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와 대상과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치더라도, 설령 그 틈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해도, 대상의 본질과 그 대상을 표현하는 자아를 옳게 표현하기엔 나의 능력으론 역부족 인가 봐. 어쩌면 이 또한 이론적으론 알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어.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대상과 자아, 언어와 표현,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와 틈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난 불가능하다 생각했으니까.
난 이 문제를 당신과 이야기하며 해소하고 싶어. 지금까지 내 생각은 그저 의식과 표현의 틈에서 발생하는 끊이지 않은 긴장 관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닐까! 하고 가끔 공상해 보고 있지만 말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오후의 기온은 이미 초여름을 지난 것처럼 덥고, 길 위의 사람들은 쉼 없이 흘러가고, 아직 냉방기를 틀기에 이른 감이 있고, 카페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다양하고, 이곳은 모든 창문을 열어놓은 채 숨 쉬는 행위를 걱정하지만, 감겨져 버린 눈은 현실 기억 너머에 있지. / 강석호 (작가)
#2
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 작가 대담 中
강석호: 그림 자체는 추상적으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내가 그 그림에서 느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섯 분에게 저도 질문을 드리는데, 본인이 보는 것을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 것인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민정: 제가 저의 화면을 봤을 때 뭐가 보이냐 하면 저와 유사성이 보이는 어떤 것을 보는 것 같아요. 나를 나누어 가지는 행위였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행위가.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나를 본다는 것.
김겨울: 아까 낮에 티비를 보면서 과자를 먹는데 이 과자 소리가 저에게 너무 크게 들리는 거예요. 옆에 티비를 같이 보고 있는 식구들에게 이 과자 소리가 들릴까? 들리면 얼마나 크게 들릴까? 어쩔 때는 이 씹고 있는 소리가 티비 소리를 먹어버려가지고 이게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하는 질문들이 들었는데요. 이게 정확한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것 같아요.
배헤윰: 머릿속에 시각화된 어떤 것을 떠올렸다면 그것이 외부에서 본 것일 수도 있고 실제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겠어요. 시지각을 자극하는 이미지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 제가 기억하거나 외부에서 보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국엔 그 구별된 것들을 저는 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성소영: 저 같은 경우는 예전에 사람 한두세명 정도 들어가는 식으로 그리는, 그렇지만 리얼하게 그리진 않는 일종의 구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다가 2010년쯤 넘어오면서 지루함을 느꼈어요. 그때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정말 진지하게 내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을 모색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상으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색채에 있어서도 남들이 쓰기 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위험한 색을 찾았고요. 제가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다 보니까 우주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있고, 굳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지금의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수연: 저는 먹을 때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작업에서 무의식적으로 동식물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 것도 매일 동식물을 먹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바스러진 것들이 몸에 들어와서 그런 형상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음식이 나올 때 유심히 많이 보는 편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