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실 부인을 대하고 놀랐습니다. 아무리 여자의 모성애가 강하다고 하지만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아기를 선택하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인은 말할 수 없는 번민과 심적 고통을 겪은 뒤에 결정하셨을 겁니다. 그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선생께서 부인을 도와 주십시오. 이제 명확한 건 부인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아기를 살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외람된다 하시겠지만 전 그때 부인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참으로 행복한 남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30대 중반의 나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 목숨부터 구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 부인의 그 애틋한 마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건 선생의 뜻에 달렸다고 봅니다. 선생께서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부인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의사란 신분을 떠나 같은 남자로서 저는 선생이 부인을 도와 그 힘든 싸움을 이겨내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반드시 부인이 자신의 품에 아기를 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64-65
어떤날...어느날 말이야..승우씨 혼자 서 있는데..갑자기 바라미 불어와 승우 씨 앞 머리카락을 흐트려 놓거나.. 그래..어느 순간 공기 속에서 국화 향이 나면 내가 승우씨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해죠... ..그냥 그냥 하는 말이야..그래서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눈을 감고 손을 펴서 가만히 앞을 향해 뻗어 봐. 그러면 뭔가가 느껴질 꺼야 내가 승우 시 손에 뺨을 대고 있을 테니까. 온기든 서늘한 감촉이든 틀림없이 느껴질 거야...
--- p.125
어떤 날... 어떤 날에 말이야. 승우씨 혼자 있는데....갑자기 바람이 불아와서 앞머리칼을 흩으려 놓거나...어느 순간 공기 속에서 국화꽃 향기가 난다면,내가 승우씨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해줘. 그래서 내가 근체에 있는 걸 알았다면....눈을 감고 손을 펴서 가만히 앞을 향해 뻗어봐. 그러면 뭔가 느껴 질거야. 내가 승우씨 손에 빰을 대고 있을 테니까. 온기든 서늘한 감촉이든 틀림없이.....
--- p.4 맨 앞의 발취글중에
시간을 병속에
만약 시간을 병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게
흐르는 세월을 영원히 저장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게 그 시간을 보낼수 있도록.........
세월을 영원하게 할수 있다면
말이 소원을 성취시킬수 있다면
하루하루를 보물과 같이 저장했다가
그것을 다시 당신과 함께 쓸거에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당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성취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죠
저는 늘 생각했어요당신이야말로 시간을 같이
보낼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는 것을......
나에게는 소원상자가 있었죠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의 상자가
그 상자는 나의 소원에 대한
당신의 대답을 제외하곤 비워버릴 겁니다
짐크로스의 노래 승우가 미주에게 간절한 마음을 실은 자장가로 불러줬던 곡
--- p.100
승우씨..주미가 참 예쁘다.당신 닮았어.이마와 섬세한 입술.주미는 코만 나를 닮았어.크면 참 예쁠것 같다...하지만 어쩌지?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거 같아...그동안..미운 연상의 여자를 사랑해 주고....함께 살아주어서 정말로 고맙고 감사해.내겐 정말 과분한사랑이였어.그 빚을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했는데..이렇게 돼 버렸어.나,너무 미워하는거 아니지?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당신이 혹시라도 날 따라올까 봐 내가 주미를 낳았다는 거 모르지?주미는...당신의 사랑에 대한 내 선물이야.
--- p.183-184
사연을 읽으면서 승우는 눈물을 흘렸다. 진행자도, 스태프도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들이었다. 주문 대목에서부터, 승우는 완연히 목이 메었고 슬픔을 참느라 입술을 질끈 깨물며 순간순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미주가 처음으로 발신자가 누구인지 승우가 알 수 있도록 사연을 띄웠기 때문이었다.
미주는 혼자 어두운 실내에서 승우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승우가 직접 자신의 사연을 읽는다고 했을 때 미주는 너무나 놀랐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떨렸다. 남편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나의 남자가 전국 방송망에서 흐득 흐드득 소낙비 뿌리는 소리를 내며 우는 소리를 듣자, 그녀는 처음으로 목을 놓아 울었다. 발을 뻗고 비비적거리며 아이처럼 울었다. 가슴이 아파서, 너무나 아파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고 싸쥐고 쉼 없이 문지르며 울었다.
--- p.82-83
'미주야! 미주야! 눈을 떠봐! 주미를 한 번이라도 봐야지. 응? 눈을 떠 봐! 제발!'
어서, 깨어나! 미주야.... 미주야!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너는 아기를 못 봐. 승우 씨도 못 보고. 나도 못 보고. 그냥 무정하게 이렇게 떠나면 안 돼. 우리..... 우리에게도 너에게 인사할 시간을 줘야 하잖니? 왜냐하면 너만큼 우리도 널 사랑하니까. 나도 널 그냥은 보내지 않을꺼야 절대로! 다시는 못 만나는 곳으로 아내와 절친한 친구를 보내면서 말한마디 못한다면 우리 심정이 어떻겠니? 나보다도 네가 사랑하는, 널 너무너무 사랑하는 승우씨가 못 견딜 거야 승우 씨를 위해서라도 네가 눈을 떠 줘야 해. 미주야..... 지주야..... 내 말 들리니?
