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 주위에 널려 있는 나뭇가지 중 탐탁한 것들을 골라 다듬어서 마법 지팡이를 만들었다. 큰아이는 그 마법 지팡이에 나름대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제 것은 호랑가시나무 가지에 불사조의 깃털을 넣은 것이고, 동생 것은 무화과나무 가지에 유니콘의 피를 넣은 것이라던가? 아이들은 자기만의 마법 지팡이를 만들어 멋들어지게 휘두르며 책에 나온 온갖 주문을 상대방에게 날리면서 놀고 또 놀았다.
--- p.11~12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을 마법 세계와 연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에 빠져들다 보면 우리가 사는 곳도 신비한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다.
--- p.18
막내는 ‘랭록’ 주문을 좋아한다. 이 주문을 외우면 혀가 입천장에 딱 붙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막내는 이 마법을 내가 자기에게 잔소리할 때 쓰고 싶단다. 엄마 혀가 딱 붙어서 더이상 잔소리를 못 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나한테 야단맞을 때 막내가 살짝 “랭록”이라고 소곤거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야말로 아이들이 내게 말대꾸할 때 ‘랭록’을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한다.
--- p.23
나는 어떤 기억들을 꺼내보고 싶어질까. 어떤 사람의 기억을 엿보고 싶을까.
--- p.39
나도 한 번씩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현실에 대한 막막함, 안 풀리는 관계에 대한 불안함 등이 커지면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고, 절대로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고, 끝없는 무기력과 두려움이 나를 통째로 사로잡아 옴짝달싹 못 하던 순간들. 돌아보기고 싫을 만큼 무섭고 끔찍했다. 그런 감정들,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 p.56
행복을 행복이라고 알아챌 수 있는 마음, 즐겁고 기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 내 행복을 나누며 그의 행복을 일깨워주는 지혜. 이런 것들에 열심히 마음을 내고 싶다.
--- p.60
하루의 분노는 잠들기 전에 꼭 풀 것, 집을 나서는 가족에겐 화를 내지 말 것. 이 두 가지는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 마음이 추우면 어느 곳에서도 나 자신을 온전하게 펼치기 어렵다.
--- p.73
그런 사람이 있다. 유난히 말귀를 못 알아듣고, 금방 설명해준 내용도 잊어버리고, 뭐만 했다 하면 실수하고, 둔하고 답답한 사람.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챙겨줘야 하는 그런 사람. 네빌이 딱 그런 아이다.
--- p.113
좋아하는 일은 힘이 세다. 너무 재미있어서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떤 어려움일 닥쳐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게 하는 일, 매일매일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꼭 이루고 싶어 몸과 마음이 달뜨는 일. (…) 조지와 프레드처럼 어려서부터 한결같이 재미있고 신나고 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재능까지 있는 데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한 축복이다.
--- p.111
소중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공허만이 남는 것이 아니다. 오래오래 그 슬픔을 응시하다 보면 그 속에 그로부터 받았던 것들이 더 크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132
해리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간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론과 헤르미온이라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 세 아이는 상상할 수 없이 어렵고 복잡한 일들도 어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성과 노력을 해결해나간다.
--- p.156
진심 어린 관심의 힘이 한 존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집요정 크리처에게서 본다.
--- p.158
‘완장’이라는 말이 있다. 자격이나 계급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 차는 팔띠를 가리킨다. 완장 자체는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완장을 차는 순간 달라진다. 완장이 나타내는 권력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 ‘해리 포터’ 소설 속에서 완장은 배지다. (…) 말포이는 반장이 되자마자 거들먹거리며 해리에게 언제든 잘못하면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시키겠다고 협박을 한다.
--- p.181~182
아메리카 토착민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말한다. 기쁜 일보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함께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뜻이리라. 해리와 론, 헤르미온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제일 어려운 시련을 함께했다. 서로의 슬픔을 기꺼이 등에 지고 지극히 외롭고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왔다. 서로의 슬픔을 나눠 지고 갔던 친구가 나에게는 있었나.
--- p.208
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우리’가 담겨 있다. 환상의 세계를 그린 마법사 이야기도 그렇다. 마법 지팡이도 없고 하늘을 나는 빗자루도 없고 눈앞에 있는 고양이를 꽃으로 변하게 할 수도 없지만, 우리도 특별한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얼마나 강력한지도 모르고 부려왔던 마법이다.
우리는 ‘말’이라는 마법을 쓴다.
--- p.269
어둠은 두렵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란 쉽게 공포와 혼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어둠은 내 곁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한다. 나 혼자 남겨진 기분만큼 존재를 약하게 하는 것은 없다. 깊은 어둠은 심지어 나 자신조차 다 덮어버린다. 내 손과 내 몸, 내 존재마저도 사라진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들면 숨이 잘 안 쉬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루모스’라고 외치면 빛이 생긴다. 어둠은 물러가고 모든 것이 보인다. 내 곁에 있는 사람도, 나 자신도 빛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내가 있는 세상을 알아볼 수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도 보인다. 비로소 내 앞에 놓인 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 동안 늘 이 주문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 p.274~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