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이는 부진아인데, ○○이는 우등생이네~” 순간 반 친구들이 모두 크게 웃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수치심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버렸다. 반 친구들이 웃어서 화가 났다기보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아무 말 하지 못 한 내 소심한 성격에 화가 났다. 무안한 마음에 따라 웃으며 한마디도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처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도 자존심이란 게 있구나. 나도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화가 나던 마음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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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은 내게 묻는다. “저도 형처럼 입대하기 전에 유럽 여행을 꼭 가고 싶어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저도 형처럼 아르바이트해서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싶어요. 무슨 일 하셨어요?”, “세계 여행하면 어때요? 많이 배우고 오나요?” 등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특별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모든 것을 묵묵히 하다 보니 어느새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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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 한겨울의 야외 건설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사실은 천안에 도착해 숙소를 보자마자 집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얼마나 모질고 힘들지 뻔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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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여행을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한국인 여행자들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특별함을 기대한 건 아니다.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갖고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를 거라 기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행하다 만난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사회의 단점과 같은 모습이 묻어 있었다. 보여주기식이랄까? 여행에 대한 철학이 있다기보다 여행을 얼마나 오래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나라를 다녔고, 어떤 레저 스포츠를 즐겼는지 등을 자랑하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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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머리에서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에 이상이 감지되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트레킹 시작 전에 처방받은 고산병약을 챙겨 먹고, 가이드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가이드는 시간이 지나야 증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털모자를 쓰고, 옷을 여러 겹 껴입어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 애쓰며 트레킹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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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에 도착한 사람들이 즐거움을 나누는 소리였다. 고지가 눈앞에 있음이 느껴지자 지금까지 겪은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났고, 또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다시 고산병 증세인 어지럼과 두통이 찾아올 즈음, 먼저 도착한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토롱라 패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친구들과 기쁨을 만끽하며, 외쳤다. “나도 해냈다.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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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란 무엇일까? 평생 의문을 갖고 풀어야 할 숙제인 걸까? 친구나 가깝게 지낸 사람들, 언제나 내 편일 것 같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남이 되고,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내 사람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남이 된다는 건 단순한 의견 차이로 싸워서 멀어진다기보다 바쁜 일상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공통점이 많거나, 추구하는 바가 같으면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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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모두의 잘못이었다. 내 조국을 흉보는 건 나를 흉보는 것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집트로 오기 전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을 여행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과 견주었을 때, 결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진국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나라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로 이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분명히 작은 땅덩이에 분단의 아픔을 가진 나라지만,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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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고도가 2,400미터나 되는 고산 지대라 공기가 희박하고 기온이 낮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수하물에서 겉옷을 찾아 꺼내 입기 바빴다. 그리고 공항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홍택이 형을 만났다. “왔냐, 꼬맹이들! 하쿠나 마타타. 반가워!”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항공모함처럼 큰 체격의 홍택이 형다운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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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년을 더 여행했지만, 다나킬 화산만큼의 감동을 느낀 곳은 없었다. 단연코 다나킬 화산은 내 인생에서의 넘버원이다. 용암이 흐르면서 그 사이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 보글보글 끓으면서 튄 용암이 벽을 허물고, 허물어진 벽이 떨어지며 내는 웅장한 소리와 경이로움. 그 위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경건해졌다.
--- p.84
시간은 새벽 2시,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스에 탄 지 55시간이나 지나서야 우리는 목적지인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아프리카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곳, 내가 알던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나의 상식을 강요해도 안 되며, 그들이 하는 말이 법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곳이다. 그게 아프리카다.
--- p.89
선장과 선원들이 분주해졌다. 상어를 유인하기 위해 생선을 넣어둔 철통을 바다에 넣고, 돌고래 초음파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곧 물 밖으로 상어의 지느러미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몇 분이 지나자 상어가 떼로 몰려들었다. 입수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멀미로 상어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빨리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들어가 배 속의 피자와 콜라를 분출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둘러 장비를 착용하고, 산소통 밸브를 오픈하라는 선장의 신호를 받자마자 3, 2, 1…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바닷물이 얼굴에 닿자마자 피자와 콜라를 상어들에게 내뿜어 버렸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입수한 아홉 명의 다이버 중 일곱 명이 출렁이는 해수면에 음식물을 마구 분출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진귀한 광경이 또 있을까.
