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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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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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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820g | 152*225*35mm
ISBN13 9791196608422
ISBN10 119660842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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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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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존 웨슬리는 목회안내자로서 놀라운 은사와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웨일즈와 잉글랜드, 미국의 조지아 식민지와 북미 원주민 지역,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셀 수 없이 많은 마을을 쉴 새 없이 순회하면서 수만 명의 영혼을 돌보며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일에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쳤다. 그의 목회 사역의 많은 내용이 그의 편지와 일지에서 드러나지만, 그 모든 사역의 토대가 무엇인지는 그의 교육적 설교에 나타난다.

오늘날에도 웨슬리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현대의 정신과 기술에 빠져 있는 사람도 여전히 웨슬리의 영적인 조언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웨슬리는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과 언어나 시대적 차이는 크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가까웠다. 목회와 관련해 그는 큰 장점을 가진 역사적 원천으로 영국국교회 전통과 성결 전통, 청교도 전통 외에도, 특별히 교부들의 글과 루터나 칼빈 등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자의 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목회에 관한 웨슬리의 가르침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초기 몇 세기 동안의 최고의 기독교 저술가들의 가르침과 매우 닮아 있다. 복음은 평이한 언어를 말하는 보통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웨슬리는 가르침에서 평이한 용어를 사용했다. 개혁주의, 가톨릭, 경건주의, 은사주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중이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듣거나, 그 가르침을 반복해 전달하는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들었다. 그들은 웨슬리의 가르침이 고대 기독교의 보편적 가르침의 원천이었던 가장 훌륭한 지도자들의 것과 매우 유사함을 즉시 알아보았다.


1장 목회의 직분과 은사
영혼을 돌보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자연적 재능은 마귀와 견줄 정도의 빠른 이해력이다. 영혼을 돌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상황에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하려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선한 마음이 느린 이해력으로 인한 흠결을 언제나 채워주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자신 스스로가 어리석은데 어떻게 어리석은 자를 도울 수 있겠는가?”

웨슬리가 세 번째로 강조한 자연적 재능은 좋은 기억력이다. 목회에서는 기억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목회자는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마 13:52) 일을 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을 돌보는 일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목회를 위해 잘 준비되었다는 것은 적절한 때에 성경적 진리를 특별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성경은 목회자가 사람들에게 전해줄 기쁜 소식을 캐내는 채석장이다. 기억력이 나쁜 목회자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2장 상담 목회

험담은 때로 그 대상에 대한 호의의 표현과 함께 부드럽고 경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험담은 재미있게 비꼬는 유머러스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러나 유머를 가장해 자기 독선에 빠져 일시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또 험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어떤 부분에 관해 남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는 데서 희열을 느끼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의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가장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육체의 시험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죄며, 사랑으로 연결된 그리스도인 신자의 공동체는 이 죄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험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묵상하면 피할 수 있다. 성경을 길잡이로 삼을 때 신자 공동체는 이 죄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세 단계를 거치는 방법으로 모든 험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과 험담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3장 영혼 돌봄

유감스러운 사실은, 웨슬리 시대와 우리 시대 목회자들의 기본적이고 상투적인 처방의 “유일한 목표”는 온화한 훈계로 바로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를 주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조언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현대의 쾌락주의적 관심에 집착하면서 사람들을 돌보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처럼 ‘제대로 섞지 않은 반죽을 사용하는 미장이들’, 헛된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들은 …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에 적합한 대상인지 구별조차 하지 않고 약속을 적용해 매우 저속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더럽힌다.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약처럼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약도 질병을 일으킨 원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을 알게 되면 그것이 자연히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어둠이 의도적으로 범한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지 바르게 점검해야 한다. 만약 죄 때문이라면 외적인 죄 때문인가, 내적인 죄 때문인가? 또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원인을 바르게 발견하려면 성령의 지도 아래 온화한 권고를 주거나 받기 위해 경청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광야의 상태에서 방황할 때 자신의 양심을 면밀히 살펴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시험이 작동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의무다


