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담겨 있는 시들 한 편 한 편은 그의 살점이고 피다, 한숨이요, 그림자다. 숲과 풀과 새의 친구 되어 여러 해 지나며 한 땀 한 땀, 땀 흘려 지은 옷 한 벌. 나는 그의 시집을 가리켜 품 넓고 정 깊은 옷 한 벌이라 한다. 바람과 서리와 티끌에 더럽혀진 전생을 잊으려 ‘맨 부리’로 하늘 문 쪼고 또 쪼는 한 마리 딱따구리의 노래라 한다. 세속의 풍습과 관념은 이미 버렸다. 저 이효석 「산」의 주인공 ‘중실’이 되어 낙엽 덮고 밤하늘 총총 별빛을 우러른다. 오리나무, 가래나무, 야광나무, 물박달나무, 딱총나무,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붉나무, 층층나무, 고광나무, 싸리나무, 초피나무, 두릅나무…… 벗이 된다. 박경리 선생께서 긴 세월 『토지』를 쓰며 밭일을 했듯이 몸으로 시를 쓰며 산밭 일을 한다. 깊은 산과 키 큰 나무와 작은 풀꽃들은 이제 그의 들이요, 집이다. 저 옛날 이효석이 산과 들에 들어 자유로웠듯이 이 시인에게도 영혼의 안식 있으라.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변경섭 시인은 몸이 불편하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커서 아픈 다리를 다시 다쳐 지금은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이 무엇보다도 질기고 강한 존재 조건이 그의 생활과 의식을 옭아맨다. 자연과의 교감과 그것에서 오는 깨달음이 그의 시의 주된 정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시 곳곳에 고양이 발자국처럼 찍혀 있는 외로움과 끌탕을 어찌 말로 다 하랴. 그러나 그는 그 같은 현실적 제약에 주저앉지 않는다. 가을이면 분꽃이 까만 씨를 맺어 이듬해 봄을 기약하듯, 그는 시와 글을 쓰면서 홀로 사는 삶의 고독을 견딘다. 그에게 시와 글은 자기 존재의 씨앗인 것이다.
「겨울 산길」이라는 시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눈이 내린다/길은 있으나/아무도 올라오는 기미가 없다/나도 아무런 기척 없이 내려다보고만 있다/아, 아무도 오지 않는 겨울 산길은 기다림에 지치는 시간인가, 무언가를 기다리기엔 너무 먼 공간인가.
- 조재도 (시인, 아동청소년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