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바커(Chris Barker)의 The Sage Dictionary of Cultural Studies를 번역한 『문화연구사전』은 문화연구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반가운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 문화나 기호가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를 다루어 문화 영역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문화는 인간의 삶과 관계 되기에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이 시대의 여러 학문 분야와 문화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연구는 언론학, 인류학, 사회학, 철학, 영문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분과와 서로 얽혀 있고 다양한 연구 방법이나 개념들이 서로를 넘나들며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분야의 영역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낳는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스타일, 기호, 상징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이를 표현할 개인의 수단도 증가하면서 문화에 대해 진단하고 자신만의 분석능력을 키우려는 독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 힘을 발휘하는 문화연구에 대해 그 재료가 무엇이고 이 재료들이 어떤 혈연적 관계를 맺고 이 분야를 형성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기에 학술적으로나 대중 독자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문화연구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시도는 이 분야의 과제이자 문화연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게 일종의 안내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문화연구라는 멋진 구조물을 이해하기 위해 이를 형성하는 서까래, 건축가, 벽돌, 모래 등을 상상하게 해준다. 문화연구를 이루는 관념, 개념, 이론, 그리고 사상가에 대해, 그리고이들이 어떤 연관성 속에서 문화연구를 이루게 했는지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사전의 형식을 갖춘 이 책은 단순한 사전의 의미를 넘어서 문화연구자인 크리스 바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특색을 내용 곳곳에 담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문화연구 전반을 심도있게 탐구해 왔으며,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이론적 검토와 진단을 넘어 사회 현실에 대한 개입과 실천 수단으로 문화연구가 이야기꾼 이상의 역할을 해왔음을 잘 보여준다. 그와 함께 문화연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책 곳곳에서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이 책은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그 중요성이 점차 커가고있는 문화연구가 어떤 궤적을 통해 현재의 위치를 갖게 되었고,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 위치를 파악하게 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사전에서 제시한 개념이나 사상, 이론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문화가 어떠한 형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이를 탐구하는 문화연구의 궤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현대 사회에서 문화연구자는 무엇을 하는지를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는 책이 아니라 사전의 형식을 갖춘 책이어서 역자로서는 번역의 부담이 더 컸다.
이 책을 읽을 독자의 다양한 얼굴이 떠오르며, 문화연구에 익숙지 않은 독자의 경우 혹시라도 부족한 번역이 오해를 낳을까 무척 두려웠다. 그럼에도 원저자의 세밀한 배려로 각 항목의 연관성과 링크 방식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보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는다. 문화를 탐구하는 사람이나 독자의 욕구에 따라 찾고 싶은 개념을 중심으로 책의 어느 부분이나 펼쳐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방식을 사전이 제공하는 것은 지금의 문화적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계해서 보아야 할 항목들을 링크, 연관 개념, 학문 전통, 관련 글이라는 독자적인 항목을 통해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관계로 자신이 이해하고자 하는 개념이나 사상가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얻을 때까지 이 사전을 들고 계속해서 지적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번역자는 미디어 영역에서 문화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개념을 접할 때마다 찾아봐야 할 자료들이 많았고, 번역의 과정에서 지적 한계와 사회과학 용어의 부족한 표현력과 소통능력을 절감했다. 역자들은 이 사전을 번역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강독을 통해 오역을 최대한 줄이려 했다. 용어를 통일하며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문화연구 용어에 대해 오히려 거리를 멀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도 많이 생겼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역이 공부하는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매우 두려웠다. 번역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이 사전이 문화연구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감이 들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사전의 형식이기에 어떤 개념이나 사상가는 좀더 풍부하고 심도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다.
독자가 문귈연구의 밑그림을 충실히 파악하고 그 내부의 혈연적 관계들을 파악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원저자의 의도가 문화연구 전체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연구에서 통용되는 개념의 줄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사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하나의 현상이 더는 독립적인 대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사상가나 이론이 현실을 진단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자신의 분야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독자적으로 진단한 『문화연구사전』이 주기적으로 나와서 문화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 현상을 이야기하고 현실에 개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이 이러한 시도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하며, 문화연구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독자들이 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이 책의 번역을 기다리며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쓴 커뮤니케이션북스에 감사하다.
역자 이경숙·정영희
--- '역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