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K. 롤링의 『해리 포터』가 켈트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머글과 마법사들이 공간을 공유하고, 요정 도비가 집사로 활동하고,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마법학교에 출몰한다. 런던으로 가는 이층버스에는 레게머리를 한 수다쟁이 두개골이 매달려 쉴 새 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고 학교 화장실에는 모닝 머틀이 울고 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어린 마법사들이 주인공인 〈해리 포터〉 시리즈는 바로 켈트 신화의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투아하 데 다난’으로 불리는 켈트의 신들이 사는 에린 땅에 인간들이 몰려온다. 신들과 인간들이 싸워 인간들이 이기자, 켈트의 신들은 자신들의 땅을 인간들에게 내주고 모습을 감춘다. 어떤 전승에선 신들의 몸이 줄어들어 모두 요정이 되었다고도 한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요정들은 예쁘고 늘씬한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집요정 도비처럼 못생긴 요정도 있고, 피터팬의 친구 팅커벨처럼 아주 작은 요정도 있다. 알려진 요정의 종류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 왕 오베론이나 요정 여왕 티타니아도 숲의 요정이다.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9와 3/4 정거장은 보통 사람인 머글들의 역이자, 동시에 마법사들의 기차역이기도 하다. 마법사들과 머글들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머글들은 마법사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9와 3/4 정거장도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쉴드를 치고 숨은 요정들과 요정들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라는 설정은 켈트 신화의 공간 개념이다.
켈트족들은 두개골 숭배가 유난하다. 켈트인들은 사람의 머리를 복주머니로 여겨 건강과 부, 행운 같은 것들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전사들이었던 고대 켈트인의 집에는 평생 전쟁에 나가 자신이 죽인 적들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 흔적이 영화 〈해리 포터〉에서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나 마법사 버스에 매달린 레게머리 수다쟁이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핼러윈 데이에 등장하는 잭오랜턴(Jack-O-lantern)도 켈트인들의 두개골 숭배와 관련 있다. 커다란 주황색 호박에 눈, 코, 입 구멍을 뚫어 등불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 관습은 두개골 숭배의 오랜 흔적이다. 원래 켈트인들의 설날은 11월 1일이라, 10월의 마지막 날 온갖 잡귀들에게 달달한 사탕을 주면서 1년의 액을 막고자 한 것이다. 괴물이나 유령, 몬스터에게 자신들을 해코지하지 말아 달라고 단 것을 주며 달래는 풍습이다. 그런 켈트 풍습이 아일랜드인의 대량 이민으로 미국의 풍습이 된 것이다.
--- pp.37~39, 「1장 유럽 신화, 완전 첫걸음」 중에서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가 시작되는 시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기독교 신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결합하여 중세 철학을 새로운 체계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는 모든 자연현상을 신이 확립한 법칙에 따른 기계적 운동으로 설명하고, 근대 과학의 발달에 안정적인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신적인 정신과 기계적인 신체가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보았다.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기술적으로 이용할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 이외 자연의 일부일 뿐인 동물은 그저 탐구와 이용의 대상일 뿐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동물은 ‘자동기계’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고, 동물들이 생체해부를 당할 때 보이는 고통스런 반응들은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 그저 반사적인 동작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가 볼테르(본명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우정에서 개가 인간보다도 뛰어난데, 이런 개를 감정이 없다고 여기면서 생체해부 실험을 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오늘날에도 과학과 의학적 탐구라는 명목으로 동물 생체해부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철학을 고리타분하고 한가롭고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그러나 인간의 건강과 생명 연장을 위해 동물 생체해부 실험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은, 현대사회가 여전히 데카르트주의 철학의 영향권에 있음을 웅변하는 셈이다.
