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89: 미하일 그로모프는 내쉬의 작업을 기초로 한 <편미분 관계 Partial Differential Relations>라는 책을 쓴 기하학자인데,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다수는 기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간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내쉬가 만들어낸 것에 비견되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가 무너뜨린 장벽은 참으로 환상적인 것이다. 그는 편미분 방정식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일변시켰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조화에서 혼돈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이어져왔다. 내쉬는 혼돈이 바로 코앞에 와 있다고 앞서 말한 사람이다.
p.293: “그런 문제에 도전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스탠퍼드의 수학 교수이자 필즈 메달 수상자인 폴 코언이 한 말이다. 내쉬의 유년 시절에도 탐지되었지만 이제는 뚜렷하고 변치 않는 개성으로 자리잡은 특질들-고독을 견디는 힘, 자신의 직관에 대한 믿음, 세상의 비난에 대한 무관심-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열심히 일했다. MIT사무실에서 주로 저녁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했는데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지극한 자신감 이외에는 다른 것을 참조하지 않았다”고 한 목격자는 말했다. 쉬워츠는 그것을 가리쳐 “돌이 부서질 때까지 줄기차게 벽을 가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모저는 그 문제에 대한 내쉬의 집요한 공략을 더없이 웅변적으로 이렇게 묘사했다.
[레빈슨이 지적한] 그런 난점에 봉착했을 때,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맥이 풀려서 그 문제를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쉬는 달랐다. 그가 어떤 예감을 갖기만 하면, 어떤 인습적인 비판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에게는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건 정말 섬뜩한 일이었다. 배경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정신력, 그런 맹목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을 나는 달리 본 적이 없다.
p.719: 헥스 게임과 달리, 실제의 인생은 첫 수 혹은 50번째 수를 둔 후에도 미리 결말이 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 남자, 이 미국 천재의 이례적인 인생 역정은 계속되고 있다. 자기 말을 거듭 뒤집는 내쉬의 유머는 그의 자각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슬픔과 즐거움과 애착에 대해 친구들과 허심탄회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그의 정서적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들을 공정하게 대하려 하고, 남들이 그에게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날마다의 노력은, 젊은 시절 차갑고 거만했던 것과는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쉬의 한 특성이었던 생각과 감정, 의도와 표현 사이의 괴리는 발병했을 때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적잖이 나타난다. 그러나 비록 말이 빗나갈 때가 있기는 해도, 비교적 균형 잡힌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때,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것이 중요할 때, 그럴 때만큼은 생각과 감정이 전보다 더욱 긴밀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는 지적으로는 전보다 못할지 모른다. 또 새로운 획기적 업적을 이루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전보다 훨씬 더 넉넉한 사람, 앨리샤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좋은 사람”이 되었다.
--- p.289, ---p.293, ---p.719
페르마의 정리 하나를 증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흥분을 자아내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경험만으로는 수학자가 될 꿈을 품기에 충분치 않았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내쉬는 블루필드 대학에서 수학을 청강하며 이미 정수론을 깊이 배웠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기 기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버리지 ㅇ낳았다. 그가 수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카네기 공대에 들어간 후였다. 입학 당시 그는 대학의 초급 과정을 뛰어넘는 수학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