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의 중간 관리자는 영혼을 회사에 저당 잡혀 정신적으로 덫에 걸려 버린 ‘조직인’이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노동 인구에 편입되기 시작한 여성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단순 행정직이나 비서직을 부여받았고 성폭력의 위험에도 노출되면서 이중의 예속에 직면했다. 사무실 자체도 무한히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시그램 빌딩 같은 우아한 건물이 하나 나올 때마다 열 개도 넘는 삭막한 모듈식 모조품이 들어섰다.… 미친 듯이 기발한 닷컴 사무실들도 유토피아적 건축물이 아닌 미친 듯이 긴 근무 시간을 연상시키게 되었고, 사람들은 닷컴 사무실을 ‘화이트칼라 노동 착취 공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편, 카페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의 삶은 많은 이에게 현실이 되긴 했으나, 재정적인 불안정, 부가 급부의 부재, 고립된 노동 환경을 늘 동반하는 현실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화이트칼라의 이야기는 자유와 희망에 대한 약속이 계속해서 배신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p.15
도시 계획가, 건축가, 디자이너, 경영자 들이 좋은 의도로 내놓은 그 모든 시도는 왜 화이트칼라 직장인에게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했을까? 드물게 성공한 사례들은 무엇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겉으로는 그렇게나 특권적으로 보이는 사무실의 유혹이 왜「필경사 바틀비」의 초창기 시절부터〈뛰는 백수 나는 건달〉의 분노한 직장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기만적이거나 실망스럽게 귀결되는 것일까? 사무실 안에서 이뤄진 타협과 변화는 사무실 밖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타자기와 파일 캐비닛, 그들이 앉아 일하는 사무 가구들을 통해서 디자인과 역사를 살펴본다. 그와 더불어, 사무직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그러나 대체로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내놓곤 하면서, 사무 공간을 물리적?사회적으로 재구성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를 자신의 책상에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역사다.
--- p.15~16
미국의 활발한(그리고 무원칙한) 언론에는 사무원을 경멸하는 글이 실리곤 했다. “이 나라의 대도시들에서, 젠체하는 잡화점 사무원만큼 비열하고 의존적인 사람은 없다고 감히 주장하겠다.”『미국 휘그당 리뷰』의 사설이었다.『미 골상학회지』는 더 강한 어조로 사무원의 길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남자가 되라. 그래서 진정한 용기와 남자다움을 가지고, 도끼를 들고 황야로 내달려 눈부신 햇살과 독립적인 가정을 위한 길을 만들라.” 가장 강한 어조의 글은『배너티 페어』에서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따르면 사무원은 “허영심 많고, 비열하며,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감각적이고, 교활하며, 말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도 않은 기운은 “진짜 노동을 하는 진짜 남자”보다 옷을 더 잘 입는 데에나 썼다. 희한하게도, 역시 사무실에서 종이와 펜으로 일하는 저널리즘을 “진짜 노동”이라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문제 제기된 적이 없다.
--- p.27
과학적으로 경영된 사무실이 봉투에 내용물을 넣는 일에서 비용을 20퍼센트 절감했는데, 신체에 더 좋은 가구를 구매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해서 달성한 성과라고 한다. “동작 연구에 기반해 제작된 우편물 개봉 탁자는 산출을 20퍼센트 늘렸다.… “매우 빠르게 타자 치는 능력이 있는 어느 타자수는 내용을 읽기 위해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는 버릇이 있었다. 많게는 각 문장에 네다섯 번이나 고개를 돌렸다. 기억력 탓은 아니었으므로(한 번만 읽고도 그 문장을 다 기억해서 말할 수 있었으니 이 점은 확실하다), 이는 단순한 습관에 불과한 것이 틀림없었다. 1분에 머리를 여덟 번에서 열 번이나 돌린다고 말해 주었더니(한 시간이면 500번 이상이다) 그 버릇은 멈추었고 즉각적으로 속도가 올랐으며 피로도 줄었다. --- p.84
이 모든 것들은 이제 막 사무실 세계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신호였다. 자체의 규율과 분위기와 문화를 갖는 별도 세계로서의 사무실이라는 개념은 경영 언어로 정당화되고 있었다. 사무실은 더 이상 공장이나 논밭에서 벌어지는 “진짜 노동”에 기생하는 행정실이 아니라 진짜 노동이 수행되는 장소가 되었다.
--- p.86
1919년에 발간된 비서 지침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비서는 상사의 열정적인 눈길을 모른 척하고, 손을 더듬거나 팔을 쓰다듬거나 허리를 감싸는 상사의 손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도 “요령 있고 예의 바르게” 그래야 했다.… 1937년에 해고된 비서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3분의 2가 당사자나 상사의 “성격 결함” 때문이었는데 “(비서가) 상사와 밤에 클럽에 가려고 하지 않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사무직 노동자가 그렇듯이, 화이트칼라 여성도 프로답게 행동해야 했다. 즉 자신의 일과 성공에 대해 온전히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직장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공포는 남성 사무 직원들이 지위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도 관련이 있었다. 지위 불안은 남성 사무원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조롱받던 회계실 시절부터 존재했다. 사무실에 여성이 들어오면서 남성들, 특히 관리자들은 중산층적 우월함과 권력을 다시 가질 수 있었지만, 1900년대 들어 사무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고 임금이 줄면서 공장 노동자보다 높았던 경제적 이점을 잃게 되자 이들의 남성성은 다시금 의구심에 봉착했다.