--- pp.107~108, 「3장 철학하는 삶이란?」 중에서
톰 후퍼가 연출한 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 발발 후 26년, 국왕은 다시 왕위에 올랐다.”는 설명과 함께, ‘1815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알리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수도원에 숨어있다 나온 장발장과 코제트가 마리우스를 만나고 자베르에게 다시 쫓기는 때도 영화는 ‘1832년’이라는 시대를 명시한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사내 ‘장발장 이야기’는 실상 대단히 정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원작을 쓴 빅토르 위고(1802~85)는 당대 유명한 정치인이었고, 일생을 통해 프랑스 역사에 깊이 관여했다.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태어난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던 부친을 따라 열여섯 살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는데, 젊어서는 왕당파였으나 후에는 공화당파로 열렬한 민주주의자가 되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할아버지가 왕당파이고 아버지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으며 자신은 혁명파인 마리우스에게는 얼마간 빅토르 위고 자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위고는 제2공화국에서 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는데, 1851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프랑스 제2제국이 수립되던 해(1852)에 황제(나폴레옹 3세)로 등극하는 제정정치에 반대했다가 벨기에로 망명한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이 시기, 망명 중에 집필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주목하는 1815년은 왕정복고기가 시작되던 해다. 나폴레옹이 패망한 후, 대혁명으로 처형된 루이 16세의 뒤를 이어, 망명 중이던 루이 18세가 돌아와 부르봉 왕가를 재건한다. 한편 마리우스가 혁명에 가담한 1832년은 루이 필립 재임 시절이다. 이 시기 프랑스는 왕정과 공화정이 애매한 형태로 공존했는데, 공화당파 지도자 라마르크의 서거를 기점으로 공화당의 혁명군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6월 봉기’라고 한다. 1832년 6월 5일부터 6일, 이틀에 걸친 봉기에서 주로 학생들이 중심이 된 혁명군은 군주제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탓에 진압군 73명과 저항군 93명의 희생을 남기고 종결되었다.
낭만주의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또 정치인이자 휴머니스트로서 빅토르 위고는 이 작품에서 대혁명으로 왕을 끌어내렸지만 곧 왕보다 더한 황제가 등극했고, 황제가 쫓겨나고 다시 왕이 세워졌으나 세상은 여전히 비참할 뿐이었다고 고발한다. 1885년 폐렴으로 사망한 그의 유언장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관 제작비로 5만 파운드를 남긴다고 되어 있었다. 가난하고 비참한 이들을 위한 연민과 죽은 자들에게 남긴 온정을 생각하면, 그가 산 자들의 인권과 삶의 질에도 틀림없이 관심을 두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장례식에는 유럽 전역에서 20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존경과 애정을 표했다.
--- pp.200~201, 「5장 원작과 함께 영화 읽기」 중에서
작업실을 정리하다가 쌓인 그림 중 하나를 골라 걸기로 했다. 못과 망치를 찾아 수평을 맞추고 벽에 못질을 시작한다. 앗! 서투른 못질에 망치의 손잡이가 부러져 버렸다. 급한 마음에 바닥에 있던 벽돌로 못을 박아 고정하고 그림을 걸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부러져서 쓸모없게 된 망치, 그리고 망치 대신 못을 박은 벽돌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망치일까?
미국의 작가 조셉 코수스의 1965년 작품 〈하나이자 세 개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가 떠오른다. 이 작품은 의자의 사진과 실제 의자,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가 적힌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코수스는 이 작품을 통해 사진으로 복제된 의자의 이미지, 물리적인 의자, 그리고 의자의 언어화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개념이 무엇인지 사유하게 한다.
미국의 세계적인 미술비평가이자 예술철학자인 아서 단토는 방대한 미술사를 시대별로 과감하게 세 가지 특징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모방과 재현 시대’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1400년 무렵 이전의 시대를 가리킨다. 인류 문명의 탄생 이후 가장 오랜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대에 인정받는 예술작품이란 원근법과 해부학, 실재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한 정확한 데생 실력, 그리고 비례가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어야 했다.
두 번째는 ‘이데올로기 시대’다. ‘모더니즘 시대’라고도 한다. 관념을 예술로 재현하는 데 집중하던 시기다. 그 출발은 인상주의를 기점으로 한다. ‘예술사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사조와 ‘이즘’이 잇따라 생겨났다.
세 번째는 ‘다원화 시대’, 혹은 ‘탈역사적 시대’라고 한다. 이때부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계기로 미술은 모방과 재현, 그리고 관념과 이데올로기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벗어나는 탈 역사적 다원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pp.266~268, 「7장 단박에 읽는 서양미술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