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들의 사랑이 계속 커나갈 뿐 아니라 “지식과 모든 총명”(1:9)으로 풍성해지기를 기도했다. 나는 사랑을 강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사랑의 물길은 지식과 총명의 둑을 따라 흘러야 한다.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사랑이란 진리와 의를 가려서 죄를 간과하고 성결을 훼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요즘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한 최선에 마음을 쓴다. 참된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은 가짜, 그릇됨, 악을 분별하는 법을 터득한다. 사랑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1:10)하는 방법을 배운다. 지혜가 이끄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날”-주 예수님이 신자들의 충성에 보상하실 재림의 때-이 이를 때까지 신자들을 의 안에서 지켜줄 것이다.
--- p.40
걱정의 또 다른 치료법은 우리의 염려를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는 초조해하고, 긴장하면서, 불안한 삶을 살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여기서 “모든 일”이란 정말로 모든 일을 뜻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모든 일에 대해 기도하라. 감정이 동요되면 그것을 기도로 올려드리라. 겁이 나면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라. 돌아오라고 위협하며 괴롭히는 과거에 짓눌려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그것을 가져가달라고 간구하라. 한날한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쓸데없는 ‘만약에…’ 시나리오로 정신적, 감정적으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그들을 위해 중보하라.
--- p.122
골로새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 우리의 생명, 우리의 지도자로서 충분하시다는 것이다. 골로새의 어린 신자들은 아직 세상 철학과 인간이 만든 종교의 맹렬한 공격을 견뎌내게 해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충분성에 깊이 뿌리내린 성숙한 신앙이 부족했다. 그때 마침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강조하는 이 편지가 도착했다. 골로새의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그분이 행하신 구원 역사의 충분성을 깎아내리며, 만유의 상속자이자 통치자이신 그분의 절대 권위를 폄하하는 거짓 교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 p.143
그러나 금욕주의를 배태한 영성에 대한 이런 식의 이원론적인 접근은 인간과 영성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과 배치된다. 인간의 두 가지 측면-물질적, 비물질적-은 원래 선하게 창조되었다(창 1:26-27, 31, 2:7).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이후 몸과 영혼이 전부 죄와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엡 2:1-3).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마음은 물론이고 몸으로도, 사실상 우리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높여야 한다(마 22:37, 롬 12:1-2).
--- p.194-195
나는 빌레몬서로 인해 내가 받은 용서, 자유,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누리는 친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감사를 느낀다. 이 편지는 우리 모두가 믿을 수 없는 도망자였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오네시모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출되었다. 그로 인해 내 도주는 막을 내렸고, 빚을 다 탕감받았으며,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두 종류의 노예가 있다. 첫째는 도망을 멈추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과 회복과 새 삶을 찾은 자들이다. 둘째는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에게서 도망치고, 죄의 참담한 결과에서 도망치며, 지금 당장 가능한 용서와 자유에서 도망치고 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도망친 노예를 해방시켜주시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자유를 얻은 자들에게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당신을 구속하시려고 대가를 지불하신 주님께 유익한 자가 되기를, 그분께 매인 종으로 기꺼이 순복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