4장 가정 목회

웨슬리는 자유방임적 자녀 교육에 반대해 적극적으로 싸웠다. 웨슬리는 방임적 관점이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한 것과 상당히 일치”함을 잘 알고 있었다. 루소의 교육 사상은 존 듀이, 모티머 아들러, 윌리엄 킬패트릭 같은 근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많은 교육학자들을 사로잡았다. 웨슬리는 『에밀』에 대해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무신론자가 쓴 글 중 가장 무의미하고 어리석고 부적절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웨슬리는 의지의 형성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녀의 이해력을 형성하는 일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며 서서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지를 굴복시키는 일은 당장 해야 할 일이며 빠를수록 좋다.” “누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잔인한 일이라고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게 하라.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잔인한 일이다.” 자기 고집은 모든 죄와 불행의 뿌리이기에, 아이가 자기 고집을 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확실히 아이가 언젠가는 불행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자기 고집의 교정은 “신앙교육의 유일한 토대다.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아이는 그 자신의 이해가 성숙해질 때까지 부모의 판단력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많은 신앙의 부모 밑에서 전혀 신앙이 없는 자녀가 생겨나는 주된 원인은, 자녀의 자기 고집을 꺾는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장 인생 주기별 가정 목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기에 눈물 흘리는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많은 행복한 순간을 생각하며, 그간 나눈 정으로 인해 애간장 녹아내리는 마음을 생각하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에서 경고한 것처럼, 우리는 슬픔이 “육체의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용기를 잃게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죽음으로 인해 “지친 나그네는 드디어 그가 갈망하던 집으로 돌아갔다.” “내 눈물이나 우는 소리가 그녀의 낡고 버려진 집으로 그 영혼을 돌아오게 할 능력이 있는가? 혹 그런 능력이 있더라도 이 염려와 고통과 불행의 땅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가 지금 얻은 그 행복한 나라를 버릴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헛된 생각인가! 그는 절대로 나에게 돌아올 수 없고, 결코 돌아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 왜 우리는 지금 큰 행복을 누리고 있을 그 영혼이 나에게로, 그리고 이 죄 많은 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몰인정해야 하는가?”

... 지금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거대한 구렁이 놓여있으나, 언젠가 그 구렁이 메워질 때가 올 것이다. 슬픔이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는, 나도 머지않아 속히 그에게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견고한 위로로 삼아야 한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날 것이며 그 때는 부모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 완전한 사랑, 진실하고도 숭고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내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때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픔이 날아가 버리는 것은, 내가 누릴 행복 중 가장 작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 “그 일의 밝은 측면을 보고, 우리의 날도 그림자처럼 지나갈 것임을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깊이 생각하라.”


6장 교회와 말씀 목회

웨슬리는 “가능한 모든 논란을 해결”하려는 결심으로 이 설교를 통해 “교회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해 오셨으며,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어떻게 일하셨는지” 밝히기 위해, 성경에서 “심각할 정도로 악을 저지른” 엘리 제사장의 아들의 사례를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이 그들의 성적 범죄로 크게 마음이 상했다. 그들은 희생제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제사장들을 혐오했기에, 공적인 예배를 완전히 그치지는 않았으나 예배를 드리면서도 큰 고통을 받았다.” 비록 제사장의 가족들이 엘리의 아들들처럼 “심각할 정도로 악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제사장이 드린 희생제사는 존중되어야 했다.

예레미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은 모든 죄악 속에서 뒹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례 자체를 폐한 것은 아니다. 제사장 직분의 오용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일으키는 성령 충만한 사역의 새로운 시작을 가져왔으나, 이러한 일조차도 곧 왜곡되고 타락하고 말았다. 웨슬리는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는 바울의 말을 잘못 인용해 분리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경고했다. 바울이 분리되라고 한 것은 마귀와 그 백성이지, 교회가 아니다.


