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안 돼.”
수스키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한 객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지금까지 우정을 지켜온 우리들. 좀 더 나이를 먹고 각자의 생활에 더욱 바빠지게 되면, 우리가 다 함께 러시아를 여행할 기회는 어쩌면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일.
“좋아, 가자!”
이렇게 외치는 순간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은 대체로 옳았으니까. 행복은 셀프 서비스다! 상상조차 못했던 러시아 여행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p.15
“아니, 레닌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있단 말야?”
준스키는 당장 달려가 보고 싶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스키의 말에 따르면 그의 시신은 막 잠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데, 난 어쩐지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러시아를 있게 한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적인 지도자. 그를 그냥 보내기는 싫어서일까. 러시아는 그를 ‘방부’라는 방식으로 기념하고 있었다. 바로 러시아의 중심이라고 하는 붉은 광장에서 말이다. 그가 만약 어느 날 번쩍 눈을 떠 오늘의 붉은 광장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샤넬 백을 메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붉은 광장을 걸어다니는 사람들, 한때 피 튀기는 전쟁을 치렀던 독일의 BMW와 벤츠가 도로를 질주하고, 시내 곳곳에서 맥도날드가 성업 중인 모습을 본다면? --- p.67
모스크바의 청춘이 강처럼 흘러 다니는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 보면, 빅토르 최를 만날 수 있다. 1980년대에 록으로 러시아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설이 된 한국계 3세. 그의 메시지는 변화의 바람이 일던 소비에트 사회에 스며들었고, 자유의 아이콘이 되었다.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했던 그는 ‘어머니 나는 건달입니다’, ‘운명은 다른 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더 사랑한다’, ‘문에 열쇠가 맞지 않으면 어깨로 문을 부숴라’ 같은 노랫말을 지었다. 아르바트 거리에는 20대 아까운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는 추모의 벽이 있다. 아르바트의 생동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업도시의 뒷골목같이 허름한 담벼락에는 담배를 문 그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그 주위로 어지러운 낙서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 p.93-94
부아앙! 부아앙! 부다다다다! 묵직한 오토바이 소리. 먹으면서 슬쩍 느꼈지만 이 동네 분위기, 뭔가 예사롭지 않다. 길 옆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던 펑키한 이들의 옷차림.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자, 점점 더 모이는 오토바이들. 한 대, 두 대도 아닌, 여기저기 돌비 서라운드로 들리는 할리데이비슨 소리가 참으로 부담스럽다. 중저음의 엔진 소리가 어둠 속에서 합주하는 이곳은 바로 ‘참새언덕’. 앙증맞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곳은 모스크바 폭주족의 베이스캠프였다. (155-156
사실 이곳은 300년 전만 해도 건물은커녕 사람도 살지 않는 늪지대였다고 한다. 그런 곳에 돌덩이를 쏟아부어 만들어낸 도시가 바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당시 이 늪지대가 얼마나 깊었는지, 던져도 던져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돌 때문에 이곳을 통행하는 사람들은 필수로 자신의 머리보다 큰 돌을 가지고 와야 했다고 한다.
“그럼 머리 큰 사람은 돌도 더 큰 것으로 가져와야 되나?”
택형이 시덥지 않은 소리로 개그를 시도하지만, 이런 말에 너그럽게 웃어주고 할 우리가 아니다. 담담한 표정으로 넵스키 도로를 걸으며 상상했다. 300년 전에 왔다면, 영락없이 돌덩이 구하느라 애 좀 먹었겠다. 아마 주변의 웬만한 돌은 다 가져갔을 테니, 한참 먼 곳에서 가져오거나 누군가가 웃돈을 얹어 파는 것을 썩은 표정으로 사야 했을지 모른다. --- p.201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 갔을 때,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다. 사장님은 메뉴판을 갖다 주며 한국어 메뉴판을 펼쳐본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 보자 보자.”
“응? 그런데 뭐지? ‘커피는 미국인?’”
그건 바로 ‘카페 아메리카노’를 번역한 메뉴였다. 말도 안 되는 번역이었지만, 나름 귀여운 맛이 있다. 물론 차마 ‘미국인’을 먹을 수는 없어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그런 번역이 탄생한 배경에는 러시아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20세기 초반, 그러니까 구한말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지금의 러시아 극동 지방으로 이주를 했었다. (……) 그 이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그들은 극동 지역에서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러시아 곳곳에서 한국인들, 즉 까레이스키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것이다.
“저도 까레이예요.”라고 말하던 모스크바의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 “내 여자친구도 까레이인데.”라며 말을 걸었던 기념품 가게 직원. 물론 한국말이 매우 서툴지만, 그렇게라도 러시아와 우리의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게만 보이던 러시아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p.204-205
어젯밤 일이다. 심야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웬 덩치 큰 녀석이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알렉세이. 자신을 클럽 DJ라고 소개했다. 뭐 DJ? 잘 만났다.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사람!
“사실 우리는 클럽에 가면 스킨헤드에게 맞을까 봐 겁먹고 있어.”
그러자 알렉세이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러시안 스피릿’은 그런 게 아냐.”
“러시안 스피릿? 그게 뭔데?”
“이봐, 친구! 러시아에서도 맥주 한잔 하면서 인사하면, 어깨동무하고 ‘우리는 친구’가 된다고!” --- p.275
드디어 도착한 경찰서 앞. 우리는 헉헉거리며 문을 밀어보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문 옆에 달린 벨을 눌렀다. ‘덜컥’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흔히들 생각하는 한국의 경찰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경찰은 두꺼운 방탄유리창 너머에 앉아 있었고, 대화도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해야 했다. 나는 마이크 앞에서 입을 뗐다.
“I lost my passport(제가 여권을 잃어버렸어요).”
여행 회화 책자에 꼭 등장하는 이 문장을 내가 써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