--- p.98
많은 사람이 무언가 도전하고자 할 때, 남들 눈에 띄거나 거창해 보이는 도전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고는 각자의 환경과 사정, 또는 재정적 부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선뜻 실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도전은 꼭 세계 일주 같은, 쉽게 도전하기 힘든 일이 아니어도 된다. 당장 집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해보는 것도 도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과 교감하며 직접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105
“거창한 이유는 없어. 일상이 되어버려 익숙해진 여행을 떠나, 그 길을 걸으며 외로움을 맞이하는 나를, 하이킹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이 길을 왜 걸었을까 후회하는 나를, 마지막으로 완주하고 기뻐하는 나를 상상하며 새로움을 느끼고 싶어. 이 도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잘 모르겠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고 꼭 이겨낼게. 사랑해” 부모님은 나의 진심을 알아주셨고, 그렇게 나의 4,300킬로미터 PCT 도전이 시작되었다.
--- p.111
그러나 미 서부 장거리 하이킹인 PCT는 우리나라의 국토대장정과는 급이 달랐다! 아스팔트 평지를 걷던 국토대장정과 달리, PCT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하는 산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물도 부족하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았으며 주변에 상점 하나 없는 길이 반복되었다. 마을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서 국토대장정을 할 때는 목이 마르면 편의점에서 쉽게 물을 살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갈증을 참으며 목적지에 도착해봤자, 소금쟁이와 죽은 벌레가 떠다니는 웅덩이만 있을 뿐이었다.
--- p.112
나는 PCT를 106일 만에, 한국인으로서는 최단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러나 PCT 완주는 매우 힘들다. 완주하는 사람이 3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열 명이 도전한다면 세 명만 완주하는 꼴이다. 실제로 길을 걷다보면, 도전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하이커를 볼 수 있다. 나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처음에는 SNS에 힘찬 포부를 표출하고 나선 길이기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부끄러워 참았다.
--- p.131
내 엄지손가락을 본 운전자들은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아무 대가 없이 흔쾌히 태워주었다(물론 방향이 일치하지 않으면 탑승을 거절할 수 있다). 운전자들이 차에 타라는 신호를 주면 답례로 지금까지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을 뭘 믿고 태워주는 거야? 위험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모두 크게 웃으며 같은 말을 했다. “네가 지금 메고 있는 배낭을 한번 봐. 캐리어가 아닌 우뚝 솟은 배낭을 멘 사람은 100퍼센트 믿을 수 있어”
--- p.142
그리고 나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교육을 마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스카이다이버가 되었다. 물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험까지 했기에 남들보다 곱절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아직 나를 더 믿고 싶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인생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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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착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착한 모습을 보일 때면, 그는 어김없이 남들이 다 볼 정도로 큰 액션으로 꾸짖었다. “지금 현준 씨가 하는 착한 행동은 착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시 받고 나약한 모습이에요”라며 다그쳤다. 또 외국인들의 텃세에 기 죽기라도 하면, 허리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파도를 바라보라고 했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갈 때는 배우처럼 연기할 것을 조언했다. 바다로 나갈 때마다 ‘나는 바다에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서핑을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행동하라고 말이다.
--- p.152
모두 여행하는 것처럼 살았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 그런 삶을 살면 좋겠다. 여행자는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한다. 과정이 외롭고 고될지라도,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삶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도 용기를 갖고 한 번 더 도전한다. 그러다보면 나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갖고 있고,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이번 여행이 나와 친구들에게 그런 여행이기를 바랐다. 여행은 끝나지만, 자신을 찾는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에게도, 머뭇거리고 있을 당신에게도.
---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