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도, 회사에서도, 옷을 사러 간 가게 매장에서도 나는 늘 어떤 나이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렇게 존재하고 싶은 자기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부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도 직장이나 고객 앞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나, 요컨대 진정한 내 상태와는 관계없는, 내가 만들어낸 나를 보여주며 살아왔다. 어쩌면 시장 야채가게에서 폐점 직전에 50퍼센트 할인가격으로 물건을 살 때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만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의 앞에 있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오늘 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두렵고 슬프고 괴로운 나다. 오늘 밤에 한해서는 ‘평소 시오타 도모코와 똑같이 보이는 나’를 보여야만 한다. ---「제3화 운동 바보」중에서
아마도 사람이 죽었을 텐데.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감정이 북받쳤다.
이럴 때 죽지 마세요.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의식을 잃고 개인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의 병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중이다. 왜 하필 이런 상황에 전철이 멈춰 서냐고!
아버지의 죽음은 각오한 지 오래다. 반년 전, 가벼운 심장 발작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고, 검사를 받는 중에 암이 발견되었다. ---「제4화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중에서
안에 탄 승객은 양복을 입은 직장인, 학생, 술 냄새 풍기는 아저씨, 표정이 어두운 직장 여성. 가난한 예술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여고생, 조직폭력배, 가슴이 큰 유흥업소 아가씨,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두른 입후보자, 아이를 안은 엄마, 화려한 안경에 향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마담,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커플, 울트라맨, 여장한 30대 남성, 얼굴색이 나쁜 남자…….
그야말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유형의 인간을 그 안에 다 집어넣었다.
평범한 전철에 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전철 안에서 개성을 죽이고, 사람 형상을 한 물체처럼 그저 조용히 처박혀서 실려 간다. 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는 제각각 그 사람다운 다른 일을 한다. 전철 안에서는 누구나 엇비슷한 부피를 차지하는 ‘승객’이다. ---「제5화 고가 밑의 다쓰코」중에서
자기 몸 안에 또 다른 생명 하나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험도 인생에서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하필이면 그런 특별한 날에 떠밀려서 플랫폼 밑으로 떨어진 것만으로도 ‘인생,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충분히 엉뚱한 상황을 조우했다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디 선가 별안간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고 이름과 연락처도 안 밝히고 사라지다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웅 이야기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 경험이 너무나 특별해서 단순히 ‘그날 있었던 일’로는 끝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남자인데 치마를 입었다는 ‘수수께끼’까지 남겨놓았다.
---「제7화 스크린도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