7장 세례 목회

웨슬리는 이미 세례를 받은 청중에게, 비록 그들이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더라도 그것이 꼭 세례 받은 모든 개인이 실제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사람은 탐식, 거짓말, 험담, 의도적 악행으로 자신이 받은 세례의 상태에서 타락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세례를 부정하고 세례 신앙조차 부인함으로 의도적으로 세례를 무효화해 아무 열매가 없게 만들 수도 있다.

... 한 번 세례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구원받았다며 독선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에게 웨슬리는 경고했다. “당신이 세례 시 거듭났다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 때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거듭나야 합니다.” 그들의 현재 행동은, 그들이 세례를 받을 당시에는 세례 그 자체로 효력이 있었으나, 그 후 나쁜 결정을 내리는 일에 그들이 스스로 동의했고 그런 일이 축적됨으로 인해 그 효력이 의문에 놓이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세례에서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주어진 내적 은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현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해질 수 있다. 이 생명은 살아있는 포도나무와의 생명력 있는 관계를 통해 자라고 성숙한다.


8장 성찬 목회

어떤 사람은 성찬을 반복하면 느낌이 축소되어 덜 거룩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자 하는 부단한 의지가, 현재에 제공된 떡과 잔에 대한 존중을 감소시킨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기 원하시는 행복에 대해 싫증나게 만들거나 덜 알고 싶어지게 만든단 말인가?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혹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명령에 대한 존중을 감소시킬 때는 당신이 그 명령을 어겨도 좋다고 말씀하셨는가?” ... 감정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단지 “그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기 위해 … 바르게 준비하지 않았음”을 나타낼 수 있다. ... “우리가 필요한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기 때문에, 성찬에서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성찬을 거부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

... 어떤 사람은 선의로 “나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성찬에 참여했지만 내가 바라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찬의 초점이 즉각적으로 느끼는 감정적 유익에 있지 않음을 가르쳤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행한 후 나머지는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거기서 어떤 유익을 느끼든 못 느끼든 그가 명하신 것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름으로 우리는 유혹이 닥쳐오지 않도록 방벽을 놓는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많은죄와 유혹에서 보호받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성찬에서 감정적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자주 성찬을 받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성찬이 가져오는 정서적 은혜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신자에게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9장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

분열은 그 자체로 악할 뿐 아니라 “악한열매를 맺는다. 분열은 자연스럽게 가장 유해한 결과를 낳는데” 분열은 “서로를 향한 맹렬하고 무자비한 비난 ... 모욕과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언쟁이 하나님의 성령을 얼마나 근심하시게 하겠는가!” 이런 다툼은 “그 형제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사역을 진척시켜나가던 사람으로 열의를 잃게 만들어 … 먼저는 경건의 능력을, 다음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전적으로 파괴한다. “기독교 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사소한 것이 전도의 장애물이 된다. 그 결과는 “한때 하나님의 얼굴빛 속을 걸었던 수천 명의 영혼,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평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문제는 여전히 발생한다. 비록 오늘날의 분리는 주로 복음주의적 신자가 자유주의적 사상이 우세한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것으로 말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성직자가 기독교의 뿌리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험악한 분열을 부추기는 사람은 역사적 기독교 전통을 지키려는 평신도가 아니라 그 전통을 지키지 않는 성직자들이다. 오늘날 분리에 관한 논의는, 교회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언약적 책임성을 지녀야 하며, 그것이 그 자녀 및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강조해 온 전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을 부인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기독교 전통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교리를 더 좋게 바꾸겠다고 자처하는 그들이다.


10장 효과적인 교회 리더십

기독교 복음이 바르게 수용되면 그것은 근면과 자기 책임성을 낳는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 단계는 이러한 검약의 습관이 부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돌보는 자선의 증가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는 감사와 관대한 나눔을 증가시키기보다 교만과 세속적인 마음, 악한 성품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여기서 깊은 모순이 발생한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진지해질수록 그는 더 절약하게 되고, 더 절약할수록 더 부유해지며, 더 부유해질수록 더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더 교만해질수록 자선행위는 줄어드는가? 웨슬리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 증거를 제시했다.

