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 대량살인범을 망각하지 않았다. 일부일처주의자인데다 아마도 동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수염을 가졌다는 이유로 전설적인 레이디 킬러 '푸른 수염'(프랑스의 전래동화 속 인물로, 아내를 맞이할 때마다 차례로 죽인 남자 - 옮긴이)과 동일시되었다. 프랑스 문학도 질 드 레를 기념했다. 티포주에 있던 그의 성은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의 주인공, 소아성애자인 자동차 정비공 아벨 티포주의 이름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아벨 티포주는 전쟁포로가 되어 동프로이센에서 일생의 꿈을 실현한다. 나치 친위대의 한 기사단을 위해 순수 혈통의 금발 소년들을 모집한 것이다.
--- p.29 ('푸른 수염의 사나이' 중에서)
범죄사건과 과장이 된 앙리는 자신을 프랑수아 비도크라고 소개한 어느 신사의 방문을 받았다. 비도크는 일찍이 나쁜 꾐에 빠져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는 하소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포주이자 사기도박꾼으로 근근이 살았던 그는 문서위조 및 다른 불법행위로 인해 여러 차례 갈레선 형벌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매번 도망쳐서 잠적한 끝에 작은 점포를 열었다. 기쁨도 잠시, 사창가에서 알았던 옛 지인들이 그를 찾아내서 협박했다고 한다. 비도크는 앙리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했다. 경감이 자신의 과거를 묵인해 준다면 암흑가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알려줄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 p.38 ('사기꾼 혹은 경찰의 앞잡이' 중에서)
크리펜 박사 사건은 범죄학이 초창기에 벌써 얼마나 큰 진보를 이루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체에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체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취에 사용되지만 더 많은 용량을 복용하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 스코폴라민이 처음으로 살인사건 재판의 증거자료가 되었다. 또 한 가지, 무선전신의 도움으로 살인범을 붙잡은 것도 최초였다.
--- p.92 ('배 위의 크리펜 박사' 중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파트너인 헤이스팅스 대위에게 이렇게 묻는다. "식사를 주문하는 것처럼 범죄를 주문할 수 있다면 자네는 무엇을 선택할 텐가?" 헤이스팅스가 대답한다. "강도? 화폐 위조?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건 너무 채식이야. 살인이라야지, 유혈 살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차림 말이야."
--- p.106 ('살인이라야지, 유혈 살인' 중에서)
스티븐슨은 이 소재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에 나온 연금술적 성분과 혼합했다(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살인하는 인조인간 이야기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인간에게 친절한 지킬 박사가 마법 음료를 마시면 살인범 하이드로 변신하는 이야기다. '분신'과 '변신'은 오래된 테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는 "내 가슴 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네"라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괴테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어떤 범죄도 절대 내가 저지를 수 없겠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
--- p.148 ('야수로 태어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