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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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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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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58g | 145*210*20mm
ISBN13 9788954639781
ISBN10 895463978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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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어둠이 나의 세계를 집어삼키는데도, 팔의 힘이 점점 약해져 스스로 포크를 들어 식사를 할 수 없게 되는데도, 다리가 나를 배신해 비틀거리는 일이 점점 잦아지는데도, 나는 얼마 안 되는 여생을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바로,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당당히 교실을 호령할 수도 없게 되었다. 대신 그동안 얻은 경험과 인생 교훈을, 특히나 내가 죽어가고 있는 이때,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그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보다 인생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으니까. --- p.10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 일이었다. 학생들은 내 생명의 진수이자 나의 숨,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였다. 학교에 있으면 아프지 않았다. 가르침에 열정을 쏟아붓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암과 벌이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일을 그놈이 가로막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p.114

교실이 없어도 서로에게서 배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반대로 제자들에게도 그동안 너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를 도로 채워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또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꼭 알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정말로 그들 인생에 영향을 끼치긴 했나? 그것을 확인한 다음, 만약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 여행을 글로 풀어서, 역경을 마주한-어떤 종류의 역경이든-이들에게 목적이 있는 한 그 삶은 살 가치가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 p.147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이 지나면 항상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내일 친구에게 손 내밀어 도와주면 되고, 내일 부모님께 전화하면 되고, “사랑해라는 말도 내일 하면 돼. 나도 처음에 진단을 받고서 한동안은 그렇게 살았다. 내일이 백만 번도 더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을 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운다. 삼키기 힘든 교훈이다. 이제야 겨우 사는 법을 배웠는데 곧 죽는다니.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해가 기쁨을 만끽할 이유가 되고, 꽃들이 살아 숨쉬는 듯하고, 산들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면 거의 종교체험이라도 한 듯 희열을 느낀다. 나라는 인간이 더이상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느냐 그리고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사랑하느냐로 정의된다. 내가 보기에 그 정도면 괜찮은 죽음이었다. --- p.148

어쩌면 그 자체가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음을 인지하건 그렇지 못하건,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여정이라는 것. 여러분은 지금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
떠날 때만 해도 나는 여행중에 객사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여행중에 인생을 더 제대로 살았다. 여행은 나를 죽이는 대신 나를 살렸다. 더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나를 인생의 정점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둘, 인생의 바닥과 정점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p.263

암 선고를 받기 전에도 그리고 받은 이후로도 변하지 않은 것,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학생들에 대한 내 헌신이다. 학생들은 내게 최우선순위이다. 그런데 여행 이후 나는 나 또한 그들에게 우선순위임을 깨달았다. 교사로서 나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책과 문학에 대한 사랑, 세상을 향한 강한 호기심을 심어줬기를 바랐다. 내게 보답으로 돌아온 것은 그보다 훨씬 뿌듯한 결과물이었다.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제자들의 모습이었다. 불치병과 절망이라는 폭풍우 속에 홀로 선 내게 피난처를 제공해주고서 보답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겠는가.
--- p.26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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