“기독교, 참되고 성경적인 기독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뿌리를 침식해 자멸하는 경향”을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된 기독교는 그것이 전파되는 곳에서 자연적으로 근면과 절약을 일으키고, 그것은 자연히 부를 낳는다. 그런데 부는 자연스럽게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 기독교를 파괴하는 모든 기질을 낳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참된 기독교가 널리 퍼진 곳마다 기독교는 “자신의 토대를 침식”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복음적 부흥운동의 첫 세대에서 시작해 둘째와 셋째 세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는 안타깝게도 이 암울한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 그러나 이 자멸적 순환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자기 부인의 공동체를 지속하고 영속할 수 있다는 소망은 불가능한가?


11장 복음 전도 목회

웨슬리는 플레처가 가졌던 확고한 신앙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종을 위해 특별히 베푸신 능력과 자비”로 묘사했다. 그는 플레처처럼 말하는 기술, 온화한 교육, 언어와 철학과 신학적 훈련이라는 여러 덕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고, 또 예수 그리스도와 깊고도 변함없는 교제를 보여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 플레처는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었고, 아이들과 후세대 양육에 깊이 헌신했다. 돈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웨슬리는 “플레처처럼 죄에 대한 혐오와 죄인에 대한 사랑이 공존하는 경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나는 모든 면에서 그렇게 흠 없는 사람을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그를 따르도록 노력합시다.”

...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관한 웨슬리의 설교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의 모범에 관한 설교는, 목회의 정수에 관한 웨슬리의 가르침 중에서 내가 발견한 최고의 증언이다. 웨슬리는 플레처에게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성령의 능력에 관한 살아있는 증거를 보았다.

--- 본문 중에서
서론

존 웨슬리는 목회안내자로서 놀라운 은사와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웨일즈와 잉글랜드, 미국의 조지아 식민지와 북미 원주민 지역,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셀 수 없이 많은 마을을 쉴 새 없이 순회하면서 수만 명의 영혼을 돌보며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일에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쳤다. 그의 목회 사역의 많은 내용이 그의 편지와 일지에서 드러나지만, 그 모든 사역의 토대가 무엇인지는 그의 교육적 설교에 나타난다.

오늘날에도 웨슬리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현대의 정신과 기술에 빠져 있는 사람도 여전히 웨슬리의 영적인 조언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웨슬리는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과 언어나 시대적 차이는 크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가까웠다. 목회와 관련해 그는 큰 장점을 가진 역사적 원천으로 영국국교회 전통과 성결 전통, 청교도 전통 외에도, 특별히 교부들의 글과 루터나 칼빈 등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자의 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목회에 관한 웨슬리의 가르침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초기 몇 세기 동안의 최고의 기독교 저술가들의 가르침과 매우 닮아 있다. 복음은 평이한 언어를 말하는 보통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웨슬리는 가르침에서 평이한 용어를 사용했다. 개혁주의, 가톨릭, 경건주의, 은사주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중이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듣거나, 그 가르침을 반복해 전달하는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들었다. 그들은 웨슬리의 가르침이 고대 기독교의 보편적 가르침의 원천이었던 가장 훌륭한 지도자들의 것과 매우 유사함을 즉시 알아보았다.


1장 목회의 직분과 은사
영혼을 돌보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자연적 재능은 마귀와 견줄 정도의 빠른 이해력이다. 영혼을 돌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상황에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하려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선한 마음이 느린 이해력으로 인한 흠결을 언제나 채워주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자신 스스로가 어리석은데 어떻게 어리석은 자를 도울 수 있겠는가?”

