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쓰기’라는 말은 많은 부모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아주 한참 뒤에나 오는 ‘사춘기’라는 말이 많은 부모들의 마음에 벌써부터 먹구름이 끼게 만드는 것과 매우 비슷하게 말이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으면 여러분은 아이의 이 발달단계를 더 잘 이해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아이의 떼쓰기 발작에 더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아이의 ‘고집’은 ‘나쁜 뜻’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직접적인 주변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행동방식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10쪽, 「머리말」 중에서
몇몇 아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의 잔이나 컵이 항상 특정한 위치에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엄마나 아빠가 자기 바로 옆에 앉아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아끼는 동물인형이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야만 하거나, 무조건 빨간색 잠옷 바지가 아니면 안 될 수도 있다. 어른들에게는 종종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러한 확고한 습관들은 만 두 살에서 세 살 사이의 유아 연령기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아니, 이것들은 심지어 아이의 발달에 아주 중요하기까지 하다. -41쪽, 「1장 ‘떼쓰기’가 알려주는 것」 중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아이를 멀찌감치 보내버리는 등의 벌은 유아에게는 더 큰 실망감을 주게 되거나 심지어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아이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고, 이 긴장은 아이에게 두려움을 일으켜, 결국 더 많이 소리를 지르거나 파괴적인 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나중에 만 두세 살 이후 아동의 공격성에서 보이는 것처럼, 의도적이지도 않으며 일정한 목적을 지니지도 않고 일어나는 이러한 화풀이 행동은 긴장이 약화되고 아이가 다시 진정할 때까지는 계속 진행되어야만 한다. 만약 이러한 행동방식에 벌을 주면, 떼쓰기 발작은 더욱 악화될 뿐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격렬한 형태의 공격성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48~49쪽, 「1장 ‘떼쓰기’가 알려주는 것」 중에서
아이의 행동에 대해 거의 절망하기 직전의 부모라면, 한번 자신의 부모나 언니, 오빠에게 여러분이 어렸을 적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해보자. 아마도 그렇게 하면 자기 아이가 보이는 반응들의 대부분이 자기가 어렸을 때의 떼쟁이 단계를 떠올리게 만들어 은근히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부모는 그 당시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깊은 이해심을 보여주었을까, 아니면 엄하게 대했을까? 여러분은 당시에 아이로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가? 유아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자기 자신의 기억은 유아기 전체 동안 자기 아이의 감정과 동기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58쪽, 「1장 ‘떼쓰기’가 알려주는 것」 중에서
떼쓰기는 특정한 대상을 겨냥해서 발생하는 흥분의 진행과정이 아니라, 아이의 자율신경 체계에 의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는 특정 목적과 특정 인물을 향해서 발생되는 공격성을 통해서 자기의 의지나 저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유아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지켜지는 규칙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아홉 살에서 열 살은 되어야 비로소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며, 어른들의 규칙을 점차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살에서 네 살까지의 아이들에게 이성에 호소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바람직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항상 설명해줘야 하고, 연령에 맞게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과도한 의욕은 아이와 부모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 뿐이다. -88~89쪽, 「2장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 중에서
유아가 매일 하루에 30분 이상씩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해롭다. 그럼에도 세 살에서 네 살 사이의 많은 아이들이 매일 텔레비전 앞에 한 시간 이상씩 앉아 있다. 또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만화영화들이 반복해서 공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아직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예를 들어 아이는 책상에 부딪히면 책상을 보고 “나쁘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에 공감하게 되며 현실로 체험한다. 또 유아라 해도 특정 영화들을 본 뒤에는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해야만 한다. 즉,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만화에서 본 대로 곧바로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서 주인공이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을 부분적으로 모방한다. -124쪽, 「2장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 중에서
아무래도 상관없고, 맥없는 양육 입장을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좀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점점 더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것처럼 느끼고, “네가 엄마를 사랑한다면 뮸을 들을 텐데.”라고 한탄을 늘어놓곤 한다. 또는 (더 나쁜 경우인데),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엄마는(아빠는) 널 이제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러한 푸념과 자기 연민은 아이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조바심 내고 공격적이 되도
록 만든다. -139쪽, 「3장 부모들을 위한 양육지침」 중에서
아이에게 벌을 주면 잠시 동안은 효력이 나타날 테고, 또한 아이에게 부모가 지금 아주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이 옳은지 배우지 못한다. 게다가 강도 높은 벌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벌을 주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후에는 그 사람이 있는 데서는 한계가 지켜지지만(예를 들어 아기를 꼬집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방에서 나가면 아마도 같은 행동을 다시 보여줄 것이다. 심지어 아이는 꼬집는 행동 대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아마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당연히 이 작은 훼방꾼에게 샘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여기에서 부모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방에서 못 나오게 하는 것과 같은 벌은 극심한 반항을 고착화시킬 뿐이고,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는 나보다 아기를 훨씬 더 좋아해.”와 같은 감정이 들게 만든다. -196~197쪽, 「3장 부모들을 위한 양육지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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