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학자가 정확히 뭘까?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남은 여름을 박물학자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에 관해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글을 쓸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첫 번째 기록 주제는 개였다. 개들은 더위 때문에 꼼짝 않고 누워 있어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지루해진 남동생들이 막대기로 찌르며 괴롭혀도, 개들은 귀찮아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물통에서 물을 후루룩거릴 정도만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털썩 쓰러지며 얕은 구덩이에 먼지만 풀썩 일으켰다. --- p.17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꼭 말해야 할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조지는 피아노 의자에서 뒤로 넘어졌다가 건반을 고작 하나 누르고 황급히 쫓겨나 징징 울며 제 엄마의 품에 안겼다. 룰라는 완벽하게 연주한 뒤 연주를 마친 순간 격렬하게 토했다. 헤이즐 돈시는 연주 시작 전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페달에서 발이 미끄러졌고 강당에는 우왕왕왕 하는 깊은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해리 오빠는 멋지게 연주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 이유 없이 관중석 한 곳을 계속 흘끔거렸다. 나는 나무 손가락이 달린 시계태엽 장치처럼 연주하고 나서 브라운 선생님이 쉭쉭거리기 전에는 절하는 걸 잊어버렸다. 이걸 꼭 말해야 할까?
그날 일은 이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간간히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마차에서 다시는 이걸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건 또렷이 생각난다. --- p.87
나는 의미 있는 뭔가가 나타나리라 믿고 눈을 경통에 대고 반사경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은 뿌연 회색 안개가 펼쳐졌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기운이 쭉 빠질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음, 할아버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여기, 초점 나사를 잡아라.”
할아버지가 내 손을 쥐었다.
“그리고 바깥으로 천천히 돌려라. 눈 떼지 말고. 돌리면서 계속 지켜봐.”
어색한 연습이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빛은 충분하니? 반사경 잊지 마라.”
그 때였다. 꿈틀거리는 엄청난 생물들이 바글바글 소용돌이치는 세상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정신이 나갈 뻔 했다.
“악!”
나는 비명을 지르고 펄쩍 나자빠지며 현미경 전체를 뒤엎을 뻔 했다. --- p.126
(수첩에 적을 추가 질문: 애벌레는 처음부터 암컷과 수컷이 정해질까? 아니면 고치에서 잠자는 동안 암컷이나 수컷으로 변할까?) 할아버지는 유충 단계에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말벌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재미난 생각이었다. 왜 인간의 아이들은 유충 단계, 말하자면 다섯 살까지 성별을 선택할 수 없는지 궁금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삶을 모든 면에서 지켜본 결과, 나라면 당연히 남자아이 유충이 될 텐데. --- p.138
수를 세어보았다. 형제 여섯 명에다 아빠, 할아버지까지 있었고, 그 사람들의 발은 무지 많았다. 그건 내일도, 모레도, 그 후에도 계속 뜨개질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까지 죽 늘어선 양말, 입을 딱 벌린 지루한 뜨개질의 계곡에 내 평생을 바치라니!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애처롭게 말했다.
“제발, 엄마. 내일 할게요. 눈이 따끔거리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내가 아픈 데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외모가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 외동딸에게 안경까지 씌워야 될지도 모른다니, 엄마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사소하지만 유익한 핵심 정보였고, 나는 나중에 쓰려고 그걸 비축해 두었다. 그 외에도 어쩌면 심한 두통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 p.186
“대체 그게 뭐예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정말 모르겠구나.”
이건 훨씬 더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늘 모르는 게 없었는데.
“중심 마디에서 갈고리 모양 잎이 하나 뻗어 나온 것 같은데, 바싹 마른 상태라 뭐라 말하기 어렵구나. 어떤 기록에서도 이런 걸 본 기억이 없다. 어떤 삽화에서도 본 것 같지 않아. 맬런 박사의 도감에는 정말 뛰어난 삽화가 꽤 많은데 말이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무 마른 상태라 말하기가 어려워. 변이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
할아버지는 나를 보았다.
“아니면 우리가 아예 새로운 종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 p.192
내가 다른 여자아이들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과 같은 종이 아니었다. 나는 달랐다. 내 미래가 그 아이들의 미래처럼 될 거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다른 여자아이들과 ‘정확히’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정과 남편, 자녀에게 삶을 맡길 거라고들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 자연 연구와 내 수첩, 소중한 강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어른들이 나에게 시키려던 바느질과 요리, 내가 거부하고 피해 왔던 따분한 교습, 그 모든 것에는 사악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오싹했다. 결국 내 삶은 우리의 특별한 식물과 함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을 박탈당했다. 왜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까? 난 함정에 빠졌다. 덫에 앞발이 걸린 코요테였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아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p.262
그것 말고도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갈색 종이로 간단히 포장되어 있었지만 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 책이구나. 침대 위 선반에 차근차근 꾸리고 있는 작은 서재에 책이 또 하나 늘어나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 책은 무척 두껍고 무거워서 일종의 참고 도서나 교재란 걸 알 수 있었고, 어쩌면 백과사전일지도 몰랐다. 뻣뻣한 포장지를 벗겼더니 소용돌이 모양 장식체로 『과학』이라고 쓰인 단어가 보였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와.”
정말 화려한 문양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책이 있다는 이 분명한 현실보다, 엄마와 아빠가 마침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훨씬 기뻤다. 나는 설레는 맘으로 부모님에게 환하게 웃음을 보냈다. 부모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지를 쭉 찢자 책 제목이 모두 드러났다.『살림살이의 과학』
“오!”
나는 어리둥절해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우리말로 쓴 게 맞긴 맞나? 조사이어 자비스가 쓴『살림살이의 과학』이라니.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손이 나무처럼 딱딱해졌다. 나는 더듬더듬 책을 펼쳐 목차를 보았다. ‘환자용 식사/환자를 위한 요리’, ‘인기 만점 피클과 전채’, ‘까다로운 얼룩 지우기’. 나는 이 오싹한 제목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 p.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