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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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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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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426g | 126*188*30mm
ISBN13 9788901223421
ISBN10 8901223422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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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가을벌레가 울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밤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신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종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났다. 악귀가 지나가다가 산을 울리고 간 듯했다.
---「산소리」중에서

“어때, 멋있지? 위인의 머리 같잖아.”
기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 꽃은 인간의 머리통 둘레보다 크다. 그 질서정연한 양감(量感) 때문에 신고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뇌를 연상했을 것이다. 왕성한 자연의 힘이 지닌 양감에 신고는 또 한 번 거대한 남성의 상징을 떠올렸다. 그 꽃술로 가득한 원반에서 수술과 암술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남성을 느꼈다.
여름도 희미해지고 바람 한 점 없는 저녁 무렵이었다.
꽃술 원반 주위의 꽃잎이 여성인 듯 노랗게 보인다.
“나는 말이지, 요즘 머릿속이 매우 멍해져서 해바라기를 보아도 머리만 생각나. 저 꽃처럼 머리가 맑아질 수 없을까?”
---「매미 날개」중에서

마을이 달빛으로 훤하여 신고는 하늘을 보았다.
달은 불꽃 속에 있었다. 달 주위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의 등 뒤에 타오르는 불꽃, 혹은 도깨비불같이 그림에 그린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진귀한 형태의 구름이 있었다.
차가우면서 뿌연 구름의 불꽃, 차가우면서 뿌연 달의 모습에, 신고는 갑자기 가을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
“어젯밤에는 제대로 못 잤으니까 오늘 밤에는 일찍 자야겠구나.” 신고는 왠지 쓸쓸해지고 사람이 그리웠다.
드디어 인생의 결정을 내릴 시기가 온 듯했다. 결정해야 할 일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구름 불꽃」중에서

눈과 입이 실로 생생하다. 우멍한 눈구멍에 검은 눈동자가 빛났다. 오렌지색 입술이 가련하게 촉촉해 보였다. 신고가 숨을 죽이고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가자 검고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밑에서 떠오르고 아랫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하마터면 탈에 키스할 뻔했다. 숨을 깊게 내뱉고 얼굴을 떼었다.
그러자 모든 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잠시 거친 호흡이 이어졌다. (……)
하늘의 사련(邪戀)이라고 느낄 만큼 신고는 두근거렸다. 탈이 인간 여자보다도 요염하게 다가온 건 자신의 노안 탓도 있지 않을까, 하고 비웃어보았다.
---「섬 꿈」중에서

“염색은 속임수야. 속임수를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기타모토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 친구는 말했다.
“기타모토는 죽었다고 했잖아.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기적이 일어나서 머리카락이 검게 젊어졌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기적은 오래 가지 못해. 기타모토는 흰머리를 뽑아 세월의 운행에 반항하고 몰락의 운명에 반항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명이라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 머리털이 검어졌다고 한들 수명은 늘어나지 않지. 흰머리 뒤에 검은 머리가 자라나는 데 굉장한 정력이 소모되어서 수명을 단축시킨 걸지도 몰라. 하지만 기타모토의 필사적인 모험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겠지.” 친구는 결론을 내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벗겨진 정수리에 옆 머리카락을 발처럼 넘긴 모습이었다.
---「아침의 물」중에서

미국 군용기가 낮게 날아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아기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커다란 그림자가 뒷산 빗면에 드리워지며 지나갔다. 아기도 그림자를 보았으리라.
“이 애는 공습을 모르지. 전쟁을 모르는 아이가 벌써 많이 태어났구나.” 신고는 구니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빛은 이제 수그러져 있었다.
“지금 구니코 눈빛을 사진에 담아뒀으면 좋았을걸. 산의 비행기 그림자도 넣어서 말이야. 그리고 다음 사진으로는…….”
아기가 공습을 받아 비참하게 죽는다.
공상 속 두 장의 사진 같은 아기는 현실에 수없이 있을 게 분명했다.
---「새집」중에서

만일 신고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허용되어 그의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신고는 처녀 적의 기쿠코, 즉 슈이치와 결혼하기 전의 기쿠코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 억압되고 왜곡되어 꿈에 초라한 형태로 나타났다. 신고는 꿈에서도 그것을 스스로 감추고 속이려던 것일까? (……)
비가 오는구나, 하며 가볍게 들은 빗소리가 지금은 폭풍우가 되어 집을 때리고 있었다. 다다미까지 축축하게 젖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바탕하고 갤 것 같은 빗소리였다.
---「상처 후」중에서

“천 년이든 오만 년이든 연꽃 씨앗의 생명은 길구나. 인간 수명에 비하면 식물의 종자는 거의 영원한 생명이나 다름없네.” 신고는 끄덕이면서 기쿠코를 보았다.
“우리들도 지하에 천 년이나 이천 년 정도 묻혀서 죽지 않고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땅속에 묻혀 있다니.” 기쿠코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덤이 아니고 말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쉬는 거야. 정말로 땅속에라도 묻혀서 쉴 수 없는 것일까. 오만 년이나 지나서 일어나면 고민도 사회적 난제도 완전히 해결되고 세계는 낙원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뱀 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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