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때로 치통처럼 나를 덮칩니다. 그 고통 속에 나를 팽개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다가 말았습니다. 고통이 나를 덮친다면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거부하지 말고, 마치 헝클어진 서랍을 정리하듯이 하나씩, 가지런히 고통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구원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조금씩 시작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고통은 나를 덮치지만, 구원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오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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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본 그 거리에서는 벌써 장미가 어린 아이의 얼굴만 하게 피어나 있더군요. 훈제연어에 크림소스를 듬뿍 얹은 것 같은 빛깔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생각을 했지요. 누군지 모르지만 저 장미를 심은 자에게 축복이 있기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때로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 그 곁을 지나가는 나 같은 이방인의 쓸쓸함을 덜어줄 수도 있는 사실, 그 장미를 심고 물을 준 사람은 이생에서는 나와 결코 인사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그렇게 만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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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세상에 있는 가지가지 사물과 가지가지 인간들의 인생사 중에서 오로지 자신이 것으로만 가질 수 있는 느낌과 사건과 하늘을 가지는 것. 그것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어쩌면 구도의 길과도 같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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