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아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을 통해 ‘사랑의 고고학’을 실천한다. 작가는 섬세한 언어의 솔질로 기억의 지층을 굴착해 사랑의 흔적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 어린 나이에 주로 첫사랑의 형태로 파묻힌 이 사랑은 퀴어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낯설고 두렵고 들끓고 뜨겁고 위험하고 조심스럽다.
이 책에 담긴 청소년 퀴어 서사를 꿰뚫는 동사는 세 가지, ‘잃다, 파다, 스며들다’이다.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상실 이후를 살아간다. 「우리들의 우리들」의 은푸른하늘은 아빠가 없고,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의 서해림은 엄마가 세상을 떴고,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강희는 친구를 영원히 잃었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의 장한나는 언어를 빼앗겼다. 사랑과 상실의 결합은 에로스를 더 애타게 하지만, 투사할 대상을 잃은 주체의 우울도 똑같이 깊게 한다.
사랑과 상실의 정체를 해명해보려는 마음이 두 번째 운동, 기억의 흔적을 모으고 되새기고 파고드는 운동을 일으킨다. 겉면의 인간 안에 있는 속살의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이 운동이야말로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진짜 모습은 내면의 빛이 반짝이는 영역에 있다는 것, 이 웅숭깊음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기억의 지층을 파고들면서 ‘망각’에서 ‘발화’로, ‘침묵’에서 ‘대화’로, ‘죽음’에서 ‘불멸’로 움직여간다. 잃은 후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기에, 이 과정은 너무나 아프고 안타깝다.
상처를 핥아 위무하고 화자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스며드는 운동’이다. “냄새는 서로의 마음에 스미”고, ‘희’라는 이름은 “살갗에 스미는 느낌”이며, “옅은 어둠이 입김에 날리는 목탄처럼 부드럽게 흩어져 하늘에 스며”든다. 서로의 삶에 대해, 서로의 마음을 향해 스며드는 운동이야말로 사랑의 존재 형식이고, ‘홀로’를 ‘함께’로 만드는 마음의 진동이다. 엄마를 잃고 방황하는 소녀 서해림과 트랜스젠더로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실험 고고학자 스미 씨, 광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응애 여사가 세대를 가로질러 밥상 공동체를 이루는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는 특히 감동적이다. “말하는 사럼은 진심이제만 듣는 사럼이 고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해불먼 안 믿제. 애간장 타들어가도록 말해도 안 믿어. 그런 시상은 치가 떨린당께.” 이로써 광주의 서사가 퀴어의 서사가 만나 “우리들의 우리들”을 이루게 되었다.
- 장은수 (문학평론가,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어떤 소설은 이토록 반가울 수도 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은 십 대 게이, 레즈비언들의 사랑 이야기와 성 소수자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지하고, 그들과 연결되는 앨라이들의 다채로운 삶을 담고 있다. 비혼모를 중심으로 트렌스 여성, 십 대 이성애자와 게이가 대안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십 대 자립 여성은 트렌스 여성, 독거노인과 자매애를 나누며, 같은 반의 레즈비언 커플을 응원하는 씩씩한 십 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다 읽고 나면 “사랑을(연대를) 말하는 사람들 표정은 다 닮아 있다”라는 문장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게 된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은 ‘사랑의 얼굴’이 특정한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당신은 이 소설집을 통해 아마도 당신이,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어떤 모습인지를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가령,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지, 내 입술을 다른 입술에 포개는지, 나의 숨을 타인에게로 불어 넣는지, 그렇게 함께 호흡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생각 끝에 당신은 그전보다 조금은 더 용기 있게 말하게 될 것이다. “진심(해하지 않는 마음)은 그냥 알아지는 것” 같다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보려는 성실함이 바로 ‘사랑의 태도’라고.
- 김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