웨슬리가 세 번째로 강조한 자연적 재능은 좋은 기억력이다. 목회에서는 기억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목회자는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마 13:52) 일을 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을 돌보는 일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목회를 위해 잘 준비되었다는 것은 적절한 때에 성경적 진리를 특별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성경은 목회자가 사람들에게 전해줄 기쁜 소식을 캐내는 채석장이다. 기억력이 나쁜 목회자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2장 상담 목회

험담은 때로 그 대상에 대한 호의의 표현과 함께 부드럽고 경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험담은 재미있게 비꼬는 유머러스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러나 유머를 가장해 자기 독선에 빠져 일시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또 험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어떤 부분에 관해 남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는 데서 희열을 느끼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의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가장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육체의 시험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죄며, 사랑으로 연결된 그리스도인 신자의 공동체는 이 죄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험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묵상하면 피할 수 있다. 성경을 길잡이로 삼을 때 신자 공동체는 이 죄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세 단계를 거치는 방법으로 모든 험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과 험담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3장 영혼 돌봄

유감스러운 사실은, 웨슬리 시대와 우리 시대 목회자들의 기본적이고 상투적인 처방의 “유일한 목표”는 온화한 훈계로 바로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를 주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조언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현대의 쾌락주의적 관심에 집착하면서 사람들을 돌보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처럼 ‘제대로 섞지 않은 반죽을 사용하는 미장이들’, 헛된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들은 …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에 적합한 대상인지 구별조차 하지 않고 약속을 적용해 매우 저속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더럽힌다.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약처럼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약도 질병을 일으킨 원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을 알게 되면 그것이 자연히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어둠이 의도적으로 범한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지 바르게 점검해야 한다. 만약 죄 때문이라면 외적인 죄 때문인가, 내적인 죄 때문인가? 또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원인을 바르게 발견하려면 성령의 지도 아래 온화한 권고를 주거나 받기 위해 경청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광야의 상태에서 방황할 때 자신의 양심을 면밀히 살펴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시험이 작동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의무다


4장 가정 목회

웨슬리는 자유방임적 자녀 교육에 반대해 적극적으로 싸웠다. 웨슬리는 방임적 관점이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한 것과 상당히 일치”함을 잘 알고 있었다. 루소의 교육 사상은 존 듀이, 모티머 아들러, 윌리엄 킬패트릭 같은 근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많은 교육학자들을 사로잡았다. 웨슬리는 『에밀』에 대해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무신론자가 쓴 글 중 가장 무의미하고 어리석고 부적절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웨슬리는 의지의 형성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녀의 이해력을 형성하는 일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며 서서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지를 굴복시키는 일은 당장 해야 할 일이며 빠를수록 좋다.” “누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잔인한 일이라고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게 하라.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잔인한 일이다.” 자기 고집은 모든 죄와 불행의 뿌리이기에, 아이가 자기 고집을 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확실히 아이가 언젠가는 불행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자기 고집의 교정은 “신앙교육의 유일한 토대다.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아이는 그 자신의 이해가 성숙해질 때까지 부모의 판단력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많은 신앙의 부모 밑에서 전혀 신앙이 없는 자녀가 생겨나는 주된 원인은, 자녀의 자기 고집을 꺾는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장 인생 주기별 가정 목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기에 눈물 흘리는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많은 행복한 순간을 생각하며, 그간 나눈 정으로 인해 애간장 녹아내리는 마음을 생각하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에서 경고한 것처럼, 우리는 슬픔이 “육체의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용기를 잃게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죽음으로 인해 “지친 나그네는 드디어 그가 갈망하던 집으로 돌아갔다.” “내 눈물이나 우는 소리가 그녀의 낡고 버려진 집으로 그 영혼을 돌아오게 할 능력이 있는가? 혹 그런 능력이 있더라도 이 염려와 고통과 불행의 땅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가 지금 얻은 그 행복한 나라를 버릴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헛된 생각인가! 그는 절대로 나에게 돌아올 수 없고, 결코 돌아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 왜 우리는 지금 큰 행복을 누리고 있을 그 영혼이 나에게로, 그리고 이 죄 많은 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몰인정해야 하는가?”

