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는 (…) 『삼국유사』의 기록을 뼈대 삼아 기록 당시 눈으로 관찰하고 측량한 바를 단순히 추가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겠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삼국유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첨성대의 기능이나 건립 목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 첨성대의 건립 연도로 기록된 당 태종 정관 7년 계사년은 서기 633년으로 선덕왕 2년에 해당한다. 첨성대 건립 후 807∼822년이 지나기까지 구체적인 건립 연도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느닷없이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정확한 건립 연도는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1197∼1212년 고려 무신정권 때 있던 일을 지금 2019년에 기록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 p.28, ‘1부 1장_ 옛 문헌 속의 첨성대’ 중에서
홍사준의 실측이 의미가 있는 것은 현장답사와 실측을 수행한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상 최초로 그 결과를 도면화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 여기서 홍사준은 자신이 수행한 첨성대 실측의 목적을 “학계의 연구자료로 활용되도록 하고 아울러 장래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실측도와 복원도를 첨부하였다. 이런 바람대로 홍사준의 실측도면은 이후 수행된 첨성대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 및 복원?보수 작업의 발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일반적으로 ‘실측도면’이라 함은 홍사준이 작성한 실측도면 또는 그 사본을 일컫는다고 하겠다.
---p.38, ‘1부 2장_ 첨성대 실측자료’ 중에서
원통형몸통 제1단부터 제27단까지 내부공간을 두르며 몸통을 구성하는 돌의 수는 각 단에 놓인 돌의 수를 모두 합하여 362개가 된다. 이는 각 단에 평균 13.4개의 돌이 놓인 셈이 된다. 여기에 남창구 양 옆의 문설주 2개, 제26단의 정자석 위에 올린 판석 1개가 추가되어 원통형몸통을 이루고 있다. 이로써 원통형몸통을 이루는 돌의 개수를 모두 합하면, 27개 단의 몸통에서 362개, 문설주 2개, 판석 1개로 신기하게도 1년의 날수에 해당하는 365개가 된다. 여기서 원통형몸통을 이루는 돌의 개수에 제19, 20, 25, 26단의 내부 정자석 8개는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는 내부 정자석이 원통형몸통 자체를 직접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몸통 속을 통하여 오르내리는 수단을 제공하는 보조재나 구조적 안정을 제공하는 보강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여 원통형몸통을 구성하는 돌의 개수로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p.76~77, ‘1부 3장_ 첨성대의 얼개’ 중에서
첨성대 입면의 아름다운 비선형 곡선은 원통형몸통의 제1단으로부터 제27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름의 단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만들어졌다. (…) 원통형몸통 제1단에 대한 제27단의 지름의 비는 대략 3 : 5이고 첨성대 전체 높이에 대한 기단의 대각선 길이의 비는 4 : 5이다. 이들 비의 구성요소는 다름 아닌 3 : 4 : 5 직각삼각형의 밑변 : 높이 : 빗변의 비를 사용한 것이 되고, 3 : 5와 4 : 5는 그 사인과 코사인 값이 된다. 이는 첨성대에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사용된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 이들 비율은 앞서 언급한 『주비산경』의 현도(弦圖)에 예시된 비율이기도 하기에 1,40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첨성대의 건립에 그 비율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마저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 p.88, ‘1부 4장_ 수(數)로 이루어진 첨성대와 그 상징성’ 중에서
첫째, (…) 첨성대가 세워진 위치는 해발 40∼50m 정도의 저지대인 경주이고 그것도 왕궁과 사찰이 근접해 있어 일반적으로 보기에 천문대가 세워지기에 적절한 위치라고 할 수 없다. 둘째, (…) 이 정도 높이에 올랐다고 하여 하늘의 별과 달을 얼마나 더 잘 관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셋째, 첨성대의 유일한 출입구인 남창구까지의 높이가 지표면으로부터 4.16m이고, 정사각형으로 뚫린 입구 한 변의 치수는 910mm이다. 빈 속을 통하여 오르내리며 천문을 관측하려면 먼저 4.16m를 올라야 하고, 그 높이에서 몸을 숙여 가로 세로 각각 910mm인 출입구로 기어 들어간 후 다시 원통형몸통의 속에서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매일 밤 지속적으로 천문을 관찰하기에 절대로 적절하지 않은 접근 경로임에 틀림없다.
--- pp.102~103, ‘1부 5장_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수수께끼 1: 첨성대의 기단 면 중앙과 남창구 중앙의 방위각이 서로 간에 3°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이런 차이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 하나의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남창구를 조성할 무렵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방위의 기준이 될 기단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오차일 수도 있다.
--- p.155, ‘2부 6장_ 새로운 이야기 하나 ― 첨성대가 던지는 수수께끼’ 중에서
여러 수학모델이 예측하는 낮의 길이의 변화추이는 애초에 낮의 길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즉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에 대한 정의, 황혼에 대한 정의 및 이의 포함 여부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낮의 길이를 무차원화한 이후의 변화추이는 수정계수로 보정하기 전과 후에 관계없이 서로 간에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이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따라서 설사 첨성대 건립 당시 신라에서 통용되던 낮의 길이에 대한 인식이 현재의 것과 상당히 다를지라도 낮의 길이를 무차원화하는 이상 그 변화추이에는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낮의 길이의 변화추이와 원통형몸통의 입면곡률 간에 앞서 보인 그래프로 추론한 바와 같은 상관관계는 관찰된 사실이자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 p.191~193, ‘2부 7장_ 새로운 이야기 둘 ― 첨성대에 새겨진 밤과 낮 길이의 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