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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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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김유미 | 파란 | 2020년 09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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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35쪽 | 210g | 128*208*9mm
ISBN13 9791187756767
ISBN10 118775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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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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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손을 잡고 밤 기차 여행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의자는 목적지를 증언했다
철로는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깊은 곳으로 유인하던 바닐라 향

가방 속에 내 손목 한 개 네 손목 한 개 네 발목 한 개 내 발목 한 개를 쌓고 가장 위에 얼굴 하나씩을 떼어 집어넣고 이것이 너와 나의 관계지 서로 알아보기 좋구나 오붓하구나 마주 앉아 있기 좋고 고독하기에 좋은 공간 아늑하지 않니?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따스해졌지

아이스크림을 더 먹을까 했는데
덜컹이는 의자가 시작되었다
목적지도 없이 나는 하차했다

어디까지 달려가고 있을까
애써 이름을 불러 멈춰 세우지 않는다
이름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볼 뿐
가방을 쏟아 내지 않는다

안녕
다음 역을 생각하다가 다음 역을 잊어버린 듯
철로가 잠들었군요

오늘은 우리의 백 년째 되는 날

어디서 보았더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인연인가요 중얼거려 보는데 빵빵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서
나를 지나쳐 간다

손가락을 다 펼쳐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스크림 막대가 있다
--- 「백 년 후」중에서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신축성의 기원

골목이 마당까지 뻗어 온다

둘이라는 구조 중에서
벽들을 허물어 버린다면
그것은
사라지는 것일까 확장되는 것일까

소리 지르는 고함으로
흐느끼는 등으로
기침하는 창문으로
벽을 쌓아 올리지만 않았어도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는 말

진실이 거짓을 뒷받침했다

네가 사라진 것은
짧아진 골목과 커져 버린 주먹

손가락이 가리키는 모퉁이나 그늘처럼 견고한 내성
자라는 넝쿨이나 다리가 되어
감았다 풀어놓는 진행형으로 성장한다
--- 「골목의 효능」중에서


서쪽이 몰려와 저녁을 지피고 있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을 때,
두 눈에서 켜지던 세계

팔을 휘저으면 고인 흐느낌들이 발목도 없이 걸어 나왔다

누가 사는 몸이었나?

겨울이 두 살을 밀어 올렸고 손가락 사이에서 나무가 자라나 바람을 흔들다 떨어뜨리곤 했다

한 발짝 두 발짝
유목의 길에서 만난 생의 난간
그 위에서 나를 부축하던 질서들
살들이 외로워서 흘릴 게 많아졌다

왼쪽 눈을 감으면 오른쪽 눈이 아팠다

찌익 늘어나는 솜사탕도 있고
쑥쑥 깊어지는 울음도 있다
부력의 날들이 공중으로 부양되었다

어디까지 갔니?
여기까지 왔다
발자국이 번지는 소리가 되어
해 질 녘까지 치솟는 그네
--- 「연기의 지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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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김유미 시인이 통과해 온 많은 사건과 사물과 풍경 뒤로 전개되는 이미지는 파편화된 생의 아픔과 슬픔의 기억들을 이어 붙인 형형색색의 조각보 같다. 폭력과 치유가 함께 공존하는 ‘골목’, 위안과 구원으로 날아오르는 ‘구름’과 ‘새’, 쓰라린 상처를 과용하는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퇴색해 가는 삶의 비의들이 각각의 색깔로 드러나는 시편들, 그 위에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을 뒤섞은 물감으로 그녀는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채색을 입혀 나간다. 그리고 일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는 “거짓을 뒷받침”(「골목의 효능」)하는 위장된 ‘진실’의 벽 앞에서 “담장 너머로 열매를 떨어뜨리는 뿌리의 어둠을 신뢰할게요”(「망고는 괜찮아요」)라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언어의 반대쪽에서 시의 모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그녀가 서 있는 이쪽 어둠의 처연한 감정이 작용한 결과라는 걸 알겠다. 그러니까, 시의 “열병을 앓아 소리를 모두 삼켜 버린” 언어의 장벽은 지독한 ‘편식주의자’처럼 “소리를 집어삼키는 거울의 식이요법”으로 극복하는 것(「소리의 거처」). 내 안에 갇혀 사는 우울한 새에게 “흰 구름”을 떠먹이면 “노랗게 물들인 내 머리카락이 자”라는 명랑한 슬픔처럼(「새의 감정」), 그녀의 상상력이 견고한 문자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극한의 허공에 의미를 벗어던진 시어들이 반짝인다.
-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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