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재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 같아서 덤벼드는 쪽이 다 타버린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어느 ‘고문기술자’에 대해 쓴다고 하자. 숱한 민주화 인사들의 육신과 영혼을 도륙한 그가 십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자수하고 복역한 뒤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다고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은 사실대로 존중하되, 이 역사의 비극에 연루된 이들의 내면을 지성과 용기로 투시해서, 더럽고 아프고 무서운 ‘인간적 진실’에 육박해야만, 소설이다. 자, 이 이야기를 누가 쓰면 좋겠는가? 최상의 적임자가 이와같이 해냈다. 비장한 결기와 시적 울림이 결합된 문장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자신을 완전히 태워버리기로 작정했고 또 결행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독자는 우선 핏물과 눈물이 흘러내리는 숯덩어리를 씹어야 하리라. ‘생강’의 깊은 맛은 그 이후에, 소설의 말미에서, 희망처럼 온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천운영 작가만큼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인물은 주위에 그리 많지 않다. 그녀와의 오랜 친분으로, 그녀를 ‘알 만큼은 안다’라고 자부하던 내가 그녀의 소설 몇줄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가 아직 천운영을 잘 모르는구나……’라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긴 나와의 대화중에도 그녀는 늘 딴생각을 하는 듯은 했지만……
어느날 『생강』 같은 소설을 들고 나타났을 때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도 동반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는 『생강』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작가며 그녀가 내 판단 안에 있을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천운영이 잘 모르는 분명한 나의 감(感)도 있다. 그녀는 우연히 ‘생강’을 씹다가 이 소설의 모든 인물과 내용이 순식간에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 맛을 음미하며 멍하니 앉았거나 복받쳤거나 분노했을 것이고. 나의 판단에 그녀도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길 기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딴생각을 할 것 같다.
혀끝이 알알한 행복한 생각?
이은미(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