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을 위하여
2015년, 시대가 던지는 축복의 화두는 단연 ‘젊음’입니다. 귀인의 얼굴은 동안이어야 하고, 창조적 일터의 중심에는 젊은 동력이 필수적이라 말합니다.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나이들었다”는 말만큼 마음에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는 단어가 있을까요. 모두들 나이든다는 것을 쇠락이요 후퇴이며, 버려짐이라 생각합니다. (중략)
사실 나는 지인들과의 뜻하지 않은 사별을 경험했던 인생의 중년기를 지나면서부터 줄곧 죽음과 노년의 시간을 준비했었습니다. ‘나도 이러다 언제 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야릇한 느낌마저 지속되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게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묘한 신념이 생겨나더군요. 이 신념은 내가 모험을 해야 했던 때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람은 왜 가야 하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면 가야 한다’는 결론 속에서, 노년의 시간이란 그 사명을 완성해 가는 귀한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숙제를 완벽하게 다 풀고 가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논리로 보자니, 해야 할 일이 없는데도 살아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몸도 굼뜨고 가진 것 없는 나 같은 노인조차도 인생의 황혼기에 청년의 때에 못지않게 이루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생각이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어서 적잖은 책을 내었던 내가 여든이 넘은 이 나이에 새삼 책을 내야 할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내 노년에 주어진 숙제라면 숙제일 수 있다랄까요.
평생 공부해 왔던 역사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소망의 불꽃이 가슴속에 있어서 물리적 환경의 제한과 늙어감의 고통 속에 신음하기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바라던 소망의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쁨 속에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가야 할 곳을 분명하게 준비한 노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인생의 여유와 타인에 대한 돌봄과 배려, 끝까지 새로운 길을 헤쳐 나가는 개척자의 태도를 갖게 되는 진짜 이유도 나눠 보고 싶었지요.(중략)
나는 어려서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를 통해 나이듦의 좋은 모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내 젊은 시절에 노년을 잘 준비하도록 이끌었고, 노년에 이른 지금도 죽음을 소망 중에 준비하며 감사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이 책도 어느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는지요. 부디 춥고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의 가슴에 이 책의 한 문장이나마 들어가 다가올 봄을 기대하는 소망의 불꽃이 피어나기를 기도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서문」중에서
책에서 배우는 나이드는 지혜
인간은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제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야 공의로우신 하나님도 “그만큼 깨달았으면 됐다” 하시며 은혜의 팔을 들어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사람은 깨닫는 과정에서 사람 구실을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에 대한 해석도 달리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고난이 주어지는 이유가 그 고난으로 망하라는 게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하는 사람, 즉 사랑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라는 뜻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과 같은 한 권의 책. 그 가르침을 새기고 사는 노인이라면 겨울 뒤에 피어날 꽃 한 송이를 기다리며 기도하거나, 비 온 뒤에 뜨는 무지개를 보며 감격하게 되리라 봅니다. 또한 그 기다림과 감격의 힘으로 마침내 폭풍우 치는 언덕도 지나가게 될 게 분명합니다. 무지개를 보는 감동으로 시련을 이겨 내는 인생. 그 시작은 내 평생을 움직이게 할 만한 양서와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 주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굽은 등으로 돋보기를 쓴 채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노인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한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때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어 나만을 위한 세월을 산 적도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세대를 향해 외칠 때입니다. ‘굉장하다’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사랑’이라는 내면의 빛을 누군가에게 뿜어내며 사는 일에 마음을 두라고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외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직접 그렇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돌아보고 살펴 주며 기도해 주는 마음의 한 조각을 간직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자라고 자라 진정으로 성숙한 노인이 되려면, 내 힘만을 의지하여 악착같이 살아왔던 생활을 내려놓고, 겸허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만을 붙드는 순간을 지나와야만 합니다. 야곱을 주제로 한 찬송가 가사 그대로,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
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찬송가 338장)라는 찬송을 날마다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며 살면, 얍복 강가에서의 그날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져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늘의 능력을 맛보아 살도록 인도하실 테니 말입니다. 우리는 하늘 사다리에 올라 영
원까지 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독한 책임을 지고 한평생 고독하게 걸어왔던 사람의 내면에는 하나님께만 위로받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은 세월의 은총이 쌓여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서는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범인(凡人)들은 갖지 못한 은근한 멋이 전해져 옵니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멋이 아닐는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는 비록 나이들어 후패해 가지만 고독을 견뎌 온 세월 속에 쌓인 타인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평안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날이 갈수록 더 드러나는, 그런 모습의 노인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부러워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니 우린 더 이상, 늙어가면서 찾아오는 깊은 고독을 두려워할 이유도,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고독이 찾아올 때면 길모퉁이 어디든 앉아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늘의 위로를 받는 늙은이로서, 은혜의 광채를 머금은 주름을 자랑스레 간직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