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피로 사회’에 지친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바로 ‘세상의 다른 곳Alter Mundi’ 베네치아다. 자발적인 혹사를 스스로 감내하던 우리에게 베네치아는 삶의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물 위에서 가볍게 흔들거리는 베네치아의 곤돌라에 몸을 실어보라. 엔진이 없어도 곤돌라는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갈 수 있고, 복잡한 조향장치 하나 없어도 어김없이 우리를 낭만적인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손님이 슬쩍 찔러주는(가끔씩 강압적으로 요구되기도 하지만) 자비로운 팁에 기분이 좋아진 곤돌리에(뱃사공)가 “오 솔레미오”라도 불러 젖히면, 좁은 운하 골목은 정겨운 서정으로 가득해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우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 p.14~15, 「들어가며」 중에서
베네치아는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겉돌지 않고,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 물과 뭍이 친구가 되는 곳, 바다와 하늘이 도화지 한 장 같은 수평선으로 중첩되는 곳,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조우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파티인 카니발을 즐기고 다음 날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곳이 바로 베네치아다. 이런 상이함의 자연스러운 만남 때문에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세계 최초로 출간된 여행 가이드북에서 첫 번째 ‘여행 추천 도시’로 선택되었다.
--- p.17, 「들어가며」 중에서
베네치아에는 로마제국의 영광이 깃발처럼 나부꼈던 콜로세움도 없고 미켈란젤로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시스티나 성당도 없다. 그곳에는 여유 있게 산책할 만한 녹음이 우거진 보르게세Borghese 공원도 없고, 심지어 변변한 쇼핑센터도 하나 없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로 몰려드는 것일까? 이탈리아란 나라의 수도도 아니고, 가톨릭교회의 변변한 성자도 한 명 배출하지 못한 바닷가의 도시, 탈것이라고는 흔들리는 곤돌라와 수상버스뿐, 지극히 이동이 불편한 곳, 겨울철이면 바닷물이 넘쳐나서 이동조차 불가능한 그곳으로 왜 매년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베네치아란 도시에 열광하는 것일까?
--- p.37, 「1장 리도섬」 중에서
두칼레 궁전은 ‘힘’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건물이다. 건축이 요구하는 덕목으로서의 ‘힘’이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건물 자체의 위용을 말한다. 1,000년의 역사가 흘러도 아드리아해의 거친 비바람에 맞서며 어두운 밤바다를 향해 빛을 발산했던 등대와 같은 건물,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개펄의 두 해안을 연결해 만든 만남의 교각, 정의로운 통치자들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당당하게 펼쳤던 곳, 억울함을 당한 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주저함 없이 탄원할 수 있었던 두칼레 궁전이 바로 그런 ‘힘’을 가진 건축물이었다.
--- p.127~128, 「3장 두칼레 궁전」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과 그 주변을 돌아보았다. 베네치아의 핵심부인 두칼레 궁전과 산 마르코 대성당에 이어 산소비노의 피아제타, 팔라디오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롱게나의 바로크 걸작 살루테 성당을 답사했다. 이 모든 유적과 성당들이 지척의 거리에 있는 것이 놀랍다. 약 반경 500미터 안에 이런 다양한 건축물이 모두 모여 있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피렌체 정도가 예외이겠지만 그곳에는 넘실대는 아드리아해가 없다. 바다 건너 리도섬에서 아셴바흐를 만나고 또 그 반대편 무라노섬에서 카사노바를 만났던 우리는 이제 진짜 베네치아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베네치아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미로와 같은 베네치아 골목길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왔던 길을 또 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떤가, 여긴 베네치아인데!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야 정상인 도시 아닌가.
--- p.204, 「9장 아르세날레」 중에서
거꾸로 된 S자로 흐르는 카날 그란데를 타고 약 170개의 건물들이 양쪽 해안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수상버스나 곤돌라를 타고 이 아름다운 건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베네치아 여행의 첫출발이다. 이 아름다운 수변저택들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건축되었기 때문에 베네치아 건축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건물은 말로 전해진 이야기와 글로 기록된 역사를 남긴다. 때로는 그것이 전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명성Legacy으로 후대에 전해진다. 카날 그란데 양쪽 해안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170개 건물은 모두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와 명성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 있다.
--- p.315~316, 「18장 카날 그란데의 10대 팔라초」 중에서
삶의 기쁨, 그것이 전부이니, 부디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이제부터는 당신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것을 향해 달려가기를. 부디 당신의 삶이 축제가 되기를. 베네치아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산 미켈레 공동묘지 섬에 잠들어 있는 수천수만 명의 영혼들이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이 축축하고 외로운 섬에서 시신으로 누워 있는 날 보라. 나도 한때는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고, 당신들도 언젠가는 나와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게 될 것이다. 당신도 나처럼 죽게 될 운명임을 잊지 말라.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고, 맛있는 것을 소중한 사람과 나누어 먹고, 즐겁게 노래하고, 신나게 춤추고, 뜨겁게 사랑하라. 이성적인 삶, 바르게 사는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다 좋다. 그러나 이 순간의 기쁨을 소홀히 한다면, 인생을 신나고 즐겁게 살지 못한다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으리.
--- p.481, 「베네치아를 떠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