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윤영, 자살로 결론. 꽃잎의 정체도 밝혀져’
지난 23일 자택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가수 하윤영 씨의 사망 사건이 자살로 결론 났다.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으며, 스스로 손목을 그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이번 발표에서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이른바 ‘꽃잎 미스터리’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하윤영 씨의 시신이 발견된 욕조에 붉은색 꽃잎이 띄워져 있었으며, 그 꽃이 에리카라고 전한 것이다. 수사상의 비밀로 여겨진 꽃잎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하윤영 씨의 죽음만큼이나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꽃잎 미스터리’가 사실로 밝혀진 순간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누, 누구세요?”
순간 시우의 왼뺨에 불이 일었다. 노인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시우의 뺨을 갈긴 것이다.
“천사다, 씹새야.”
“왜…, 왜 이러세요?”
짜악. 이번엔 오른뺨이었다.
“기껏 살려줬더니 왜 자꾸 죽으려고 해?”
“뭐, 뭐라고요?”
“이 새끼야, 내가 너 구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누가 구해 달라고 했어요?”
“싸가지 없는 새끼. 말하는 꼬라지 봐라.”
“할아버지가 저를 구했나요?”
“그래.”
“혼자서요?”
“그래.”
“그럼 저번에도 저를 구한 게 할아버지라고요?”
“그래, 이 새끼야.”
--- 「1장 천사」 중에서
세상과의 인연도 앞으로 100일이면 끝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고, 그렇게 꿈꾸었던 아이돌이 되지도 못했다. 행복한 결혼은커녕 하나뿐인 자식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매 순간 옳다고 믿는 일에 최선을 다했건만 현실은 늘 그녀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그녀에게 행복은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패배의 끈을 놓고 싶었다. 태서와 함께하고 싶었다.
태서의 목숨 값으로 받은 돈은 모두 천사의 언덕에 익명으로 기부했다. 태서의 목숨 값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었다. 어차피 곧 태서를 따를 터, 쓸 곳도 시간도 없었다. 경제적 궁핍이 지금까지 그렇게 악착스럽게 괴롭혀 왔지만 마침내 그녀는 그 궁핍을 이겨냈다.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승리감을 느꼈다. 결승선을 알고 달려가는 일이 이렇게 편안하구나.
더 이상 현실의 고통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럴 줄로만 알았다.
--- 「1장 천사」 중에서
권순자. 그녀는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가 뜨면 더욱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두려움을 말하고 인정하는 순간, 정말 두려움에 빠질 것 같았다. 낮에는 밝고 활발한, 밤에는 음울한 생활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녀는 낮과 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움 앞에 마침내 무릎을 꺾었다. 그간 잘 버텨왔지만, 이번 명절은 견디기 힘들었다. 유독 가족이 그리웠다. 목줄이 기도를 막아오는 순간 깨달았다. 그간 잘 이겨왔었던 것이 아니라, 잘 숨겨왔었던 것이었음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임을.
예상치 못한 슬픔이 내려앉은 섬마을은 고요했다. 해청도에서 자살은 유례없는 일이라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해청도마저 그녀를 조용히 보내주려 했는지 장례식 내내 파도조차 숨을 죽였다. 그렇게 그녀는 눈을 감았다.
--- 「3장 해청도」 중에서
“깨끗하지 못하잖아. 갖은 상처로 삶에 구름만 잔뜩 낀 나를 네가 어떻게….”
구름, 이라고 했다. 혜지는 스스로를 늘 그렇게 생각해온 듯했다. 순간 시우의 머리에 혜지와 함께 본 노을이 떠올랐다. 비로소 가족이라고 느꼈던 해청도에서의 그날. 그날의 노을에도 구름이 끼어 있었다.
“너 노을이 좋다고 했지? 태양이 진실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라서.”
“맞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 보고 싶다고도 했었지?”
“그래.”
“혜지야, 모두 맑은 날을 꿈꾸지만, 진정 아름다운 노을을 보려면 적당한 구름이 필요하대. 네게 낀 그 구름이 남은 인생에서 미치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게 도와줄 거야.”
--- 「4장 노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