--- p.116~117
하지만 첫 번째 액션 오피스가 시장에서 실패한 궁극적인 원인은 경영진의 냉소였는지도 모른다. 경영진은 사무실 디자인에 대해 자금을 집행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경영진이 돈을 가장 쓰지 않을 법한 곳을 꼽으라면 평직원과 중간 관리자를 위해 좋은 의자와 책상을 사는 것이다. 평직원이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은 아직 고위 경영진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 공간의 개선을 생각하기에는 사무실이 너무나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더 빠르고 더 쉽게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 p.279
로버트 프롭스트는 1960년대의 미국에서 노동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사무실에 대한 프롭스트의 서사는 굉장한 역사적 드라마로 가득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미국 제조업의 기반이 화이트칼라 일자리로 점점 채워진다는 것이었다. 프롭스트는 언명했다. “우리는 사무 직원들의 나라다.” 자본주의의 얼굴이 달라졌다. 사무실은 ‘생각하는 장소’가 되었다. “사무실의 소비자는 ‘정신’이다.” 공장이나 타자실에서 수행되던 반복 작업은 사라지고 ‘지식 노동’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무실은 그것을 따라잡아야 했다.
--- p.282~284
사무실은 진급에 대한 기대치가 실제 가능성과 충돌하는 과다 교육된 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인사 관리 패러다임은 그들을 달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었다. 교육은 사무실 노동에 아우라를 부여했지만 사무실 노동이 실제로 충족하지 못하는 아우라였다. 하지만 사무직 노동자들은 좌절한 화이트칼라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학생 운동에서 말하는) ‘체제’를 비난하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을 비난했다. 한 다국적 기업의 매니저였던 하워드 카버는 그의 세계를 “무미건조하고, 하찮은 정치 논쟁과 무서운 권력 다툼이 있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회사는, 관료제는, 인간 역량 중 아주 작은 부분밖에 못 쓰면서도 시간, 충성심, 사내 정치, 어리석은 짓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바보 천치, 시간만 때우는 사람, 기회주의자, 사내 정치에만 관심 있는 사람, 소심한 사람 등이 너무 많아서, 의욕이 없어지고, 중간 관리자를 넘어 승진하는 것은 깡패 같거나 교활한 사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302~303
필립 존슨은 AT&T 빌딩의 사무 공간을 유연성 있게 디자인했다. 천장에 홈이 파여 있어서 벽을 쉽게 끼워 넣었다가 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AT&T가 수행하는 재조직화는 사무실들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아예 없애는 것을 의미했다. 한때 기업계에서 신성한 단어였던 ‘유연성’은 이제 섬뜩한 의미를 띠었다. 1980년대가 끝날 무렵이면 미국은 또 한 번의 불황을 겪는다. AT&T는 1500명 규모의 본사를 꼭 유지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많은 직원이 옛 건물로 옮겨졌다. 더 많은 직원이 집에서 일하도록 권고받았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들어 보지 못한 낯선 말이었다. 주인 없는 빈 큐비클들은 필요한 사람이 들어와 쓰거나, 아니면 계속 비어 있었다. --- p.315
사무실이 노동자에게 갖는 영향력은 클라우드 환경이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임시직, 프리랜서, 계약직 노동은 ‘날씬하고 비정하던’ 1980년대에 미국 기업의 평생 고용이 서서히 깨진 것과 나란히 발생했다. 인수 합병과 정리 해고가 심해지고 일반화하면서 계약직 노동자의 비중이 늘었고, 이 중 많은 이들이 전에는 정규직이었다가 계약직이 된 경우였다. …재택근무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한참 전부터도 이러한 노동력의 변화는 일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균열을 일으켰다. …초기의 임시직 사무실은 일과 젠더를 명시적으로 연결했다. 대부분의 임시직은 여성이었고, 진짜 일은 가정의 일이라는 전제하에 다만 돈이 필요해서 집 밖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임시직이 미국 경제의 본질적이고 특징적인 부분이 된 것은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두는 것에 덜 신경 쓰게 된 1980년대가 되어서였다. 파업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해 임시직이 고용됐고, 테크놀로지 기업에서는 영구 계약직(사실상 정규직이지만 부가 급부는 받지 않는 사람)이 일반 현상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유목민적인 사무실, 비영역 사무실, 유연 노동 정책 등은 기술 변화만큼이나 이러한 노동의 역사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