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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맛의 사과
중고도서

빙하 맛의 사과

: 여행자의 조식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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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30g | 130*188*16mm
ISBN13 9791195592395
ISBN10 119559239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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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  여행자의 조식
  •  특이사항 : 세계일주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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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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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커피가 몸속을 타고 흐르자 쓰지 않던 근육들이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부지런히 샤워를 하고, 낯선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남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오늘도 끝내주는 날씨군, 하며 식당 안에 가득 퍼진 레몬 빛 햇살과 신선한 바람에 감동한다. 여행의 근육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저녁과 새벽 사이, 홀로 밤을 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던 근육들이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분이 간질간질하다. 커피를 더 마실 수 있겠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프레고, 프레고 하며 다시 한가득 주전자를 채워준다. 프레고의 아침이 시작된다.

많이 보는 게 중요하지 않아질 때가 오지.
오래 전, 여행 선배들이 말했다. 그 말은 신묘한 점쟁이의 예언처럼 딱 맞았다.
많이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시간 들여 천천히 보고 싶다. 먹는 것과 머무는 곳에 좀 더 돈을 쓰고 무엇을 보기 위해 조바심 내거나 안달내지 않고 싶다. 전전긍긍과 근심걱정은 돌아가면 차고 넘치게 할 수 있다. 우선은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니스에 머무는 동안 생활은 간소해진다. 바게트 빵과 와인 한 병, 그리고 과일 약간. 매일 지나치는 시장과 집 앞 가게에서 사는 것으로 족하다. 집을 쓸고 닦아 청결을 유지해야 할 의무도 없고, 한꺼번에 일주일치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비워내야 하는 고단함도 없다. 일상의 일들은 저만치 물러나고 유예의 시간이 조용히 흐른다.

고요한 사막에 어둠이 내리자, 검은 밤에 은빛 실로 짠 촘촘한 그물이 가득 드리워졌고 어느 순간 밤을 가로질러 길게 별이 하나 떨어지더니 하얀 유성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별이 떨어진 사막은 희미하게 빛나고 부드러운 모래는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아침 메뉴를 짐작해본다. 버터를 두르고 구운 식빵, 아니 그보다는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냄새다. 달걀과 우유에 적셔 구운 프렌치토스트가 아닐까. 거기에 마리가 직접 만든 잼과 막 내린 뜨거운 커피가 곁들여지겠지.
주방문이 열리고 마리가 소리쳐 부른다.
“아침 먹으러 와요!”
우리는 활짝 웃으며 맛있는 냄새가 나는 주방을 향해 달린다.
작은 섬에 하룻밤 묵었다. 숙소 주변에는 사과나무가 가득 서 있고 물기를 품은 잔디 위로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땅에 떨어진 건 먹어도 된다고 숙소의 직원이 말했다. 덜 여문 사과는 정신이 번쩍 나도록 새콤했지만 아삭, 하고 상쾌한 맛이 났다. 빙하의 맛일 것이다. 창밖으로 피오르드가 보였다.

여행을 다녀오면 대단한 이야깃거리나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마르코 폴로의 시대 때나 가능한 이야기고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만 잠시 들여다봐도 우유니 사막에 다녀온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사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내게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담장 위에 내려쬐는 햇살이 예뻤다거나 그때 부는 바람이 나붓했다거나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를 봤다거나 하는 기억을 수줍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 눈에 띈 ‘뭔가’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이끌리는 ‘뭔가’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그 ‘뭔지 모르는’ 것이 내 눈에 문득 띄어, 내 안으로 슬며시 들어와 부드러운 눈처럼 조용히 쌓인다. 이따금 눈 위를 처음 걷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발자국이 사뿐사뿐 나기도 해서 나는 그것을 홀린 눈으로 들여다본다. 내 눈이 머무는 대상은 대개는 작거나 오래된 것, 구석과 그늘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내 취향은 음침한 것인가 보다.

하룻밤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창문을 열자 차갑고 푸른 공기가 밀려들었다. 담요를 두르고 주방으로 가서 가스 불을 켜고 주전자를 올린다. 우선은 뜨거운 커피를. 전날 먹고 남은 수프를 데워 조금 굳어진 빵과 천천히 먹고 나서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한 뒤 하얀 세상으로 산책 나가고 싶다. 이따금 창밖으로 눈 구경을 하며 하루 종일 틀어박혀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 뭔가 신비롭고 근사한 것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스웨덴에서 아침마다 먹던 시나몬 향 시리얼을 한 상자 사서 트렁크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스웨덴이 그리워지는 날, 찬장에서 상자를 꺼낼 것이다. 그릇장에서 작은 여름의 섬에서 산 나무 볼도 꺼낼 것이다. 마당의 사과나무가 보이는 창으로 푸른빛이 스며들던 여행의 아침을 떠올리며 시나몬 향이 나는 시리얼을 사각사각 먹게 될 언젠가의 아침을 나는 기다린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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