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물질도, 사회생활을 위한 처세도, 그리고 그에 따른 명예와 권력도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고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그러한 생존 조건들이 결코 우리 삶의 충분조건이 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빵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설령 살아간다 하더라도 동물처럼 그냥 먹고, 새끼 치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본능적 조건만을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길, 그 길이 무엇일까? 이리 생각하다 보니 먼저 떠오르는 것에 종교와 도덕이 있다. 그럼, 그것이 우리가 정착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들 간의 반목과 질시는 무엇이며 도덕과 제도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왜 끊임없이 바뀌고, 곳곳에서 혁명은 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제도나 관습, 윤리와 도덕, 심지어 종교까지도 그것이 어떤 규범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지게 되면 어느 순간 인간의 편이 아닌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락되면서 우리의 구원과 멀어져 가기 십상이다. 미셸 푸코의 말마따나 그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유폐적幽閉? 그물망이 되어 그 안에 우리를 감금하는 도구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금 기제로부터의 일탈, 그리하여 반인간화反人間化에 대한 구원, 그 대안의 하나로서 우리는 문학을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기에 문학은 제도나 관습이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이나 권력 혹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의 곁에 서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에게 비판적 자세를 취하면서 인간이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천진한 마음을 지키고자 한다. 그게 공자가 꿈꾸고 있는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요, 진실과 아름다움의 세계, 곧 인간 파라다이스가 아니겠는가?
우리 앞에 군림하고 있는 그 어떤 힘이나, 권위 그리고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상을 고르고, 처신을 달리한, 그러한 현실 논리를 초월한 진정한 인간의 편, 거기에 우리의 문학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이 간과하기 쉬운 인간 그 자체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그것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연민. 이것이 문학이 지향하는 길이다. 이러한 문학의 길을 두고, 어떤 이는 ‘문학은 1%의 꿈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긴 여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그 길이 고단하고 외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99%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길은 이끗이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손해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더라도, 그래도 그럴 수 없다며 남아있는 1%의 가능성을 붙잡고 우직하게, 때로는 고독하게, 아니 그 누구보다도 끝내 인간의 편에 남아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진실과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문학은 늘 외롭고, 춥고, 눈물겨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님’은 떠나고 없다고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을 때에도, 나는 그래도 ‘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1%의 꿈에 의존하여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꿈을 주었던 만해 한용운, 옥중에서도 이도령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성춘향, 군부 독재에 맞서 시대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저 해남의 김남주,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돌아서서 고개를 저었던 갈릴레이, 홍해의 기적을 이루어낸 모세의 삶들이 바로 남들이 다 외면했던 1%의 꿈을 이루어낸 문학적 삶의 승리가 아니었던가?
그 불가능할 것 같은 1%의 꿈이 바로 새 세상을 열어가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힘이 들더라도 마땅히 지켜가야 할 당위當爲의 세계. 묻혀 있고 훼손되어 있는 진실을 캐내고, 베일 속에 가려있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들춰내면서 누가 뭐라 해도 한사코 권력의 편이 아닌 사람의 길을 가는 사람들, 그게 문인, 아니 문학의 길이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힘은 상상력에 있다. 파스칼의 말처럼, 우주 앞에서 우리 인간은 티끌만도 못한 존재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다. 이 ‘생각하는 힘’이 있기에 인간은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성과 현실이 팽개쳐 버린 모든 것에서 새로운 세계에 다가가는 힘이 상상력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자율성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한다. 부조리하고 미완된 현실을 초월하여 가능의 세계(Possible World)를 열어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정신적 우주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초월적 인식, 인식 너머의 인식을 통해 우주를 생각하고, 삼라만상을 헤아리고, 눈앞의 난관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문제 해결 능력이 상상력이요, 문학의 힘이다. 상상력 속에서 인간은 꿈을 꾸고 내일을 열어간다. 그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휴머니즘이 진실과 아름다움의 세계요 사무사思無邪의 길이다. 시대와 장소,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초월하여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켜가는 일, 그거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문학의 길이요, 힘이 아닌가 한다.
---「서문_문학의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