... 지금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거대한 구렁이 놓여있으나, 언젠가 그 구렁이 메워질 때가 올 것이다. 슬픔이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는, 나도 머지않아 속히 그에게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견고한 위로로 삼아야 한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날 것이며 그 때는 부모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 완전한 사랑, 진실하고도 숭고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내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때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픔이 날아가 버리는 것은, 내가 누릴 행복 중 가장 작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 “그 일의 밝은 측면을 보고, 우리의 날도 그림자처럼 지나갈 것임을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깊이 생각하라.”


6장 교회와 말씀 목회

웨슬리는 “가능한 모든 논란을 해결”하려는 결심으로 이 설교를 통해 “교회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해 오셨으며,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어떻게 일하셨는지” 밝히기 위해, 성경에서 “심각할 정도로 악을 저지른” 엘리 제사장의 아들의 사례를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이 그들의 성적 범죄로 크게 마음이 상했다. 그들은 희생제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제사장들을 혐오했기에, 공적인 예배를 완전히 그치지는 않았으나 예배를 드리면서도 큰 고통을 받았다.” 비록 제사장의 가족들이 엘리의 아들들처럼 “심각할 정도로 악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제사장이 드린 희생제사는 존중되어야 했다.

예레미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은 모든 죄악 속에서 뒹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례 자체를 폐한 것은 아니다. 제사장 직분의 오용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일으키는 성령 충만한 사역의 새로운 시작을 가져왔으나, 이러한 일조차도 곧 왜곡되고 타락하고 말았다. 웨슬리는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는 바울의 말을 잘못 인용해 분리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경고했다. 바울이 분리되라고 한 것은 마귀와 그 백성이지, 교회가 아니다.


7장 세례 목회

웨슬리는 이미 세례를 받은 청중에게, 비록 그들이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더라도 그것이 꼭 세례 받은 모든 개인이 실제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사람은 탐식, 거짓말, 험담, 의도적 악행으로 자신이 받은 세례의 상태에서 타락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세례를 부정하고 세례 신앙조차 부인함으로 의도적으로 세례를 무효화해 아무 열매가 없게 만들 수도 있다.

... 한 번 세례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구원받았다며 독선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에게 웨슬리는 경고했다. “당신이 세례 시 거듭났다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 때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거듭나야 합니다.” 그들의 현재 행동은, 그들이 세례를 받을 당시에는 세례 그 자체로 효력이 있었으나, 그 후 나쁜 결정을 내리는 일에 그들이 스스로 동의했고 그런 일이 축적됨으로 인해 그 효력이 의문에 놓이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세례에서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주어진 내적 은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현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해질 수 있다. 이 생명은 살아있는 포도나무와의 생명력 있는 관계를 통해 자라고 성숙한다.


8장 성찬 목회

어떤 사람은 성찬을 반복하면 느낌이 축소되어 덜 거룩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자 하는 부단한 의지가, 현재에 제공된 떡과 잔에 대한 존중을 감소시킨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기 원하시는 행복에 대해 싫증나게 만들거나 덜 알고 싶어지게 만든단 말인가?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혹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명령에 대한 존중을 감소시킬 때는 당신이 그 명령을 어겨도 좋다고 말씀하셨는가?” ... 감정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단지 “그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기 위해 … 바르게 준비하지 않았음”을 나타낼 수 있다. ... “우리가 필요한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기 때문에, 성찬에서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성찬을 거부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

... 어떤 사람은 선의로 “나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성찬에 참여했지만 내가 바라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찬의 초점이 즉각적으로 느끼는 감정적 유익에 있지 않음을 가르쳤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행한 후 나머지는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거기서 어떤 유익을 느끼든 못 느끼든 그가 명하신 것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름으로 우리는 유혹이 닥쳐오지 않도록 방벽을 놓는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많은죄와 유혹에서 보호받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성찬에서 감정적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자주 성찬을 받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성찬이 가져오는 정서적 은혜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신자에게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9장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

