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wide range of'라는 표현을 보면 사람들은 영어로 세 단어이니까 우리말로도 세 단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젋은 범주의'라고 두 단어로 번역해 놓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넓은 범주의'라는 두 단어 짜리 번역조차도 번거롭다. 우리말로는 '광범위한'이라는 한 단어로 충분하기 떄문이다.
"I want to kill you!"라고 장난삼아 누가 욕을 했다고 상상하자. 이것도 흔히 "나는 너를 죽이고 싶어!"라고 길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며 어색한 표현으로 옮기고는 한다. 하지만 우리말로는 "너 죽어!" 라거나, 또는, 혹시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거나 하는 경우라면, "죽어!"라는 한마디로 충분하다. 그 한마디 속에 본디 의미가 다 담겼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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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웬만큼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떽쥐뻬리'라는 프랑스 작가를 모를 리가 없는데, 이 'St. Exupery'가 바로 그 '생떽쥐뻬리'이다. 그런데 네 학생은 그 이름을 각각 'St. Exupery 3', '성 엑수퍼리', '생떽쥐뻬리', '생떽쥐뻬리'라고 적었다.
첫 번째 이름 'St. Exupery 3'이라면 '생떽쥐뻬리 3세'라는 뜻이 되었는데, '3'은 필자가 인터넷 강좌 원고에 매긴 쪽수를 이름의 한 부분으로 잘못 보고 그냥 넣은 모양이다. 그리고 '성 엑수퍼리'는 물론 'St. Exupery'의 '번역'으로서, 보나마나 'St. Exupery'와 '생떽쥐뻬리'가 동일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실수이다.
그렇다면 훨씬 외국어 실력이 모자라서 번역본을 읽어야만 하는 독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예를 들어 '생떽쥐뻬리'라는 이름을 정확히 번역하지 못해서 '성 엑수페리'라고 하는 경우라던가, 예라 모르겠다 하면서 그냥 영어 또는 불어로 'St. Exupery'라고 적어놓는 다면, 번역하는 사람도 'St. Exupery'가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우리말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가 어떻게 'St. Exupery'가 '생떽쥐뻬리'인지를 알겠느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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