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 27분, 오늘만 세 번째인 상사의 호통.
19시 35분, 드디어 상사가 퇴근. 제발 좀 더 빨리 돌아가 줘.
21시 15분, 마침내 퇴근. 이 시간이 되면 전철이 띄엄띄엄 온다.
22시 53분, 귀가.
25시 0분,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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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내 담당이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이번 달은 벌써 2주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자 잠이 오는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최근 반년 동안 몸 상태는 쭉 최악이다.
녹초가 되어 간신히 집에 도착해도 몇 시간 뒤에 또 회사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그런 현실에 찌부러질 것 같다.
--- p.8~9
떨어진다…….
그렇게 각오한 순간, 내 몸은 엄청난 힘에 이끌려 승강장 위로 휙 되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얇디얇은 ‘그 팔’은175센티미터나 되는 내 몸을 너무나 쉽게 승강장 위로 되돌려 놓았다. 그 연약해 보이는 몸집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멍해 있는 나에게 남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야, 오랜만이다! 나야, 야마모토!”
……야마모토? 누구지.
--- p.20~21
“오늘은 기합을 넣고 임해야 해서요.”
“고타니 제과랑 미팅이 있구나. 어때, 될 것 같아?”
“네, 느낌이 괜찮아요. 지금 철저하게 준비하는 중입니다.”
“그래. 최근에 좋아 보이더라. 이게 체결되면 큰 건이야. 모르겠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
“네! 감사합니다.”
이 일이 잘되면 자신감을 얻게 될 거다. 날 응원해 주는 잘나가는 선배도 있다. 이보다 더 듬직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p.46
“그래서 너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눈에 핏발을 세운 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분노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주위에서는 동료들이 숨을 삼킨 채 지켜보고 있다.
“너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이 자식아!”
부장이 내 책상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리고 옆자리 동료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나는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한심하게도 공포로 다리가 떨렸다.
“너 이 자식…….”
입을 다문 나에게 부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 p.78~79
“그런 소리를 해도 현실은 어쩔 수 없어. 남자니까 장래에 결혼이나 가족 부양 같은 걸 생각하면 확실히 정사원이 나아.”
“여자친구도 없잖아. 그렇게 일하면서 누구 만날 시간이나 있겠어? 데이트할 시간 있어? 결혼 얘기까지 할 수나 있겠어?”
“그건! 사귀면 어떻게든 돼…….”
아픈 곳을 찔려서 마지막 말은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았다.
“……아무튼 일을 그만두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 p.103~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