분열은 그 자체로 악할 뿐 아니라 “악한열매를 맺는다. 분열은 자연스럽게 가장 유해한 결과를 낳는데” 분열은 “서로를 향한 맹렬하고 무자비한 비난 ... 모욕과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언쟁이 하나님의 성령을 얼마나 근심하시게 하겠는가!” 이런 다툼은 “그 형제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사역을 진척시켜나가던 사람으로 열의를 잃게 만들어 … 먼저는 경건의 능력을, 다음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전적으로 파괴한다. “기독교 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사소한 것이 전도의 장애물이 된다. 그 결과는 “한때 하나님의 얼굴빛 속을 걸었던 수천 명의 영혼,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평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문제는 여전히 발생한다. 비록 오늘날의 분리는 주로 복음주의적 신자가 자유주의적 사상이 우세한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것으로 말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성직자가 기독교의 뿌리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험악한 분열을 부추기는 사람은 역사적 기독교 전통을 지키려는 평신도가 아니라 그 전통을 지키지 않는 성직자들이다. 오늘날 분리에 관한 논의는, 교회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언약적 책임성을 지녀야 하며, 그것이 그 자녀 및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강조해 온 전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을 부인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기독교 전통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교리를 더 좋게 바꾸겠다고 자처하는 그들이다.


10장 효과적인 교회 리더십

기독교 복음이 바르게 수용되면 그것은 근면과 자기 책임성을 낳는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 단계는 이러한 검약의 습관이 부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돌보는 자선의 증가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는 감사와 관대한 나눔을 증가시키기보다 교만과 세속적인 마음, 악한 성품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여기서 깊은 모순이 발생한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진지해질수록 그는 더 절약하게 되고, 더 절약할수록 더 부유해지며, 더 부유해질수록 더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더 교만해질수록 자선행위는 줄어드는가? 웨슬리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 증거를 제시했다.

“기독교, 참되고 성경적인 기독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뿌리를 침식해 자멸하는 경향”을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된 기독교는 그것이 전파되는 곳에서 자연적으로 근면과 절약을 일으키고, 그것은 자연히 부를 낳는다. 그런데 부는 자연스럽게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 기독교를 파괴하는 모든 기질을 낳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참된 기독교가 널리 퍼진 곳마다 기독교는 “자신의 토대를 침식”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복음적 부흥운동의 첫 세대에서 시작해 둘째와 셋째 세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는 안타깝게도 이 암울한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 그러나 이 자멸적 순환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자기 부인의 공동체를 지속하고 영속할 수 있다는 소망은 불가능한가?


11장 복음 전도 목회

웨슬리는 플레처가 가졌던 확고한 신앙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종을 위해 특별히 베푸신 능력과 자비”로 묘사했다. 그는 플레처처럼 말하는 기술, 온화한 교육, 언어와 철학과 신학적 훈련이라는 여러 덕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고, 또 예수 그리스도와 깊고도 변함없는 교제를 보여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 플레처는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었고, 아이들과 후세대 양육에 깊이 헌신했다. 돈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웨슬리는 “플레처처럼 죄에 대한 혐오와 죄인에 대한 사랑이 공존하는 경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나는 모든 면에서 그렇게 흠 없는 사람을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그를 따르도록 노력합시다.”

...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관한 웨슬리의 설교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의 모범에 관한 설교는, 목회의 정수에 관한 웨슬리의 가르침 중에서 내가 발견한 최고의 증언이다. 웨슬리는 플레처에게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성령의 능력에 관한 살아있는 증거를 보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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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은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진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책이다. 존 웨슬리가 목회의 현장에서 고민했을 신학이 고스란히 담겨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의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으로, '신학'의 본래적 의미를 우리에게 온전히 가르친다.