--- p.181-182
미주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남은 날들을 세며 암호 같은 연서를 한밤에 띄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자신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만 여겨 오지 않았던가. 매일 한 침대에서 자는 여자, 그리고 죽어 가는 여자, 자신의 아기를 낳기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여자인 미주의 마음을 받아 들고서도 몰라 보다니.
--- p. 76
'라흐마니 나도루 마타부부 가티아. 사자가니 바메, 바메바메 라흐마니!'
그 사람은 티벳에서 수학한 고승이 오래 전에 필리핀 민간에 퍼뜨린 주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다르게 말했지만. 제 생각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주문과 같이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주문을 세 번 외워 보세요.
--- p.82
나빠.... 미주, 너... 나쁜 여자야. 난 너를, 너를.... 결코 용서할 수가 없어.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다 결정해 버리고... 날 허누아비, 바보처럼 만들어 버리고. 어떻게 너 그렇게.... 잔인할 수 있니? 독할 수 있냐고! 승우는 폭포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폭풍의 언덕에 선 삼나무처럼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망연자실 흔들거리며 가물거리는 눈빛으로 흐르는 밤 강물을 언제까지나 굽어 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기실 그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것은 참담한 절망뿐이었다.
--- p.57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에서부터 발끝까지 조심스레 천 번의 입술을 맞추었습니다. 내가 떠나더라도 당신의 온몸은 내 입술의 꽃으로 성하길 바라며. 내 손가락이 닿았던 곳이 언제나 당신을 지켜주길 바라며. 평화롭기를 바라며... 나는 당신의 발에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나를 찾아 그토록 헤맸던 발이기에. 나는 당신의 손에 또다시 입술을 맞추었습니다. 나를 안아 주고 업어 주었던 손이기에. 당신의 가슴과 입술, 눈, 팔, 다리, 어디 한 군데 감사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 p.51
나는 당신을 만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당신을 내가 오랬동안 힘들게 했다는 아픔과 후회도 함께 만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당신의 이 모습을 잊지 않고 가져 갈 수 있을까. 당신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숨결과 가슴의 움직임, 뒤척거림까지 가져 갈 수 있을까, 밤새워 그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손바닥에 묻혀 가면 안 될까, 입술 속에 담아 가면 안 될까, 죽으면 제일 오래 남는다는 머리카락 속에 담아 가면 안 될까. 뼛속 마디마디에 담아 가는 방법은 없을까.......
--- p.50
나, 머잖아 당신을 떠나, 나 머잖아 죽는대,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신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이 무서워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는데, 내 사랑이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 너무나 싫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p.81
그...... 그럼? 승우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3주일 넘게 매일 팩스로 오던 무명의 편지...... 암 선고를 받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떠나야 하는 애절한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미주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눈과 마음이 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도 미주의 마음을 알아볼 수 없었단 말인가. 몇 번이나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으면서도. 정말 바보, 멍청이, 얼간이였다.
미주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남은 날들을 세며 암호 같은 연서를 한밤에 띄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자신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만 여겨 오지 않았던가. 매일 한 침대에서 자는 여자, 그리고 죽어 가는 여자, 자신의 아기를 낳기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여자인 미주의 마음을 받아 들고서도 몰라 보다니.
힘없이 고개를 떨군 승우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와락 싸안았다. 여태껏 참았던 격한 감정이 일시에 터져나왔다. 정란은 깜짝 놀라 승우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승우는 마치 죄책감에 빠진 사람처럼 참담한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 p. 76
'그 동안 우리 프로의 청취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익명의 편지가 오늘도 도착했습니다.이제 다시는 보내지 못하게 됐다는 추신도 덧붙여져 있어서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출을 맏았던 제가 대신 읽어 드리겠습니다.'
....오늘 도시 건물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바라보면서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생각했습니다.해의 끝자락을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습니다.'그렇게 빨리 질 이유가 있는거니?쉬었다 가렴.옥상에 앉아도 좋고 유리창이 가득 달린 건물에 기대 서 있어도 좋아. 그냥 그렇게 속절없이.무심하게 빛을 거두지 말았으면 좋겠어.네가 가면 지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넌 잘 모르는 것 같아.그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말이야.......나,머잖아 당신을 떠나,나 머잖아 죽는데,하는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나의 남자가 전국 방송망에서 흐득 흐드득 소낙비 뿌리는 소리를 내며 우는 소리를 듣자 그녀는 처음으로 목을 놓아울었다.....가슴이 아파서,너무나 아파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고 싸쥐고 쉼 없이 문지르며 울었다. 승우야....미안해....너무나 미안해.....네게 받은 사랑의 반만이라도 열심히 따라가 보려고 했는데......이게 뭐야.너를....너를....미안해....미안해....승우씨 정말 미안해!
--- pp.80,-84
' 어떤날.... 어느날 말이야. 승우씨가 혼자 서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승우 씨 앞 머리카락을 흐트러 놓거나... 그래, 어느 순간 공기 속에서 국화 향이 나면 내가 승우 씨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해줘.' ' 그냥, 그냥 하는 말이야. 그래서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눈을 감고 손을 펴서 가만히 앞을 향해 뻗어와. 그러면 뭔가 느껴 질꺼야. 내가 승우 씨 손에 뺨을 대고 있을테니까...'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