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하는 마음-은유 -제철소-2018년 3월
열심히 일하고 있다. 출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 팀은 굵직굵직한 책을 여럿 내야 하는데, 각각의 일을 분담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다들 같은지, 물론 다르겠지만 그 다른 모양들이 혹여 삐죽빼죽하진 않을는지,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마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을 읽으며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반복해 읽어도 좋겠다.
출판 일은 해도 해도 잘 늘지가 않고, 붙잡고 늘어져도 도망친다. 다행히 그 일을 하는 마음들은 지상의 양식처럼 그 자리에 남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것으로 다행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의 동료들을 생각했다. ‘문학편집자의 마음’에서는 혜진씨를, ‘인문편집자의 마음’에서는 얼마 전 『한국산문선』(유몽인 외, 안대회 외 옮김, 민음사, 2017)을 내느라 고생한 동료를, ‘북 디자이너의 마음’에서는 『릿터』 디자인을 맡아주고 있는 연미씨와 ‘오늘의 젊은 작가’ 표지를 만들어주는 지은 차장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판제작자의 마음’에서 제작부 임부장님이 생각나 괜히 좋았다. 원가를 낮추려는 노력도 좋은 책을 만들려는 마음이라는 인터뷰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깨달았다. 우리들의 마음은 대체로 같다. 가끔 뾰족해지더라도 그 끝은 완만히 둥그럴 테다.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서효인의 책일기」중에서
나는 문이다-문정희 -민음사 -2016년 5월
문정희 선생님의 시집 해설을 쓰고 있다. 시집의 제목은 『작가의사랑』이고 『작가의 사랑』 편집자는 효인 선배다. 효인 선배는 정해진 원고 마감이 지나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 원고……”라고 말한다. 그럼 화들짝 놀란 나는 벌벌 떨면서 며칠만 더 달라고 마감일을 구걸한다. 그럼 선배는 “그래요. 이번 주까지만 줘요” 하고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그럴 때 선배의 얼굴은 대자대비한 부처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나도 편집자지만, 마감일을 넘겼을 때 편집자의 존재는 진격의 거인 같다. 소리만 들어도 몸이 떨린다. 그러니 마감을 왜 늦어서 고생을 자처하는 걸까……
해설을 쓰려고 문정희 선생님의 이전 시집을 다시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문이다』와 『지금 장미를 따라』(민음사, 2016)를 거듭 읽고 있다. 최근에 효인 선배가 표지를 바꿔 다시 출간한 책들인데, 신경써서 만들어서인지 시도 새롭게 다가온다. 일찌감치 여성주의를 체득한 선생님의 시는 페미니즘에 관한 한 오래된 미래처럼 보인다. 새로운 느낌으로 복간된 책이 그 감각을 더 오롯하게 살렸다. 선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원고, 거의 다 됐습니다!
---「2018년 3월 14일 수요일 박혜진의 책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