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이란.”
에이미는 거의 꽥꽥 소리를 지르다시피 반복했다.
“파렴치한 남자가 순진한 아가씨들을 속이고 자신이 지성과 감성을 지닌 남자인 양 믿게 하는 거예요! 그동안…….”
“순진하다고?”
리처드가 고함을 질렀다.
“순진해요? 나한테 계속 싸움을 걸어온 건 당신이오! 그런데도 자신이 순진하다고 생각해요? 나야말로 오늘 오후 순수하게 이집트 유물에 대해 논하고 있었을 뿐인데, 당신은 갑자기 나를 한 대 칠 듯 뒤로 물러서더니 내 성격을 매도했잖소!”
“그건 당신이 보나파르트의 수하니까 그렇겠죠!”
“적어도 나는 그냥 자기 잘못도 모르고 남 탓만 하지는 않죠!”
“아, 그냥 단두대로 보내면 되겠네요. 그렇지 않겠어요?”
리처드는 에이미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흔들어댔다.
“정말, 당신은……말이 안 통하는 여자군!” --- p.107
꽃무늬 이불 위에 털썩 누워서 비닐 봉투에 들어 있는 꾸러미에 손을 뻗쳤다. 불행하게도 나는 내 병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소위 ‘지옛남친(지질한 옛 남자친구) 증후군’ 이라고, 의학적으로 진단된 바는 없지만 애인 없는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병이었다.
이 말은 대학 다닐 때 룸메이트와 내가 만들어낸 용어로, 여자들은 가장 최근에 만났던 남자친구를 그리워한다는 당혹스러운 현상을 설명해준다. 사귈 때 그 남자가 아무리 지질하게 굴었어도, 몇 주만 지나면 그 관계는 장밋빛으로 윤색되고 과거에 했던 말 한마디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펑펑 쏟게 된다. 예를 들자면 “그 사람이 나랑 만날 때 다른 여자들이랑 세 다리를 걸친 건 알지만, 정말 춤 하나는 끝내줬어.”라거나, “그래, 그 사람 술버릇은 문제였지만, 제정신이었을 때는 얼마나 다정했는데! 그때 나한테 꽃 사들고 찾아왔던 것 기억나지?”와 같은 말들.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애인 없이 몇 주 지내다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옛날 남자친구도 회상 속에서는 참 매력적인 인간으로 변해 있다.
'지옛남친 증후군‘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신을 딴 데 쏟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새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이 증후군을 떨치기 위해서는 잘 모르는 남자들과 줄기차게 데이트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시적으로는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 방법도 있다. 소설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혹은 역사적 인물의 사생활을 탐구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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