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의 블로그]
하하하!
메일을 확인한 나는 기쁨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미세한 전기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과 함께 도를 깨달은 구도자처럼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계획의 일부는 이미 육 개월 전부터 실행 중이다. 24시간 안에 모든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다.
희생양이 뿌린 피는 속죄의 피가 아닌 속박의 피가 되리라. 남겨진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비좁은 감옥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서서히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오늘 밤 일어날 살인사건은 ‘마인’의 등장을 위한 전주곡이다.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한 걸음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마인’을 지금 느낄 수 있는가.
--- p.9
“그 녀석의 아버지는 그 남자에 대한 어떤 살의도 없었어. 단지 실수를 했을 뿐이었어. 아니, 재수가 없었던 거지. 그런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싸움이 붙었는데 주먹 한두 방에 상대방이 고꾸라지고, 생명을 잃을 거라 예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서 구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남편.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구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아들. 지나가면서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고 길거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마구 구타하여 죽이는 철없는 10대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사건들이지 않아? 이런 사건의 가해자도 상해치사로 처벌을 받지. 형량도 비슷하고. 어때? 내 친구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악의의 질량이 방금 말한 예의 사람들과 같다고 볼 수 있어? 아무리 법에 대해 문외한이고 법을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금세 알 수 있지 않을까? 악의의 질량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 p.38~39
“현실은 선생님이 쓰는 추리소설과는 달라요. 추리소설처럼 작가가 의도한 대로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연도 있고, 범인의 실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실제 사건에서는 이런 우연과 실수가 범죄 해결에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것들을 찾아내려고 형사들이 발이 부르트도록 탐문을 하는 겁니다. 편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만드는 허구의 사건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걸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p.101
“혹시, 지금 김내성 작가, 그러니까 ‘청춘극장’이랑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쓴 김내성을 말하는 거지?”
택시 기사 입에서 갑작스레 아인 선생의 작품 이름이 나와 김내성은 깜짝 놀랐다.
“네, 그런데 기사님이 김내성을 어떻게?”
“아이고, 우리 어릴 때 김내성 작가의 글을 많이 보고 자랐지. 그 뭐야, 소설가 박범신이나 예전에 환경부 장관까지 해먹었던 연극배우 손숙 있잖아. 그런 예술가들까지도 어린 시절에 김내성 소설을 재미나게 읽었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인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더 재미있었겠어.”
--- p.283
“김순식 군! 그 책 잘 보관하고, 시간이 있으면 자네도 탐정소설을 써 보게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인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마인’ 초판본을 어루만지며 볼을 꼬집어 보았다.
“내가, 내가 아인 김내성을 만나다니!”
몹시 기뻐하던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마지막에 아인 선생이 손수 써 주던 서명. 그 자리에서는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책의 맨 앞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아인 김내성의 글씨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탐정작가여, 어서어서 나오라! 그리하여 우리 조선문단으로써 하나의 훌륭한 탐정문단을 가지도록 하라!
雅人 識
--- p.23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