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관광안내서는 뮌헨 관광의 시작을 시청사가 자리한 마리엔 광장Marienplatz으로 잡고 있다. 마리엔 광장을 뮌헨의 중심이라 부른다.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리엔 광장은 관광객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장사치들의 중심일지는 몰라도, 뮌헨의 예술이나 문화의 중심은 아니며 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실제로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시청사 시계탑의 (좀 썰렁하다고 할 수 있는) 자동인형들의 쇼가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서 흩어지고 만다. 그렇게 썰물처럼 사람이 빠지고 나면 거기 더 머물며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만약 진정한 뮌헨의 가치와 내면을 보고자 한다면, 뮌헨의 첫날을 막스 요제프 광장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마리엔 광장에서 북쪽으로 작은 세 블록만 걸어가면 탁 트인 광장이 나온다. 분위기가 마리엔 광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사람이 별로 없다. 광장 가운데에는 커다란 청동상이 앉아있는데,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왕이었던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Maximilian I(1756~1825)의 상이다. 흔히 줄여서 ‘막스 요제프’라고 부르는데, 청동상은 그가 죽은 지 10년 후인 1835년에 그에게 헌정된 것이다.
광장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주변이 뮌헨 문화의 핵심이다. 뒤쪽으로 보이는 열주列柱들이 늘어선 신전과 같이 큰 건물이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이다. 그리고 그 왼편에는 크기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해서 겉보기만으로는 병영이나 감옥이라고 해도 밑겨질 법한 건물이 있다. 이곳이 한때 중부 유럽의 강국이었던 바이에른 왕실의 도시거주지이자 행정청이었던 레지덴츠 궁전Residenz이다.
-‘레지덴츠 부근’ 중에서 (33~34쪽)
쿤스트아레알에서는 일단 순수미술을 다루는 미술관들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서문에서 말했듯이 이곳 미술관들은 고대로부터 현대의 전위적인 미술까지 넓은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쿤스트아레알에 있는 미술관들은 시대별이나 장르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미술관들을 꼼꼼히 둘러본다면 미술사 전체를 관통하는 체계적인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미술관들의 시대적 순서를 나열해 본다면 대표적인 아홉 곳을 순서대로 언급할 수 있다. 즉 이집트 박물관, 글립토테크, 안티켄잠룽엔, 알테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 렌바흐 하우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브란트호르스트 미술관의 순서가 된다. 이 여정의 끝으로(쿤스트아레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쿤스트 데어 모데르네를 더한다면 아홉 곳의 대형 미술관들을 거치는 미술사 순례를 마감하게 된다. 그 외에 도시에 산재한 작은 미술관들을 취향에 따라 더한다면 정말 끝이 없을 정도다.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굳이 5개의 미술관으로 줄여서 꼽으라면, 역시 시대순으로 알테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 렌바흐 하우스,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그리고 브란트호르스트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뮌헨에 왔다면 최소한 이 다섯 곳만은 꼭 가 보아야 할 것이다.
-‘쿤스트아레알’ 중에서 (112쪽)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그냥 그런 소품들이 보였다. 알 듯 모를 듯한 작가들의 이름이 붙은 고만고만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어떤 방에 들어가니 놀랍게도 티치아노와 벨라스케스 같은 명작들이 걸려 있다. 아니, 그런데 본래 이 그림은 베네치아, 저 그림은 마드리드에 있는 게 아니었나? 비슷한 그림을 작가가 또 그렸나? 이상해서 설명서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부 모사模寫품들이 아닌가? 그 그림들은 화가 렌바흐(유명한 렌바흐하우스의 그 렌바흐다)가 유명 명작들을 모사한 것들이었다. 그저 그런 소품들에다 모사한 작품들까지 모아놨으니, 이래서 1유로만 받았나 싶었다. 실망은 지루함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또 다른 방에 들어가니 독일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ocklin의 그림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책에서 보았던 그 유명한 그림의 진품이었다. 아니, 그런데 놀라려면 아직 멀었다. 돌아서서 보니 한 방 가득 채운 그림이 전부 뵈클린의 작품이 아닌가? 모두 진품이다.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인 뵈클린의 그림은 독일의 여러 미술관에서도 보기 어려우며, 한 미술관이 기껏 한두 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뵈클린의 그림들로만 한 방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마음을 편히 쉬고 싶을 때 가면 좋을 미술관? 천만에! 조금도 쉴 수 없었다. 나는 가라앉지 않는 흥분과 감동의 폭풍 속에 한참 서 있어야만 했다.
-‘영국 정원 부근’ 중에서 (140~141쪽)
드디어 이곳에 왔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다. 입구에 초로의 부인이 앉아서 입장권을 판다(그냥 사람들이 사는 주거단지가 입장권을 판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납득하게 된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여러 언어로 된 안내문을 고른다. 아쉽게 한국어는 없다. “먼 한국에서 몇 년 전부터 벼려서 여기에 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더 멋진 대답으로 응수한다. “나는 여기서 35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다.” 좋은 인사말이다. 아니, 푸거라이는 500년째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푸거라이는 아우크스부르크의 갑부인 야코프 푸거가 집 없는 빈민들을 위해서 1516년에 조성한 주거단지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회복지 시설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500년째 변함없이 운영 중이다. 들어가면 붉은 지붕을 얹은 2층집들이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채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공동시설이지만 그 옛날에도 거주민들의 정서적 휴식을 감안하여 단지 내에 광장과 교회, 정원, 분수들을 배치했다. 지금도 52개의 주택에 1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년 임대료는 500년 전의 가치에서 한 푼도 오르지 않은 0.88유로, 우리 돈으로 천 원이다.
-‘뮌헨의 주변도시’ 중에서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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