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통 목회를 배우고 전통 목회에 익숙해져 있는 목회자들은 “오라”는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다. 교회 건물을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교회로 오라는 목회에서 이제는 “가서”라는 위대한 위임령을 실행하는 목회로 나가야 한다. 목회자가 가장 편한 장소인 목양실에서 이제는 목회의 현장을 지역과 마을로 변화시켜야 한다. 또한 외부로 나가 주민들을 만나되 전도의 대상, 또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도록, 사람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불신 주민들을 대상인 객체로 여기는 관점에서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 건물을 성전이 아니고 예배처이며, 또한 지역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성도들에게도 교회와 예배당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가르치고 교육해야 한다. 목사의 생각의 변화가 자신에게만 그치지 말고, 성도의 변화로 확산되도록 하는 일이 첫 단계이다.
--- 「발제1 복음의 새로운 표현 - 마을 목회」 중에서
[커피와교회]의 사역자들은 일반 성도들보다 몇 배나 힘든 육체적인 노동을 감당하게 된다. 평일과 주말, 모두 노동을 한다. 그리고 그 노동의 현장을 성도들 모두가 바라보고 있기에, 사역자에 대한 신뢰도가 더 크다. 어떤 이들이 이 지점에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을 하겠다.
“이거 이중직 아닌가?” “이거 불법 아닌가?”
만약 열 걸음 양보해서 이중직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직업의 개수로만 이야기한다면, [커피와교회]는 이중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편협한 시각을 벗어버리고 노동과 일터신학(marketplace theology)의 시각으로 바라보길 적극 권장한다. [커피와교회]의 사역자들은 성도들과 아주 가까운 일터 신학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사명자들이다. 또한 전도의 관점에서 불신자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동을 구현하는 선교사들이다.
일터신학(marketplace theology)의 대가 폴 스티븐슨 박사(Dr. Paul Stevens)는 성서 안에서 일터신학의 중요한 예를 보여 주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언급한다. 폴 스티븐스는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공공장소에 132번 출현하셨고 그중에 122번 일터(the marketplace)에 출현하셨으며, 일터가 아닌 곳은 단 10번 출현하셨다. 그리고 예수님 비유 중에서 45번이 일에 관련된 것이고 일에 관련되지 않은 것은 7번뿐이었다”고 언급한다.
--- 「발제2 커피와 교회」 중에서
한국 교회는 70년대까지 전도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케리그마 중심으로 그 뒤를 이어서 디아코니아를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선교적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church for others’ 전에 ‘with others’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코이노니아를 회복하고 지역사회를 함께하는 것을 교회론의 핵심적인 본질로 보고, 그 위에 케리그마와 디아코니아를 세웠습니다. 이제 미와십자가교회도 케리그마도 하고, 디아코니아도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도시에 있는 공간을 사귐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코이노니아로 근거한 교회, 모든 선교적 교회의 핵심적인 원리이지만, 그렇게 해서 문화와 예술을 교회가 세상을 만드는 매개로 여기고 일상을 중요한 활동의 터전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종합하면, 경영학자와 목회자들과 지역 교회에7년 동안 연구하면서, 경영학자가 회사를 컨설팅할 때 3가지 관점으로 3P 이론으로 진단하고, 컨설팅으로 하는데, 그것은 philosophy, principle, program입니다. 한국 교회는 program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선교적 교회사례 연구를 보면 program은 무궁무진합니다. 교회마다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program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학적 관점, 목회적인 관점입니다.
--- 한국일 교수의 논찬 중에서
또 한 가지는 중대형 교회들은 풍부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우리도 카페하자, 도서관 하자, 공연장 하자, 바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건물은 쉽게 지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지역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이 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섣불리 건물부터 세우려고 하지 말고, 먼저 지역을 분석하고, 교회 안에 내적인 동기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잠재성을 어떻게 지역 사회에 맞게 펼쳐 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카페, 도서관, 아트홀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철저히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서 여러 건물, 콘텐츠, 사역을 시작하는데 사실 지역 사회는 그것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교적 교회를 할 때 너무 교회가 주체가 되고, 지역은 항상 대상이 되는 우리의 패러다임이 문제가 됩니다. 잘못하면 교회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가 있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 「토크쇼 - 한국 선교적 교회의 현재와 미래」 중에서
교회와 마을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는 마을 속에 있고, 마을은 교회에 의해서 더 좋은 마을로 변혁된다. 하나님은 교회를 마을 속으로 보내셨고, 그 마을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교회를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마을에 보내진 선교 공동체로 마을을 변혁해 나가는 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선교적 플랫폼(platform)인 것이다.
이 선교적 플랫폼은 자신의 공간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어가며 공유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정무역을 수행하므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경제 파트너십을 실천한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을 추구하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공유경제를 실천한다. 마을사람들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한다.
최근 화성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시작한 ‘꿈의학교’가 좋은 예이다. 이 꿈의 학교를 통해 마을 아이들은 화성시에 살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는다. ‘꿈의학교’는 생태학교, 의회학교, 카메라학교, 오케스트라학교, 독서학교, 뮤지컬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 황병배 교수의 기조 강연 중에서
중요한 것은 ‘복음’을 교회 공동체의 핵심가치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진행되는 것들이 있을 때는 그것이 ‘복음’의 가치와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먼저 고민하고 기도합니다. 예를 들면, 개척하고 첫해에 전도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부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위한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그 행사가 복음을 위한 것인지, 영혼을 위한 것인지 함께 고민하면서 결국 그것은 교회를 위한 행사라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언제 시간이 지나서 영혼을 향한 것이라는 마음이 주어지면 그때는 하겠지만, 첫해 이후로 지금까지 전도잔치는 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도 ‘무기명’으로 합니다. 연말정산이 필요하신 분들은 헌금봉투 뒤에 주민번호를 쓰지만 저는 보지 않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습니다. 1만 원 내는 성도와 10만 원 내는 성도가 있다면 저는 10만 원 내는 성도를 좋아해 줄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예 알지 않습니다. 헌금을 훈련시켜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목사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 「발제2 선교적 양육」 중에서
다음 질문도 저는 동일한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라고 하면, 새로운 교회를 하는 쪽에서 이야기하는 선교적 교회와 기존 교회나 중대형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를 말하는 입장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교수님 중 한 분이 논찬도 그렇게 하셨지만,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선교적 교회를 보는 것과 복음주의에서 바라보는 선교적 교회가 다른 것 같아요. 어느 방향이 진정한 선교적 교회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교적 교회라고 할 때 자기의 신학적, 목회적 그라운드 안에서 이해한 선교적 교회가 정답인양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전체를 부정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떤 담론이 성숙하려면 그 담론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나누냐가 중요합니다. 과거 한국 교회를 보면 분파적 경향이 강합니다. 학자는 학자끼리, 목회자는 목회자끼리, 보수, 진보, 에큐메니칼, 중대형 교회, 새로운 교회 등 각자의 그라운드에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선교적 교회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 부분에서 신학자들의 네트워크인 선교신학회와 목회자들의 네트워크인 세뛰새KOREA가 함께 협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토크쇼 - 한국적 선교적 교회의 자리매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