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도 사람이지만 정신과 의사도 역시 사람일 뿐이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나 치료적 관계rapport를 형성하고, 사람으로서 가능한 범위 내의 치료적 행위를 한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에 슬퍼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도 결국 우리 모두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환자와 의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맺는 관계 속에서 정신과 상담이 이루어진다.
--- 「1장 사람들은 정신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에서
내 마음의 쓰레기통을 제대로 비우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특히 오랫동안 묵혀왔던 내 마음속 쓰레기를 내 손으로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처리하느니, 때로는 그냥 구석으로 밀어두고 마음을 꾹꾹 억누르는 일이 훨씬 쉽고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에구, 그냥 푸념이나 하고 말지!’ 하고 적당히 환기만 시키며 하루하루 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쯤은 내 마음속 쓰레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마주보고 그 쓰레기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1장 사람들은 정신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에서
공황은 그 증상의 정도를 측정한다면 ‘불안의 끝판대장’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증상이 예측할 수 없이 갑작스레 온다는 점과 파도처럼 순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점에서 환자들이 아주 힘들어한다. 게다가 대개 두려움(공포)과 불안이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교적 대상이 명확한 두려움과 대상이 모호한 불안이 섞여 환자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또한 다시는 공황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항상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이런 증상을 우리는 예기 불안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 효과처럼 점점 더 정도가 심해져 나중에는 이 불안 때문에 자극을 받아 공황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 「3장 불안, 삶이 희미해진다는 경고」 중에서
사실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고 해도 나만의 해소 방법이 있어서 그걸 확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든 또 잘 살아가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지금 직장생활은 힘들지만, 빨리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러 가야지. 진짜 기다려지네!’라고 생각하듯 즐거움이나 재미를 느낄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삶의 낙이 있어야 현재의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다. 행여나 삶의 낙이 점점 희미해진다면, 그 삶 자체도 점점 의미를 잃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불안이라는 것은 그렇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경보 신호일지도 모른다.
--- 「3장 불안, 삶이 희미해진다는 경고」 중에서
실제로 소아청소년들에게는 우울증이 분노나 충동조절의 어려움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청년들에게는 의욕상실 및 ‘만사 귀차니즘’으로, 중년층에게는 공허함과 서글픔, 노년층에게는 마음보다 신체 증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듯 우울이라는 한 단어는 천의 얼굴을 가진 듯 여러 가지 모습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슬픔이 아닌 다른 모습들을 경험하면 그 증상들을 우울과 바로 연결 짓기가 쉽지 않다. 방문자들 중에서도 “제가 우울해서 왔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히려 “잠이 좀 안 와요”, “신경을 많이 썼어요”, “부쩍 피곤해요”, “다 귀찮아요” 등의 다소 애매한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4장 우울, 보이지 않는 묵직한 통증」 중에서
정신과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뭔가가 결핍이 되어서 오는 이들이 많다. 그 결핍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기본적으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오고, 학생들은 친구들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해서 고민하며, 젊은이들은 연인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아파한다. 중장년층은 동료들에게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해서(이것도 일종의 사랑으로 본다) 괴로워하고, 노년층은 가족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워한다.
--- 「6장 분노, 때로는 나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