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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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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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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3쪽 | 620g | 152*224*30mm
ISBN13 9791189898250
ISBN10 11898982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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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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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sym)은 ‘함께’이고 포이에시스(poiesis)는 ‘제작하다’, ‘생산하다’를 뜻하니, 심포이에시스는 공-작(共-作) 아니면 공-산(共-産)을 뜻한다. 모든 제작이나 생산은 다른 무언가와 함께-제작하는 것이고 함께-생산하는 것이다. 혼자 일하는 장인도 그의 도구들과 함께-제작하고, 홀로 조용히 서서 생존하는 소나무도 햇빛, 물, 땅 속의 균류와 영양소 등과 함께 자신의 생명을 생산한다. 후자의 경우는 제작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으니 심포이에시스를 함께-생산함을 뜻하는 공-산으로 번역하려 한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다른 무언가와 함께하는 공-산의 체계 속에서 생산된다.
공-산을 뜻하는 심포이에시스는, 하나의 막을 가지며 그 안에서 여러 성분들이 하나의 계를 이루는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를 한 걸음 더 밀고 나간 말로 도나 해러웨이가 제안한 개념이다. (…)

공-산은 누구도 독점적인 소유자이기만 했던 적은 없었고, 모두가 평등했던 적도 없었음을 표명하는 말이다. 유한한 생명은 반드시 ‘무엇’을 필요로 하고, ‘누구’인 자와 ‘무엇’이 된 자의 권력 관계는 당연히 불평등하다. 하지만 ‘누구’와 ‘무엇’이 항상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주체(누구)와 대상(무엇)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민감했던 페미니즘은 주체와 대상의 행복한 합일을 추구했고, 자신의 몸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여성성’에서 그 희망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역시 ‘무엇’을 필요로 하는 ‘누구’이고, ‘누구’에 대한 ‘무엇’이기도 하다. 폭력이 없고 이용(exploitation)이 없는 무구한 위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일방적인 폭력도 일방적인 이용도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성이 공-산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평등해진 후에야 공-산이 가능해진다고 여길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 번도 공-산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의 공-산 시스템에서 퇴출될 위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공-산을 이야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서문」중에서

오토포이에시스 이론을 만든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생명 시스템을 살아 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명현상은 생명력이라 불리는 신비한 힘의 작용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살아 있는 시스템의 공통적인 특징은 환경과의 긴밀한 상호 작용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능력, 즉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에 있다고 보았다.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은 하나의 프로세스가 아니라 복수의 프로세스들 간에 존재하는 내적 상호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이 프로세스들 간의 상호 의존성이야말로 시스템의 자기동일성의 원천이다. 그래서 오토포이에시스는 그것의 그리스 어원이 지시하는 바대로 자신의 동일성을 낳는 자율 시스템이고, 그것으로 그 자신을 환경과 구분해내는 시스템이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살아 있는 세포를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의 첫 번째 물질적 사례로 꼽는다.

생전에 마굴리스는 자신의 공생 이론을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오토포이에시스 개념과 연관시켰다. 하지만 공생 이론을 지지하는 일군의 생물학자들은 오토포이에시스 이론이 공생 이론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은 자기보전과 자기 준거적 경계가 지나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마굴리스 이론의 중요한 모델 시스템인 M. 파라독사는 5종류의 생물종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것의 경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M. 파라독사는 그들이 사는 오스트레일리아 흰개미의 내장과 불가분의 관계이고, 나무를 파먹고 사는 흰개미는 나무와 불가분이다. 그래서 M. 파라독사에게 흰개미와 나무조차도 자신과 구별되는 환경이 아니다.
--- p.79~80

인류세는 그 지질학적인 엄밀성은 차치하고, 그 용어의 정치적인 함의 때문에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캐리 울프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용어에 찬성하는 쪽의 절반 정도는 인류세는 인간중심주의가 끼친 폐해를 웅변적으로 지적하는 말이라 여긴다. 그래서 이 용어를 통해 인간중심주의 이후(Post-Humanity)를 위한 탈출구를 만들어보자는 논의들이 있다. 하지만 이 용어에 찬성하는 나머지 절반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특별한 생물종인 호모사피엔스의 행위가 지층에 새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지질학적인 증거들은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생물종인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들에게 지금의 기후 위기나 생태 위기는 큰 문젯거리가 아니다. 발전하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가 이런 위기들을 해결하지 못할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인류세라는 용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 용어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지극히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종 일반의 행위로 이 원인을 돌려버리면 실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쉽게 감추어진다. 이를테면 화석연료 채굴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에너지 기업들과 국가자본의 행위가 인간의 이름 뒤에 숨는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도시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시골마을에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나바호의 토착민들은 석탄 채굴이 야기한 대수층 고갈로 물 부족에 시달린다. 하지만 인류세는 호모사피엔스의 행위라는 일반화된 이름으로 이 불평등을 숨긴다.
--- p.114~115

서양의 로고스(말) 중심주의에서 ‘말’은 명령이다. 말은 발화자의 의도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단일한 의미의 산출을 이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말하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글은 명령이 아니다. 글쓰기는 발화와 이해 사이에 시간적인 간극이 있어서 의미 생성의 지연이 생긴다. 또한 기표의 연쇄작용에 의해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개념과 의미가 산출된다. 이러한 말의 개방성은 오히려 명령을 방해하고, 어지럽힌다. 식수가 글쓰기에 주목한 것은 이런 개방성 때문이다.

글쓰기의 모든 역사가 이성의 역사와 혼동되었던 것은 남성들이 의미화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쓰기 안에는 남성들이 독점했던 의미들을 비틀고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변화의 가능성 자체이다. 사회 그리고 문화적인 구조들의 변형을 예고하는 움직임, 전복적인 사상의 도약대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것이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한 이유다.
---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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