『목회신학』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목회의 전반을 다룬다. 목회자의 직분과 은사로 시작하여 상담, 영혼 돌봄, 가정, 인생 주기별, 그리고 말씀과 성례, 리더십과 복음전도에 이르기까지 목회 현장에서 정립해야 하는 가치기준을 성경과 전통에 기초해 우리에게 제시한다. 따라서 21세기 오늘의 목회 현장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바르고 건강한 목회를 생각하는 목회자라면 평생 소장하며 읽을 만한 귀한 책이다.

『목회신학』을 읽으며 세 가지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웨슬리 신학의 넓이와 깊이의 탁월함이다. 나는 웨슬리에 대해 늘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웨슬리 신학은 대체로 구원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칼빈주의와의 끝없는 논쟁도 구원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왜 웨슬리의 신학에는 주제의 다양함과 깊이가 결여되어 있는가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웨슬리 신학의 다른 주제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성례에 관한 그의 관점은 무엇인지 웨슬리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회신학』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해결되었다. ... 웨슬리는 성경적 신학을 교회에 적용해 영혼을 돌보고 훈련하며 거룩함으로 이끄는 길을 제시한다. 본 책을 통해 목회 안내자로서 웨슬리를 깊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저자 토머스 C. 오든의 탁월함이다. 저자는 웨슬리의 모든 저술에 담긴 핵심 내용을 축약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웨슬리에 관한 1차 자료는 방대하다. 151편의 교육적 설교, 60년 분량의 사역 일지와 자필 일기, 여덟 권의 서신 전집, 다수의 논문, 성경 주해, 교리를 설명한 소책자 등 방대한 자료를 읽고 종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칼빈에 비해 웨슬리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웨슬리의 목회신학은 오늘의 교회를 위한 매우 소중한 자산임에도, 그동안 목회신학자로서 웨슬리의 도움을 충분히 받아오지 못한 것은, 웨슬리의 광범위한 작품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저자는 웨슬리 신학의 핵심과 의도를 종합해 우리에게 쉽고 체계적으로 풀어 전달해준다. 저자의 탁월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평이한 듯하나 내용은 깊고, 일반적인 듯하나 성경에 근거를 두며, 가벼운 듯하나 학문성에 무게감이 있다. 특별히 웨슬리의 1차 자료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셋째는 번역자의 탁월함이다. 보통 번역서를 읽을 때 느끼는 피로감이 이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가독성이 좋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번역자가 영국에서 자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또 웨슬리 신학 전공자의 철저한 감수가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제3권 『목회신학』은 목회자들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목회 경력의 길고 짧음을 떠나, 모든 목회자가 갖추고 배워야 할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신학을 전공하는 모든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뿐만 아니라, 목회 동역자인 교회의 중직자들과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다. 신앙 전반에 관한 성경적 가치를 올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임관혁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고신대학교 대학원, ACTS 조직신학 전공, 삼성제일교회)
"나름 웨슬리를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너무나 생소한 웨슬리를 만났습니다. 즉, 철저히 종교개혁 전통에 서서 그것을 목회 현장에서도 고집스럽게 주장한 웨슬리입니다. ... 성경과 기독교 전통, 이성, 신앙적 경험에 기초해 정립한 신학을 통해 오래되고 무능한 종교에서 벗어나 참된 기독교로 돌아가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던 사람 ...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복음, 성령의 거룩한 능력을 누구보다 신뢰하며, 그 신학적 바탕 위에서 영혼을 구원하고 거룩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목회신학을 고집스럽게 세워나간 사람이 존 웨슬리였다는 것입니다. ... 웨슬리의 목회신학은 시간과 문화를 넘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함의가 대단히 큽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웨슬리안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신학을 더 깊이 알아가길 원합니다.“
- 이상준 (목사, 전 제주열방대학 간사, 현 복음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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