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는 훔친 우산을 천천히 펼치면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지는 해보다 한 발 앞서 찾아온 밤, 저녁 6시가 지난 긴자의 가로수 길. 비에 젖어 빛나는 아스팔트를 저벅저벅 밟으면서 똑바로 이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게 앞 쇼 윈도우에 딱 달라붙어 비를 피하던 내게 훔친 우산을 내밀었다. 우산을 훔친 사람인데, 그 동작은 영락한 귀족처럼 매끄럽고 우아하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결혼, 축하한다. 하나.”
남자가 우산 속으로 들어선 내 어깨를 껴안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애매하게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막 약속 장소인 이곳으로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을 몇 번이나 되새기고 있었다. 키만 컸지 호리호리하게 야윈 그. 제멋대로 자란 머리가 어깨 위에서 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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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2미터 정도의 조그만 유빙으로 슬쩍 발을 뻗었다. 얼음 뗏목 같은 그곳으로 조심조심, 풀쩍 뛰었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아니, 저런! 하나!”
오시오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조그만 어린애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자신이 늙은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는 나를 따라 훌쩍 유빙으로 건너뛰어 와, 있는 힘을 다해 내 팔을 잡았다.
어금니를 악문 채 말이 없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은,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거다. 제 아비가 사라진, 저 먼 북쪽 바다에서 헤매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이다. 하루 빨리, 떠나거라. 남자와 여자의 인연이란, 질기고 또 질긴 것이다. 나도 다 안다. 그러니, 간단한 짐만 싸서 당장 떠나거라. 네가 어디로 갔는지는 그 사람에게 절대 알리지 않으마. 너도 악몽 같았을 거야. 알아들었지? 하나야.”
“할아버지, 저는요…….”
“그리고, 호적도 파 내거라. 원래 성으로 돌아가. 아사히카와에 있는 친척도 성이 다케나카니까. 깨끗하게 잊어라, 하나야. 다 잊어, 그런 일은.”
“호적, 을요?”
“그래. 그렇게 하거라.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어금니를 더 꽉 깨물었다. 나는 신발 속에서 기어오르는 냉기와, 바다 밑에 사는 끔찍한 괴물의 기척을 느꼈다. 차갑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현실감을 잃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죽여 버려.
나는 할아버지의 몸을 휙 밀쳐내면서, 정말 어린 수사슴이라도 된 것처럼 조그만 유빙에서 얼음 벌판으로 폴짝 뛰었다. 차가운 바람이 휭 불어와 내 머리카락이 날렸다. 당황한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뛰려고 발을 뻗었다. 나는 그 몸을 한기에 곱은 발로 세 번, 힘껏 걷어찼다. 세 번 다 가볍고 메마른 감촉이 느껴졌다. 오시오 할아버지는 그저 힘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이제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쪼글쪼글하게 주름진 손을 버둥거리며 내 목도리를 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 얼굴을 주먹으로 힘껏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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