌아보다가 승우는 연못을 뒤로하고 우뚝 멈춰 섰다. 흠칫 놀란 눈이었다. 그쪽에서 본 은행나무의 아래 둥치에 그림과 글씨가 깊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오리온자리처럼 네모진 모양 안에 '승우' '주미' '미주'가 일렬로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 언제 이걸 팠던 것일까? 몹시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승우는 놀라움이 가득 찬 눈으로 그것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조심스럽게 '미주'란 이름을 천천히 매만졌다. 물기가 두 눈에 고여 올랐다.
--- pp. 195-196
처음에 승우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잠시 말을 못 알아들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정라늬 표정을 다시 보고는 현실감이 돌아왔는지 삽시간에 경악하는 눈빛으로 얼어 붙었다. '미안하다. 승우씨에게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또 너무 늦게 얘기하게돼서...정말 미안하다 어쩌면 좋니! 나로서도 아무 방법이 없었어. 어떻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어. 암...이라고요? 어느정돈데요? 늦었어 이젠 손쓸 방법이 없. 승우의 머릿속에서 뇌성번개가 쾅쾅 치고 있었다. 앞이 기우뚱 해지더니 부옇게 변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안개가 자신을 삼켜 버린 것 같았다.
잠시후 승우는 비틀거리며 포장마차에서 혼자 걸어 나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단 횡단을 하는 바람에 몇 대의 차가 급정거를 하고 운전사들이 차창을 열고 욕을 해댔다. 정란이 뒤 쫓으며 불렀지만 그는 허깨비처럼 그저 앞만 보며 호위허위 걸어갔다. 강변으로 내려가는 경사진 시멘트 불록에서 승우는 발을 접질려 몇 바퀴 굴러 떨어졌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강을 향해 걸어갔다.
--- pp. 56-57
'전......언제나 여기 있겠습니다. 저기 커다란 소나무처럼요.'
이 글귀가 좋은 이유는 나중에 2편을 보신분은 알겠지만 미주가 내려와서 소나무에 새겨진 걸 보구 승우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 자리에서 사귀게 된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 p.84
'자고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 지아비인 남편은 하늘빛 옷을 걸치시고 아내는 땅빛의 옷을 입으라! 즉 천지의 음양을 맞추어 입겠다는 뜻이지.'
미주의 말에 사람들은 와르르 웃어댔다.
'야아, 미주 너 많이 변했다. 학교 다닐때는 선머슴에다가 왈패 저리 가라였는데!'
'맞아. 너 페미니스트에 여권 신장의 기수 아니었어?'
'선배님들!아녀자가 지아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이렇게 변하나이다.그리 타박 마소서!'
미주는 사람을 웃기려고 작정했는지 승우를 향해 머리까지 조아렸다.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는 미주의 숨은 마음이 있었다. 만약......내가 머잖아 죽으면 따이 되어 하늘을 향해 눕겠지. 그러면 하늘만 보일 것이다. 막막한 하늘....... 승우가 하늘빛의 옷을 입는다면 하늘 전체가 승우로 보일지도 모른다. 미주는 누워서도 승우가 보이길 바랐다. 하늘 전체가 그의 얼굴과 모습으로.
--- p.38
올해가 지나면 미주는 곧 서른이 될 것이다. 30대는 여자에게 포기와 편안한 안주가 같은 말임을 터득하게 해준다. 꿈의 날개를 적당히 꺽으면 그만큼 생활이 편해질 수 있다는 타협의 기술을 누구나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루는 자신의 열망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다.
--- p.89
아기야, 네 이름은 주미야. 김주미! 어떠니? 맘에 드니? 아빠가 지어 주셨어. 엄마 이름도 네 이름 속에 들어 있어서 엄마는 기분이 좋네. 성은 물론 아빠 성이지. 으응......너도 좋다고? 그래. 그럼. 앞으로 널 부를 때는 주미라 부른다. 꼭 외워 둬야해. 알겠지?
--- p. 109
승우씨...주미가 참 예쁘다.당신 닮았어.이마와 섬세한 입술,주미는 코만 나를 닮았어.크면 참 예쁠 것 같아....하지만 어쩌지?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승우씨.....그동안....미운 연상의 여자를 사랑해 주고....함께 살아 주어서 정말로 고맙고 감사해.내겐 정말 과분한 사랑이었어.그 빚을 어떻게든 갚아 보려고 했는데...이렇게 돼 버렸어.
나,너무 미워하는 거 아니지?....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당신이 혹시라도 날 따라올까 봐 내가 주미를 낳았다는 거 모르지?주미는....당신의 사랑에 대한 내 선물이야..주미는 국화 향말고 머리칼에서 자스민 향이나 프리지아 향이 날지도 모르지,,,내가 주미 머리를 빗겨 주면서 그 냄새를 꼭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당신...눈앞에 보여도 이토록 그리운 승우씨....나 절대로 당신 잊지 않을게.당신의 눈과 코.입술이며 목소리,그리고 냄새...
