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반공과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해온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 제19조의 진정한 의미는 위축되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은 반공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모든 사상과 활동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 실제적 위험성과 관계없이 처벌해왔으며, 현재는 폐지된 사회안전법은 보안감호처분 부과 등을 통해 사상범에게 자신의 양심과 사상을 포기하고 ‘전향’할 것을 강요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p.20~21, 「양심과 사상의 자유란 무엇인가」 중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국민보도연맹’ 내에 위장 전향자가 있을 수 있고, 이들이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이들을 ‘예비검속’한 후, 전국의 감옥이나 산골짜기에서 집단으로 처형해버리고 만다. “골로 보낸다”라는 속어는 바로 이러한 참극 속에서 나온 말이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희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p.36, 「제1장 좌파 사상범에 대한 보안관찰처분」 중에서
보안관찰처분은 사상전향제처럼 시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바꾸라고 강제하거나, 준법서약제처럼 시민의 사상을 드러내라고 압박하지는 않지만,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대상자의 사생활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다.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종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인권의 관점에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 p.67, 「제1장 좌파 사상범에 대한 보안관찰처분」 중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총을 드는 행위는 자신의 양심, 신조 또는 종교의 근본을 부정하고 자기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를 군복무의 고역을 피하기 위한 것이거나 국가공동체에 대한 기본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무임승차식으로 보호만 바라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납세 등 각종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함을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집총병역의무는 도저히 이행할 수 없으니 그 대신 다른 봉사 방법을 마련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을 뿐이다
--- p.20, 「제2장 양심적 병역거부권」 중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전지구화하고 있지만, 이에 비례해서 자본주의의 모순 역시 확산·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니다. 자본주의로 역이행한 과거 사회주의권 나라에서 보이는 물신 숭배, 사회·경제적 약육강식,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주의라는 대립물이 사라진 상황에서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야차(夜叉)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 p.121, 「제3장 빨갱이 콤플렉스와 사상을 표현·실현할 자유」 중에서
국보법은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문제되는 법조문의 부분개정이나 대체입법 제정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자신의 흉기인 침대의 길이와 폭을 바꾸거나 다른 새로운 침대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에게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와 그 침대를 없앨 때에야 비로소 비극은 끝나는 것이다.
--- p.178, 「제4장 국가보안법 총비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