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금속성이 터뜨려 쌓은, 더 이상 문 두드리지 않는 신음들 긴 피의 얼룩을 듣고 있어요 어떤 생의 퇴적이 총소리로 옮겨 붙는 순간 미래가 보였어요 깊숙이 찔러 넣어 꺼낼 수 없었던
누군가의 이면처럼 멀어진 책장의 활자들, 당신이 날 부를 때마다 자라다 멈춘 미간의 나쁜 퇴적물과도 이제 안녕일까요
어슬렁거리는 허밍이 식은 고요를 뒤적이고 있어요 부드러운 곡선의 창법에 주먹이 풀려 분노의 배후를 데려오는 사방이 덜덜 떨어요
빨리 시들고 싶다는 오발의 말들은 위태로워서 엄마, 장전된 공포 이 겹겹은 안전하지 못해서 엄마, 메마른 총구가 코앞인 저 건너 발굴은 너무 생생해서 엄마,
--- 최분임 「문자가 다정해지는 순간」 중에서
봄이 지나가고 있다. 봄꽃이 피고 지는 모든 과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벙그는 망울을 보며 꽃소식에 마음 동동거릴 때부터 하나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기까지의 꽃나무를 본다. 그것은 약속의 시간이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만발할 때는 꽃들 하나하나를 들여다 봐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축제의 시간, 활짝 핀 꽃나무 아래에서 우리의 시간은 가장 현재적인 몽롱함으로 찬란해진다. 이 시간엔 과거도 미래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현재를 누릴 뿐이다. 짧기에 더욱 열렬하게….
꽃 진 자리에 무성해진 잎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추억인지, 기억의 밑자리인지 하는, 과거라는 시간이 건너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꽃 떨어져 사라져간 자리가 불탄 자리처럼 시큰거리며 또 한 번의 봄이 과거가 되었음을 일러주는 그때. 과거라는 시간은 그때에야 비로소 내가 건너온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그래서 마음은 다음을 기약하는 일에 너그럽다.
--- 강미애 「잔에 대한 상념」 중에서
시간은 느리고 천천히 흘렀다. 지배했던 관습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자 변화가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마치 관처럼 딱딱한 매트리스는 우기의 절정인 양곤의 습기를 머금어 눅눅했지만 그것 역시 새로운 감성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경험이 때로는 낯선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문명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호텔 방에 현대구조물처럼 놓여있던 덩치 큰 검은 TV는 귀국하는 날까지 켜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끔은 가슴 졸이며 밤새도록 시청을 했던 느와르 영화도, 세계 곳곳의 불협화음도, 지진과 태풍경보나 정치상황도 알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 따위를 들을 마음도 없었을 뿐더러, 실낱같이 연결되는 검색 창을 열어 세상의 뉴스를 나의 내면으로 끌어당기고 싶지 않았다. 결코. 나의 분신 같은 노트북도 없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나를 감격시켰던 법문 방송도 없었다, 그리도 무엇보다 가족이 없었다.
또 한 가지의 변화는 늘상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던 바람소리 같기도 냉장고 소리 같기도 한 규칙적 잡음이 수그러들었다. 채식위주의 식단 영향도 있겠지만 명상의 효과였다. 하지만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나를 되비추는 시간이 많아지자 또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시실리. 그 마을 앞에 섰다. 스님은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 표현했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니미따 발현을 보았던 곳이라 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사라져야 나타나는 니미따였다.
시실리 파욱센터는 수행사원으로 유명했다. 세계 곳곳에서 구도의 길을 찾아 떠난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사마타 위빠사나를 완성하기 위해 사사로운 것을 모두 끊고 출가한 분들이었다. 사적인 감정이 끊긴 얼굴은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밀집된 꾸띠에서 니미따를 보기 위해 오로지 면벽 수행을 하고 있는 젊은 스님들의 옷가지가 꾸띠 앞에 펄럭였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습하고 더운 기온 속으로 사라져 자취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호흡 하나에 의지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의 긴 터널 속을 나는 맨발로 걸었다. 하나, 둘, 숨을 가르며 호흡에 맞추어 걷는 걸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은 도암 스님에게로 향하는 걸음이기도 했다.
수행을 하던 중 그가 잠시 귀국했을 때, 스님은 면벽을 하고 오랜 시간 호흡에 집중하니 한 무리의 환한 빛이 비췄다고 했다. 니미따였다. 밝은 금빛 무리는 스님에게 오랜 시간 머물며 환희로움을 주었다. 자신을 이겨낸 자에게 주는 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비구니 스님과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앞을 보고 가려던 순간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우연의 연속선에서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팔을 스치며 서로의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나를 스마트 폰에 사진 한 장으로 남긴 후 내 눈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see you again.”
낮고 조용한 음성이었다. 가슴에 커다란 폭발물이 터진 듯한 굉음과 비슷한 울림이 울렸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며 뺨이 달아올랐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 내미는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음성에서 영혼의 마지막 순간인 것을 느꼈다.
--- 구자인혜 「see you again」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