--- p.183-184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갇는 동시에 위암선고를 받아요..... 참 불쌍하죠..... 자기병이 점점 심각해지는걸 알면서도 끝내는 아기를 지켰어요... 출산일이 다가왔는데..... 아무도 아내를 돌봐주지 않었어요...오직....남편 승우씨뿐이었죠.....아내 미주는 승우보다 3살이 많아요...그래서 시어머니의 반대도 컸었죠.하지만 결혼을해서 몇년만에 아이를 가졌어요...미주는 힘들지만 참았어요...자기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승우는 늘 미주가 걱정돼어서 하던 일까지 그만 두었죠....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미주는 결국 푸른하늘에 몸을 맏기고 가버렸지만.... 승우는 항상 미주를 그리워 했어요....미주가 선물로 주고간 아기를 보며....
--- 2000/12/29 (minte5)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p.118
당신이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는지, 이미 잠들었는지, 일에 열중하는지,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내 간절한 마음이 당신에게 전달되리라고 맏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스했던 바닷가에 서 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본다면, 당신은 내 마음이 그때 그곳에 이미 영원히 붙박여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나의 사랑은 어느 누구라 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내 사랑은 절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만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는 한 그루 나무이니까요.
--- p.124
나의 사랑은 어느 누구라 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내 사랑은 절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만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는 한 그루의 나무이니까요.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나와 결혼해주십시오!
--- p.124-125,20,2
나는 당신의 향기로 이미 눈 멀고 귀 멀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상에 살아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의 여자가 된지 이미 8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무심함이 내게는 참기 힘든 가혹함이었지만 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10년을 채우고 20년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급하게 내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내가 미력하나마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p.124
나는 당신을 은혜하고 고와하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쉼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내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향기로 이미 눈 멀고 귀 멀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상에 살아있는 유일한 한사람의 여자가 된지 이미 8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무심함이 내게는 참기힘든 가혹함이었지만 난 얼마든지 견딜수 있습니다. 10년을 채우고 20년을 채울 수 있습니다.
--- p.123-124
나,너무 미워하는 거 아니지?....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당신이 혹시라도 날 따라올까 봐 내가 주미를 낳았다는 거 모르지?주미는....당신의 사랑에 대한 내 선물이야..주미는 국화 향말고 머리칼에서 자스민 향이나 프리지아 향이 날지도 모르지,,,내가 주미 머리를 빗겨 주면서 그 냄새를 꼭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당신...눈앞에 보여도 이토록 그리운 승우씨....나 절대로 당신 잊지 않을게.당신의 눈과 코.입술이며 목소리,그리고 냄새...
--- p. 183
그렇게 생각 없다는 듯 농담을 해대면서도 승우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6년동안 혼자서 얼마나 많이 이런 모습을 떠올렸던가. 평소에는 전혀 사지도 않는 복권을 사려고 지폐를 내밀 때 승우의 손은 가늘게 떨렸었다.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진동이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연발로 터뜨려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반말을 굳히기 위해 그 동안 혼자서 거울을 보고 얼마나 많이 연습했던가? 승우가 약간의 무례를 무릅쓴 것은 말이 가진 장벽부터 뛰어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언어 속에는 사회 통념, 이를테면 관습이 내재되어 있어 사람들간의 간격과 상하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 p. 104
국화꽃 향기가 나는 사람이여,
내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향기로 이미 눈 멀고 귀 멀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상에 살아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의 여자가 된 지 이미 8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무심함이 내게는 참기 힘든 가혹함이었지만 난 어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10년을 채우고 20년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성급하게 내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내가 미력하나마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p.124 승우의 라디오 방송 중에서
간이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흘렸다. 눈꺼풀이 까무룩까무룩 감기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듯했다. 남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여자의 손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언뜻 정신을 차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하자 남자는 허둥거리는 동작으로 그녀의 입술 가까이에 귀를 가져 갔다. '거...걱정하지 말라구?그래. 걱정 안 해. 당신은 잘 해낼거야. 난 믿어. 당신과 우리 아기 모두 잘 해낼 거야!' 남자는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삭정이처럼 마른 여자는 자신의 뼈마디만 남은 한손을 움켜잡은 남자의 손등을 다른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자는 깊은 눈빛으로 말 없이 남자를 올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p.16
<한밤의 팝세계> 담당 프로듀서님께
17일 밤 방송됐던 프로포즈 사연을 들은 청취자입니다.
제가 그당사자입니다. '복권 긁은 사내'에게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미 그 사람을 남자로 받아들였다고요.
저는 지금 그 해송이 있는 바닷가로 내려와 있습니다.
그 남자에게 연락이 닿는 대로 이곳으로 내려와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제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부탁합니다.
국화꽃 여자 드림
--- p.
<한밤의 팝세계> 담당 프로듀서님께
17일 밤 방송됐던 프로포즈 사연을 들은 청취자입니다.
제가 그당사자입니다. '복권 긁은 사내'에게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미 그 사람을 남자로 받아들였다고요.
저는 지금 그 해송이 있는 바닷가로 내려와 있습니다.
그 남자에게 연락이 닿는 대로 이곳으로 내려와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제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부탁합니다.
국화꽃 여자 드림
---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