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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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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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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0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50g | 153*205*30mm
ISBN13 9788984315051
ISBN10 8984315052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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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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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묻는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
도시 아이가 대답한다. “물이 됩니다.”
산골 아이가 대답한다. “봄이 됩니다.”
선생님이 묻는다. “이 두 마리의 사슴 그림은 무엇을 뜻하지요?”
도시 아이가 대답한다. “먹이를 두고 싸우고 있는 겁니다.”
산골 아이가 대답한다. “짝짓기를 하려고 합니다.” --- p.68

달이 뜨면 마을의 밤은 그야말로 백야다. 유럽의 백야만큼 밝지는 않지만 반달만 떠 있어도 책을 볼 수 있을 정도여서 화장실 가는 데도 손전등이 전혀 필요 없다. 소백산 선녀들이 달빛을 타고 구봉팔문을 들락거리는 듯하다. 달이 뜨지 않는 날 밤의 골짜기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갇히게 되는데 그러면 하늘의 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난다. 겨울이 아니어도 별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밤에는 별들이 아주 가까이 떠 있어서 장대로 휘두르면 엄청 쏟아질 듯하다. 이런 풍경을 누리는 것은 귀농하여 사는 이들, 특별히 산촌 깊이 들어와 사는 이들만의 특권일 것이다. 감사할 일이다. --- p.78

소비문화는 우리의 삶을 가장 완전하게 지배한다. ‘원전건설반대’나 ‘방사능폐기장반대’ 운동은 잘할 수 있지만 전기문명 생활은 조금도 버리지 못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가령 신제품을 출시한 기업이 “이건 당신의 비즈니스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라고 속삭이면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없다는 말이다.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악령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조종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총리인 삼동 린포체는 말했다. “40년 동안 중국의 군사적 점령, 통치 하에서 티베트 민중은 온갖 억압을 당하면서도 티베트 문화를 훼손하지 않고 잘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티베트에 불어 닥친 소비문화는 티베트의 전통문화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단 10년 만에!”--- pp.87-88

콩밭을 망치는 놈은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콩을 심어놓고 새싹이 나올 무렵에는 산비둘기와 긴꼬리까치가 씨콩과 콩 싹을 파먹는다. 햇빛에 반사되는 줄을 쳐놓고 허수아비도 세우지만 효과는 며칠뿐이다. 새들은 아예 허수아비 팔에 앉아 바람을 쐬기도 한다. “농사짓기 힘들지?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다 이렇게 공생하는겨!” 콩잎이 한 뼘 이상 자라날 무렵이 되면, 이번에는 노루와 토끼가 부드러운 콩잎을 잘라 먹는다. 그럭저럭 꽃이 필 무렵 이후라면 콩잎을 잘라먹어도 따먹은 줄기에서 콩이 더 많이 열린다. 콩이란 본래 잎을 일부러 낫으로 쳐주기 때문이다. 이거 딱 한 가지만 서로 공생이 된다고 할까. --- p.99

어머니가 거친 손으로 출가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당신의 얼굴에 대면서 말씀하신다.
“아들아, 내가 보고 싶거든 네 손바닥을 보렴.”
스님은 자기 손바닥을 들어다보는 것이 화두가 되었다. 그 안에서 어머니의 역사와 삶을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손으로부터 큰 사랑이 쉬지 않고 흘렀다. --- p.122

송아지를 낳은 어미 소에게는 특식으로 미역국과 쇠죽도 쒀주고 사료와 볏짚도 듬뿍 준다. 산후조리서비스다. 어미젖에 매달려 있는 송아지나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소의 모습은 ‘평화’이고 ‘자비심’ 자체다. 자기 역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식물은 열매와 씨앗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꽃은 과정일 뿐이다. 동물은 새끼를 가짐에서 자기 생명의 완성을 노래한다.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시들어 지는 꽃은 ‘거룩하다’고 말해야 한다. “송아지 안녕? 반가워! 난 박 신부라고 해.” --- p.152

보통 사람들은 겨울에 농사를 쉬는 걸로 알지만 사실 농사는 겨울에 시작한다. 고추, 야콘 모종은 이미 2월 중순부터 시작한다. 봄이 되어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움직이니 농부를 위하여 봄이 오는 것이다. 얼음이 녹고 날씨가 풀렸기 때문에 새싹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과 얼음 아래 이미 푸른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에 봄이 나타난다. 새싹이 먼저 나와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봄은 게으름뱅이다. --- p.166

아이들은 대부분 편식이 지독하다. 그러다가 두세 달 지나면 달라진다. 산 위의 마을 식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나 튀김, 즉석 식품류는 거의 없고, 대부분 푸성귀다. 활동량이 많아 배는 고픈데 굶지 않으려면 먹어야지 제가 어쩔 것인가. 운동화 끈을 묶을 줄 모르는 아이들 문제도 간단히 해결된다. 방법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밤마다 부모님께 장문의 편지를 쓰며 훌쩍거리지만 그것도 한두 주면 끝이다. 오히려 부모가 섭섭해한다. 닭똥 냄새에 코를 막던 아이들이 닭장에 들어가 생계란을 꺼내먹고선 시치미 떼고 나온다. 담당구역 청소도 깨끗이 한다. --- p.213

