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 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손톱에 칠한 색을, 너의 몸속에서 찾아보려 한들 헛일이겠지.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다.
네가 가여워하는 너 자신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한,
너는 분명 세상을 싫어해도 좋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이 행성에, 연애 따위는 없다.
--- p.13 「블루의 시」
눈雪이 아름답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얀 피부가 아름답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손에 넣은 모든 사람이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는 게, 너의 말보다 몇 배는 더 나에게 상처를 준다. 살아 있음에 기적을 느끼는 건 다섯 살까지로 하자. 언제까지 생명에 놀랄 셈이야.
--- p.42 「아름다워서 좋아」
너를, 내가 모른다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다.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네가 어디로 갈지, 어디서 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다. 걷어차고 있다. 관심이 없다. 이름도 모른다는 것, 생김새를 모른다는 것. 폭력이다. 죽이고 있다. 네가 죽든 살든, 나는 알 길이 없다. 영원히. 죽이고 있는 거야.
--- p.52 「여름」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전 인류가 동시에 휴대폰을 켠다면, 하늘에서 사라지는 별도 있을까. 별을 죽일 수 있다면 한번 해보고 싶네. 혼자 사는 인간의 감정만큼 지루한 영화도 없다. 갑작스런 흉통과 천재지변과 분노가 늘어선 걸 고독이라 부른다면, 나를 기다리는 건 고독사뿐이다.
--- p.72 「어여쁜 인생」
아, 과거의 어느 조각보다도, 지금, 유리가 아름답게 빛을 반사시켰다. 위인의 사진에 낙서를 했다는 죄로, 우리는 불행해진다. 쌍방과실이니 안심해. 잠은 잘 잡시다. 빨리 살고, 오래 죽읍시다.
--- p.83 「어서 와」
교차로가 바다처럼, 빛을 모으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과 경멸 사이에서,
반응에 큰 차이가 없는 나의 심장.
거리의 보석은 네온사인이나 별이 아닌,
졸리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감은 너의 눈꺼풀 속에 있다.
--- p.97 「블랙의 시」
결과 위주의, 가치 중심의, 목표 지향적인 세계에 살면서, 한 발자국도 거기서 나오려 하지 않고, 아니 나오길 두려워하고, 아이들을 그 안으로 잡아끌면서, 거기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영혼을 낙인찍는 어른들은 타히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무용의 놀이, 악몽의 늪, 검은 눈사람을 자꾸만 키워나가는 환영. 밤의 도시를 활보하는 괴물은 마을보다 지구보다 우주보다 커졌다가, 해가 뜨면 아무도 모르게 작아지길 반복한다. 타히의 시집은 우리에게 이런 어둠을 선사한 다. 밤을 선물한다. 고독이라는 꽃을 꽂은 미치광이의 세계로 안내한다.
--- pp.107~108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