고목나무, 기암절벽, 계절마다 변하는 산하와 농작물, 모든 것이 학습도구요 놀이터인 산골에서 아옹다옹 살다 보면 어느새 사계절을 다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을에서는 1년을 마치고 퇴촌하는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대신하여 기능사 자격증을 수여한다. 장작 패기 3급, 쇠죽 쑤기 3급, 연탄재 버리기 2급, 기도찬양 1급……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하고 대단한 자격증들이다.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서 스승이 되고 용기를 주는 은사가 될 것이다. --- p.216

읍내 장날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할머님 세 분을 만났는데, 인사를 하자 한 할머님이 “뉘구시어?” 하고 물었다. 곁에 계시던 최씨 할머님께서 “쩌어게 나마실에, 산 위의 마을 신부님!” 하셨다. 나도 동네에서 오는 전화를 받을 때면 “안녕하세요? 산 위의 마을, 박 신붑니다!” 하고 인사한다. 아직도 습관적으로 ‘박 사장’이라 불렀다가, ‘신부님’이라 불렀다가 헷갈려 하는 분도 있다. ‘박 사장’이건 ‘박 신부’건 나도 동네 주민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지낸다. --- p.228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청사초롱을 만들었다. 헌옷을 잘라 천을 마련하고 마을과 가족들의 청원을 써서 걸었다. 안에다 꼬마전구를 켜놓으니 산촌의 밤을 수놓은 울긋불긋한 색감이 아주 멋있고 아름답다. 태어나실 예수님도 무척 기뻐하실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의 어느 작은 암자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는 성당과 사찰, 교회와 모스크라는 구분이 따로 없을 것이다. --- p.231

자연은 곡선의 세계이고 인공은 직선이다.
산, 나무, 계곡, 강, 바위, 초가집…… 그 선은 모두 굽어 있다.
아파트, 빌딩, 책상, 핸드폰…… 도시의 모든 것은 사각이다.
생명 있는 것은 곡선이고 죽은 것은 직선이다.
어쨌든 도시나 산촌이나 사람만은 곡선이다. 아직은 자연이다. --- p.236

서울과 대도시에서 살던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입촌하거나 생활유학을 오게 되면, 마을에 들어온 순간부터 형식이란 것이 해체되어버린다. 고무신을 신고 학교 가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가 하면, 쌀쌀한 날 아침에 간이 담요를 배트맨처럼 어깨에 두르고 가는 애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자유이고 자연이고 야성이고 내가 평소에 그렇게 강조하는 생활인데, 곰팡이 핀 구두를 보니 이건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책임자 신부인 나의 폼생이 이러면 가족들이나 아이들이라도 깔끔하고 스마트하면 좋을 텐데, 이건 뭐 그 신부에 그 식구들이다. 하기야 각자 마음을 내려놓고 제 폼대로 살려고 온 사람들인데, 아이든 어른이든 내 입맛대로 요구할 수는 없다. --- p.241

우리 마을 가족들은 좋은 일꾼을 보내달라고 세 번째 천일기도를 하고 있다. 전문성과 경험과 자격증까지 가졌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더욱 성장시켜나가며 양성을 격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산이가 커서 뭔가 하나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엇을 하게 될까? 유치원 때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는데 1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축구에 빠져 프로 축구선수가 꿈이다. 빨간 유니폼에 박지성의 7번을 달고 다니더니, 요즘은 줄무늬 옷에 ‘메시 10번’을 달고 다닌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세월에 커서 공동체의 일꾼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될까? 우선 나부터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p.249

제멋대로 생활하라.
그러나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라.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라.
그러나 서로에게는 선을 행하라.
좋은 것에 감탄하고 기뻐하며 하느님의 손길로 춤추고 노래하라.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은‘신발 정리’를 잘하는 것이다.(어린이 캠프 훈화) --- p.280

어미의 태 속이 송아지 본래의 집이요 학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태 속'을 생각한다. 인간이란 생명에게 가장 완벽한 환경이 태 속이다. 알맞은 수분 함량과 영양성분, 안전한 놀이터, 쾌적한 보온과 완벽한 보호 시스템, 어미에 의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태 속은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이다. 바로 거기서 자기 존재가 시작되었기에 사람들은 그곳을 고향으로 삼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 본능적으로 원초의 환경을 회고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옛날 어느 때인가 가장 완벽한 사랑 안에서 행복했던 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그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아버지, 제가 창세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곳으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이때의 아버지는 가부장 시대 친밀성의 비유일 뿐 남녀의 성性이 아니다. 하느님은 절대 존재이시기에 반쪽짜리 개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하느님 어머니’로 부를 수 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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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마을 어린이들과 식탁을 마주하고 함께 기도하는 동안 어린 시절의 ‘오래된 그리움’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감정은 나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냥’ 내면에 지니고 있는 본래적 느낌이자 원체험과 같은 기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 신부님께서 말하는 “원안의 삶”이란, 바로 이 ‘오래된 기억’이 태초의 인간과 자연 생태가 조화를 이룬 삶으로 이어져 있으며 그 사회적 실천 형태를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마쓰우라 고로(가톨릭 주교, 일본 오사카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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